글
Ministry 2009
김태정 목사05:30-08:30약 49분 분량
묵상
1. 2009년도 다시 한 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계획과 각오로 시작하려 한다.
2. 새로운 계획: <가정교회>의 모델 정착
3.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하나님께서 나 집사를 보내주셨다.
1. 사역의 준비
1) 성령의 기름부음
- 누구든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 할 때, 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이 일이 선행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일을 시작함.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로 나아감. <우리 교회>에서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관점. 목장 모임에 있어서나, 개인적 목표를 세움에 있어서...
2) 시험: 세 가지 방향에서 오는 시험과 유혹
- 이 장면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먼저 헌신된 제자가 되지 않고서야 어찌 남을 제자 삼을 수 있겠는가?
2. 사역의 시작
1) 예언의 성취
-나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 (예) 엡 2:8-10; 이는 우리로 하여금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여 두신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비하셨다.
2) 파송
- “천국의 복음”의 사역을 위하여 첫 사역지 ‘갈릴리’로 떠나심. 수직적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수평적 이동 역시 불안하고 두려울 것이다.
3) 갈릴리-이방인의 땅
- 주님은 이방인의 땅에서 그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기 위해서 수평적 이동을 감행하셨다. 그러나 나는 늘 가까운 곳, 편안한 곳, 아는 사람, 친지, 가족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려한다. 그래서 복음은 늘 선포나 가르침이 아니라, 언쟁이나 논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말이다.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나의 갈릴리는?
4) 제자 삼기와 제자 되기
- 두 개의 병행되는 관찰: 18-20; 21-22절
-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지 제자들의 헌신과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려 함이 아님.
- 나의 이중 신분과 이중 사역: 제자 되기와 제자 삼기
- 주님께서 그분의 처음 제자들을 권위와 능력 가운데 부르신 것처럼, 오늘 나 또한 그렇게 부르셨다. 이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그분의 부르심이 들리는가?
- 들린다면 나는 제자 삼는 자가 되어야 한다(28:18-20). 주님처럼 끊임없이 어부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의 시작과 끝은 이처럼 제자 삼기에 관한 교훈과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3. 사역의 요약
1) teaching; preaching; healing
2. 기도
1. 주님, 올 한 해에도 365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매일 새로운 생각과 계획과 목표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기도드릴 때 항상 내 자신의 유익이나 관심사가 아니라, 항상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충만함으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해 주십시오. 늘 기도의 순서가 다음과 같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111사역: 나와 아내의 영성을 위하여
2) <우리교회>의 2009년도 사역을 위하여:
(1) <가정 교회>: 가정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2) 해외선교: 강성규/김덕희 선교사 러시아 톰스크에서의 새로운 교회 개척
(3) 대학선교: 경북대학교 학생 선교를 통한 <대학생 목장> 개척
(4) <넷트웍> 사역: <안동 우리집>과의 네트워크 사역
3) 목장의 목원들을 위하여: 제자 삼는 자로 성숙할 수 있도록
2. 주님, 당신은 나를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곧바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호수 가에서 그물을 깁다말고, 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마저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 나서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정말 저를 충격하게 하는 헌신과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의 기질이 원래 충동적이고 단순해서 이처럼 과격하고 혁명적인 행동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오직 이런 사람들만이 주님께서 만족해하시는 제자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일관성이 없으며, 인내심이 없는 자는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람들이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주님을 스승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나의 기질이나, 능력이나, 호감이나, 결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자비로운 능력의 말씀으로 되는 것인 줄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성령으로 인을 치셨고, 그리고 지금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 간절히 원하옵기는 주님을 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독수리 날개 치는 것처럼 주님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설사 앞으로 내 삶에서 이런 저런 “광야의 시험”들이 이런 저의 기도와 간구를 무위로 돌리려 하겠지만, 그 때마다 주님께서 저를 강하게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나머지 식구들, 아내와, 서집사와, 이미란 집사와, 그리고 나순애 집사도 모두 저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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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제국과 천국; 세상과 천국
1) 새 술은 새 부대에; 천국의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종말의 이미지는?
2) 여기서 주님은 세상과 천국의 가치관의 전도를 보이고 계신다.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차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이 둘의 차이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또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새 이스라엘”이 “옛 이스라엘”을 포함하고 포괄하고 있다고 보면 된 것 같다. 두 개의 동심원을 그린다면 전자가 큰 동심원, 그리고 전자가 작은 동심원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제국”의 사람들(“옛 이스라엘”)에게 “천국”(“새 이스라엘”)의 새로운 헌장을 가르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혼란은 물론 심지어 거부와 분노마저 일으킬 것이 아닌가?
2. 새로운 헌장
주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에게 오래 동안 친숙해 왔던 가르침이나, 관습이나, 종교적 규례 들을 예로 들면서, 두 나라의 세계관이 갖는 혁명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계신다:
1) 언약의 “축복”?
2) “율법”은?
3) 제사와 예배
4) 사회법: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이웃과 원수
3. 새로운 신분
1)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 나는 누구인가? 새 술인가? 새로운 신분에 관한 언급이 있는가?
(1) 제자(1절)
(2) 시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10절)
(3) 소금(13절)
(4) 빛(14절)
(5) 하나님의 아들(45절)
2. 기도
1. 주님, 이처럼 엄청난 새로운 신분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 주님, 저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자라고 하는데, 진질한 제자로 늘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3. 주님, 또한 천국의 시민입니다.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윤리 헌장을 잘 숙지하고, 준수하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3. 주님, 저는 세상에 대해서 소금이요 또한 빛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처럼(요 1:9), 우리 또한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셨군요. 또한 주님께서 내가 이 빛을 세상에 비추라고 하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작은 예수가 되라는 소명으로 믿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빛을 계속 비추겠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십시오.
4.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아가 아닙니다. 외롭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괴롭히고, 미워한다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 오늘도 새벽부터 정해진 시간에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시고, 매일 기도 제목을 아뢸 수 있도록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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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제국과 천국; 세상과 천국
1) 계속되는 강론: 구제; 기도; 용서; 금식; 재물에 대해서
2) 반복되는 핵심어:
(1)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 6, 18절)
(2)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3) 구제에 대해서; 너는 구제 할 때에 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3절)
4) 기도에 대해서: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절);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7절); 주기도문을 참고하라
5) 금식에 대해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절).
6) 재물과 하나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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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도
1. 주님, 나의 모든 행위와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눈을 기쁘게 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고, 그들의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세 이전부터 나를 지으셨고, 필요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으며, 필요한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줄로 생각합니다. 아버지, 순종하는 아들로서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2. 오늘도 이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필요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철이와 성욱이와 레디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학교에서 이들을 위한 목장을 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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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나병 환자를 고치심
1) 천국의 전도된 가치관에 대해서 강론을 마치신 후(복음서 순서에 따르면), 말씀의 능력을 직접 보이신다.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삶을 사신 분은 예수님 뿐이심을 볼 수 있다: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니"(8:16).
2) 나병 환자가 먼저 주님을 찾아 간구함: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I am willing. Be clean.“ Immediately he was cured of his leprosy.”
2. The faith of the centurion
1)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2) I have never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But the subjects of kingdom will be thrown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gnashing and weeping.
3. 무리를 고치심
1)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니(16절)
4. 제자도의 대가
1) 한 서기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 저는 따르리이다; 인자는 머리 누일 곳도 없다. 이 사람의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2) 한 제자: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허락하옵소서;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제자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제자 됨은 오직 주님께서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아니다. 그리고 제자 됨보다 더 우선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제자 됨은 어떤 세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5.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심
1) 이 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6. 귀신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
1)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2. 기도
1. 주님, 주님의 능력과 자비를 보았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이 모든 고침의 사역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2. 주님,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백부장의 믿음은커녕, 풍랑 만나 배 안에서 잠자던 주님을 깨우던 믿음 없는 제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만, 저의 아내를 그냥 이대로 버려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구드립니다. 이 딸을 굽어 살피시고, 그 병을 치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주님, 그리고 달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이 아이도 그 어미를 닮아 혹시 당뇨성 인자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아이의 영혼을 치료해 주셔서, 그로 거듭나게 해 주십시오. 이 해에 그를 교회로 보내주십시오. 그가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와도 결별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피차간에 영혼의 성숙에 도움이 되지 못할진대, 새로운 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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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중풍 병자를 고치심
1) 주님의 말씀: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2) 사람들이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그들의 믿음과 용기와 자비를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3)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기관들의 태도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을 신성 모독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4) 예수님의 강론: Which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and walk.'
2. 마태를 부르심
1) 왜 하필 마태인가? 그에게서 미래를 보신 것일까? 그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신 것일까? 아무튼 다시 한 번 주님의 권위를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죄를 사하여주시는 권위나 제자를 부르시는 권위에 있어서나 한 결 같으신 주님: “Follow me,” he told him, and Matthew got up and followed him.
2) 그분의 부르심에는 우리의 자질이나, 능력이나, 신분이나, 경력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분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으니(3:8). 마태를 부르시는 주님에게서 능력과 권위 외에 그분의 자비를 느껴야 할 것이다: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3. 다시 한 번 금식에 대해서
1)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왜 이 시점에 예수께 와서 금식에 대해서 질문을 했던 것일까? 예수님의 사역 이후에도 여전히 별도의 제자들을 이끌면서 나름대로의 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들의 질문: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2) 주님의 대답: 잔치 집에서 누가 금식을 하느냐? 금식은 마치 새 술을 헌 부대에 담그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3) 교훈: "No one pours new wine into an old wineskin. If they do, the skins will burst, the wine will run our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4. 죽은 아이를 살리시고 혈루병 여인을 고치심
1)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고쳤도다.”
2) 딸을 살리시면서: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5. 소경과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1) 예수님의 말씀: “네 믿음대로...”
6.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라
1) 예수님의 말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w workers are few. Ask the Lord of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2. 기도
1. 주님, 첫째 주 기도제목을 드립니다. 들어주시고, 내가 아니라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주십시오.
2. 주님, 추수할 것은 정말 많은데,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추수에 방해꾼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일꾼들을 보내주십시오.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제자들을 보내주십시오. 제자 삼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만, 또한 잘 준비 된 일꾼들도 주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보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제가 늘 하나님의 계획을 무위로 돌리는 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자비와 성실한 일꾼이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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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파송(Commissioning)
1) Instruction
(1) Do not go among the Gentiles. Rather go to the lost sheep of Israel.
(2) Preach this message: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3) Heal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those with leprosy, and drive out demons (메시지의 증거; 예수님의 사역)
(4) Do not take along any gold, silver, or copper in your belt; take no bag for the journey; or extra tunic, or sandals or a staff; for the worker is worth his keep.
2) 주님의 지시 사항에 의하면 긴박하고 임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 제자(사도)들의 미션은 그동안 주님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동일한 권능과 자격을 가지고 (아마 역사상 반복될 수 없는 한시적인 것이긴 하지만)
2. 세상의 반응
1) hatred; arrest; persecution; betrayal
2) I am sending you out like sheep among wolves.
3) Therefore be as shrewd as snakes and innocent as doves.;
4) Be on your guard against men. They will hand you over to ...
5) Do not suppose that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I have come to bring a sword. I have come to turn
a man against his father,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6) A man's enemies will be the members of his own houshold
3. 준비
1) Stand firm to the end, and you will be saved.
2) Do not be afraid of them. Do not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Rather be afraid of the One who can kill both the body and the soul in hell.
3) Whoever acknowledgs me before men, I will also acknowledge him before my Father in the heaven; whoever disowns me before men I will disown him before my Father in heaven.
4) Whoever finds his life will lose i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2. 기도
1) 주님, 오늘도 첫째 주 기도제목을 드립니다. 들어주시고, 내가 아니라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주십시오.
2) 어제 저녁 수요 목장 모임에는 새로운 가족들이 방문을 했는데, 이들을 위한 성경 공부를 시작해야 할까요? 그들이 원한다면 주님 이를 허락해 주시고 적절한 장소와 시간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3) 주님, 새로운 목장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지만 다소 배신감과 허탈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남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하신 말씀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 서 집사와 이 집사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목자의 길을 자원하고 기꺼이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는데, 헌신을 방해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서 집사가 이제 본격적으로 사역자의 길을 갈 수 있는 훈련을 시키시려 하시는 줄 믿습니다. 먼저 그가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고, 인내의 훈련, 그리고 사랑의 훈련을 잘 거쳐 갈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이 집사는 남편을 혼자서 소유하려는 지극히 근시안 적이고 이기적인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영혼을 지키시고, 훈련 시켜주십시오. 그동안 제대로 신앙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듯합니다. 버림으로써 오히려 얻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4) 매 주 목장 모임에서 점검 사항을 하나 씩 확립해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 111 사역: 마 1-7장; 증거와 전도
5) 대학교회 영어 설교 준비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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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예수님과 침례 요한
1) 요한의 질문
(1)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
(2) 흔들렸음일까?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6절)
2) 주님의 대답(4-5절)
눈 먼 자가 보고, 절름발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하게 되며,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일어나고,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선포된다.
3) 요한에 대한 주님의 평가
(1)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
(2)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는 더 크다. 무슨 말인가?
4) 세상에 대한 주님의 평가
(1) 피리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세대. 그야말로 DULL한 세대.
(2) 배척하고 거부하는 세대.
(3) 참고. 요 1:10-11. 빛이 비취되 세상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왔으나 세상을 그를 받아들이지 않더라.
2. 회개치 않는 세대를 향한 저주
1) It will be more bearable for ...
3. 무겁고 짐진 자들을 향한 위로
1) 주님의 약속: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and learn from me.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2. 기도
1) 주님, 어제 주일 영어 설교를 인도하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 설교를 위해서 더욱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2) 이미란 집사 때문에 계속해서 기분이 언짢고 상합니다. 왜 출발 시점에서부터 기분이 뒤틀렸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그동안 내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망가지고 빼앗긴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도나 예배나, 목장 모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실족치 않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지난 날 저와 저의 아내 사이에 발생했던 그 문제가 이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마귀의 궤계를 막아주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기도록 해 주십시오. 회개나 헌신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광야에 왜 나갔느냐?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보러 갔느냐? 좋은 옷을 입은 자를 보러 갔느냐? 왜 목장을 하려 하느냐? 더 솔직하고,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닌가? 더 헌신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람은 혼자서는 결코 자신의 잘못을 알 수도 없고, 안다 해도 고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나의 거울이 아니던가?
3) 예수님의 멍에와 짐은 가볍고 쉽다고 하셨는데, 주님의 멍에를 지기 원합니다.
4) 해야 할 일
(1) 김현덕 씨 전화
(2) <목장> 부분 설교 준비
(3) 안동 우리집 설교 및 성경 공부 준비
(4) 논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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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예수님과 안식일
1) 바리새인들의 질문
(1)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밀밭 사이에서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보고
2) 주님의 대답(4-5절)
(1)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나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예배의 주인과 대상은 주님이시다. 그분은 자비를 원하신다. 목장 모임을 목자의 집에서가 아니라 목원들 집을 돌아가며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주님, 이 문제로 제가 불같이 화를 내고, 아내와도 싸우고, 동관 형제와 미란 자매의 태도에 분노하였습니다. 내가 주인 행세를 하려 했기 때문일까요? 주님, 네 사람밖에 되지 않는 교회에 이토록 불일치나 생각하는 방향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데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무슨 발전이나 목표나 비전이 있을까요?
2.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
1)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가?
2)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 하기를...
3) 우리 중에 상한 갈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진노하며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고쳐주어야 할 것인가? 대답은 명백한데...
3. 예수님과 바알세불
1) 주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 내시는 것이다.
2)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4)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은 생각의 표현일 뿐이다. 생각은 내 자신의 인격의 발로이다.
4.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다
1) 요나의 표적은 무슨 의미인가/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는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나니
2)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의 정죄는 무엇인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나니...
니느웨 사람들이 불순종한 요나의 설교를 듣고서도 회개한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남방 여인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고자 찾아온 것도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자임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으니, 이 세대가 악하지 아니한가...
5.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 자매
1) 누가 나의 어머니며 누가 나의 형제요 자매인가?
2)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2. 기도
1) 주님, 두 번째 주 기도제목을 정리했습니다. 이 한 주 동안 열심히 기도할 때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항상 111을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2) 주님의 마음이 어떤 분인지 강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면서도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상한 갈대로 꺾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중에 상한 갈대들이 널려 있습니다. 제가 이들을 회복시키고 고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능력으로? 주님, 당신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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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 이 비유의 주제는 무엇인가? 씨 뿌리는 자인가, 씨 인가, 씨가 뿌려지는 장소인가, 아니면 씨의 궁극적인 운명인가? 그리고 삽십 배, 육십 배, 그리고 백배의 열매를 맺는 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2) 왜 여러 반응이 나타나는가? 장소의 문제, 환경의 문제, 토양의 문제라고만 말씀하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께서 이 모든 것을 정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농부는 특별히 어디다 씨를 뿌릴 지 정해놓은 것 같지도 않고, 마치 대지 위에 비가 내리듯 골고루 모든 곳에 씨를 흩어 뿌린 듯하다.
3) 그러므로 천국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은 토양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내가 그만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2. 가라지의 비유
1) 이 비유에는 또 다른 씨 뿌리는 자가 등장한다. 처음 비유와 차이는 무엇인가?
2) 전자가 씨 뿌리는 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번에는 씨 그 자체에 있는 듯하다. 즉 농부가 뿌리는 씨는 좋은 씨이다. 즉 복음을 받아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3) 그러나 좋은 씨는 가라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We are like wheat among weeds.”
4) 교회를 향한 교훈은? 교회가 순결하고 순수해야 하겠지만, 순결성을 이유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쳐내고, 잘라낼 수야 없지 않겠는가!
3.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1) 이 둘의 공통점은 자라고 확대되는 것이다.
2) 교회는 기관이 아니라 유기체라는 사실로, 자라고 성장하게 될 것임을...
3) 그래서 새가 무성한 나무 가지 위에 머물고 집을 짓듯, 사람들이 와서 안식할 쉴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
1)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와 같은 천국
2)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발견한 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
3) 농부와 상인의 지혜
5. 그물의 비유
1) 좋은 물고기, 나쁜 물고기로 가득 찬 어부의 그물 망
2) 구별과 심판의 강조-천국과 종말
6.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선지자
1) Only in his hometown and in his household is the prophet without honor.
2. 기도
1) 주님, 오늘은 두 번째 주 기도제목 중에서 한 가지를 실천하려 합니다. 김현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안동에 같이 갈 수 있는지도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경공부 시간을 물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 그에게 성령의 감동을 허락해 주십시오. 가능하면 그가 수요일 제 연구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었으면 하는데요.
2) 주님, 고맙습니다. 성욱이가 수요일 저녁에 저와 함께 릭 워렌의 책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에게도 역시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 책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와 함께 할 때 제가 열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복음을 가르치고, 이해시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성욱이가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통해서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3) PBS의 나머지 이번 주를 위한 BS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십시오:
(1) 안동 우리집 시편 산책 공부; (2) 우리 집 설교 본문; (3) <창세기>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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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1) 조상들의 유전과 하나님의 계명
2) 주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 해서 장로들의 유전을 어겼다고 바리새인들이 주님에게 와서 따짐.
3) 주님께서 두 가지 예를 드심. 하나는 십계명 중의 하나인 부모 공경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명령과 조상의 유전의 차이를 설명하심.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 핑계로 돌리지 말라는 교훈도 있지만, 장로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심각하게 왜곡시켜놓았음을 본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입맛대로 뜯어고쳐놓았을까?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처럼 타성에 젖게 되고, 말씀이 두려워 지지 않게 되고, 내 입맛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면 살아가는 것이겠지. 하나님을 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말자. 또 하나의 예는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장로들의 유전에 관한 것인 바, 이처럼 매사에 경계선을 그어두는 것이 유대인들의 사고 체계이지만, 이 역시 기본 전제가 뒤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선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결한 음식과 관련한 주님의 말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를 부정하게 만든다.” 만물보다 더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던 예레미야의 말은 이 점에서 옳다. 이 전제에서 본다면,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입으로 나오고, 그것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4) 소위 라마단에 금식으로 한 달을 보내는 이슬람 학생에게 이보다 더 좋은 교훈이 있겠는가? 누가 라마단을 제정하였는가? 누가 이 기간 동안 금식하라고 지시하였는가? 그들의 하나님인가? 유전인가?
2. 가나안 여인의 믿음
1)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냉정하고 차갑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으니, 그녀를 돌려보내라.
2) 여인의 반응: 옳소이다 만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멎지 않습니까? Even the dogs eat crumbs that fall from the master's table.
3) 철저한 겸손과 믿음. 예수님의 응답: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요청이 응답 받았다. 그러므로 구하자, 두드리자, 그리고 찾자.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진정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내 인생의 의미인가?
3. 사천 명을 먹이심
1) 무리가 사흘을 먹지도 않고 주님을 따르다. 남자들만 사천 명.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저는 자, 눈 먼 자, 벙어리, 등등이었다. 내 영혼이 병들고, 어둠 속에 있고, 영적인 언어를 말하지 못함을 깨닫자. 주님과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는가!
2) 주님은 이들에게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하셨다. 그분은 나도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3) 내가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와 자비는 무엇인가? 그들이 예수님을 찾게 하는 것이 아닐까?
2. 기도
1) 주님, 새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세 번째 주입니다. 세 번째 주에 맞는 새로운 기도 제목들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항상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지난 두 주 동안 올려놓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모든 제목들이 내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009년도 교회의 비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의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주신 소명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 지체들의 영혼과 육체를 보살펴 주십시오.
2) 주님, 이번 주에는 내시경 검사가 있습니다. 위와 대장입니다. 주님, 이 모든 검사를 지켜 보살펴 주십시오. 혹시 치료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떼어내고, 건강하다면, 계속해서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3) 이번 주 PBS를 잘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난 주일 설교 홈피 올림; 다음 주 설고 준비-교회의 사역에 대하여; <창세기 43과> 교훈과 적용 마무리; 연말 정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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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표적을 요구하는 세대
1) 장로들의 유전에 집착하고, 이번에는 표적을 구하는 세대. 왜 이처럼 한사코 주님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일까? 왜 표적을 구하는 것일까? 표적을 보면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2) 그러나 예수님이야말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아닌가!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이고, 기적이며, 표적이다.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3)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이스라엘에게? 왜 요나의 표적이며,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물고기 안에서의 그의 체험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그 사실 뿐일까? 이스라엘에게 있어 요나의 체험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는 더욱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지중해 날씨를 보고 다음 날의 날씨를 예고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알지 못한다고 힐책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결코 이 두 사실의 연관 관계를 어찌 깨달을 수 있으랴! 이러한 상관관계 말고는 요나가 어찌 주님과 비교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요나는 어떤 인물인가? 불순종과 불평과 원망의 화신이 아닌가? 주님과는 대척점에서 비교되어야 할 반면교사가 아닌가?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예루살렘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경고하신 바 있는데, 앗수르가 불순종한 요나의 메시지로도 회개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요나보다 더 위대한 주님의 메시지에도 요동도 않고 있는 모습을 빗대어 교훈하시는 것일까?
2.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
1) 주님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 베드로의 충동적인 기질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는 이곳에서 최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3) 최고의 모습: 주님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4) 주님의 칭찬: 사실 칭찬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객관적인 설명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베드로가 개인적인 연구와 관찰을 통해서 주님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고백을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에 의해서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교회의 특권과 권능은 천국의 열쇠이며, 하늘과 땅의 관계를 맺고, 끊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천국의 시식 코너라고 할까.
3. 수난의 예고 및 제자도의 댓가
1) 베드로의 최악의 모습: 십자가의 도리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베드로. 주님께서 그를 사탄이라 부르신다. 우는 사자가 언제 그 속에 들어갔다는 말인가! 재빠르고 신속하고 기민하고 스마트하다. 하나님의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고난 없이 영광 없고,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 기억하자. 이 교훈을 먹고 살아가자.
3) 헌신의 댓가: 고난과 상급.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할 것이라는 주님의 엄숙한 말씀 앞에 다시 한 번 헌신해야 하겠다. 제자가 되는 것은 결국 그분이 하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니만치 이것 저것 가리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분이 주시려는 상급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주시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헌신의 댓가는 결국 이중적인 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무서워서 그분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상을 받기 위함인가? 또는 재가 좋아서 하고 있는가? 만일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계시다면, 세 번째 답변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멋진 주님, 나를 훈련시키시는 주님, 결코 거부하거나 위축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계시를 쫓아 살자, 베드로처럼 내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나는 넘어지고, 내 목숨을 살리려 할 것인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빠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할 것인다. 늘 말씀으로 무장하고, 암솜하며 살아가자.
2. 기도
1) 주님, 새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세 번째 주입니다. 세 번째 주에 맞는 새로운 기도 제목들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항상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지난 두 주 동안 올려놓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모든 제목들이 내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009년도 교회의 비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의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주신 소명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 지체들의 영혼과 육체를 보살펴 주십시오.
2) 주님, 이번 주에는 내시경 검사가 있습니다. 위와 대장입니다. 주님, 이 모든 검사를 지켜 보살펴 주십시오. 혹시 치료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떼어내고, 건강하다면, 계속해서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3) 이번 주 PBS를 잘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난 주일 설교 홈피 올림; 다음 주 설고 준비-교회의 사역에 대하여; <창세기 43과> 교훈과 적용 마무리; 연말 정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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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변화
1) 변화 산에서 세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의복이 빛처럼 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남. 사도들이 본 것은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들은 것은 하나님의 음성: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분의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는 사실을 사도들에게 각인시켜주신 것 같다. 베드로는 다소 다르게,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아니겠는가.
2) 제자들은 엘리야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왜 그가 먼저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 마음대로 그를 잡아죽여버렸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여기서 율법 선생들의 한계가 무엇인가, 그리고 내 자신이 선생으로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중대한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지식은 있으나, 영적 혜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교회의 선생이 아닌가? 나는 정말 지금 예수님을 제대로 모시고 있는가? 성령께서 내 속에 계신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성경을 내 자의대로 해석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려 만들어놓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 저의 영적 무지가 있다면 성령님의 충만으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저의 구원을 이루어가게 해 주십시오.
2.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심
1) 귀신들인 아들을 고쳐주신 것은 좋았는데, 왜 난데없이 제자들을 꾸짖으시는가? 왜 믿음이 없음을 나무라시는가? 그들이 이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듣고 난 뒤 그렇게 하셨다. 왜 이들은 아들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일까?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무슨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언젠가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고 유대 땅 전역으로 전도 사역을 나간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평상인으로 되돌아 온 것이 아닐까?
2) 오늘 내가 보여야 할 능력은 무엇이며, 믿음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주님의 제자라 하나, 교회의 선생이라 하나, 이들처럼 무기력하게 실질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무엇인가?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없음을 한탄해야 할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교훈을 삼을 수 있을까? 순종하여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겠다는 믿음,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고 돌보는 마음과 능력,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아닐까? 이런 일에 활기 찬 모습을 보이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아닐까?
2. 기도
1) 주님, 오늘도 잊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일이 그냥 형식으로 흐르지 않고 참으로 제 속에서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해주십시오. 특히 영어로 묵상을 할 때, 좋은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학기 영어 강의나, 대학교회에서 영어 설교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외국인 학생 선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요나와 같은 존재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듯이, 정말 하찮은 저를 이곳에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저의 말과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당신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것으로 저는 족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싶습니다.
2) 그리고 <우리교회> 식구들에게 제가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를 목사로 인정하며 함께 교회를 시작하려고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목자로서, 저에게 맡기신 양이자 동역자이자, 동업자라 생각하고, 저들을 도우고, 성장시키며, 지도자로 세우는 일에 열심히 노력하게 해 주십시오. 소경이 어찌 소경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모범이 되고, 흠잡을 데 없는 선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선생들이 이론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는데, 정장 침례 요한이 왔을 때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를 하고싶은 대로 하다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고,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것이었습니다. 왜 이들이 그토록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엘리야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만, 돌이켜 보면 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얼마나 주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귀신들린 자를 제자들에게 데려왔을 때, 고치지 못하더라고 그 애비가 주님에게 고했을 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네가 얼마나 너희들과 함께 하며, 참겠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고 야단치셨습니다. 겨자 씨 만 한 믿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저에게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교사들처럼 지식은 있으나, 지혜는 없고, 머리는 있으나 가슴은 없는 자입니다. 주님, 제가 요나와 같은 자라도 좋으니 그저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만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으로서가 아니라, 그리고 두려움으로서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3) 주님, 내일은 내시경 검사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금식하고, 준비하는 약을 먹을 때, 내장의 기능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잘 견딜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눈동자같이 지켜주십시오. .
3) 이번 주 PBS를 잘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직 다음 주 설교를 마무리 못했습니다. <창세기 43과> 교훈과 적용 마무리; 연말 정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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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천국에서 가장 큰 자
1)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곳에서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다. 결국 거듭남이란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인가. 무조건 믿고 의지하며 원하는 것을 아뢰는 순수함이 있어야 하겠다.
2) 그리고 나로 인하여 실족하는 자가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선생이라고 하는 내가 식구들이 나로 인하여 실족한다면, 내가 이 교회에 없는 것이 더 나으리라. 연자 맷돌을 목에 두르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까지 말씀하셨는데, 이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하다.
2. 잃어버린 양의 비유
1) 어린 아이를 경멸하지 마라. 어린 영혼을 경멸하지 말라는 것이렸다. 백 마리의 양 중에서 단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 김덕현 씨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해야겠다. 다음 주 중에 다시 한 번 전화를 하자. 오바마 대통력이 일일이 공화당 의원들에 전화를 해서 그들을 감동을 시켰다는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우리 식구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문자 메시지라도!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식구들에게 진심어린 감동을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3. 용서에 관하여
1)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2) 이어서 하시는 말씀은 이전에 용서에 관한 것인지 몰랐으나, 이 말씀 역시 용서와 관련한 합심 기도처럼 보인다. 즉 한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시리라. 왜냐하면 한 두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그곳에도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이 말씀을 좀 더 일반화 하고 확대해도 괜찮을까? 즉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원하고 바라는 바에 대해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까? 교회의 합의와 언약에 대해서 내가 아니라, 모두가 동의하는 그 무엇을 이끌어 내야 하지 않겠는가?
3. 제자도에 관하여
1)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백배나 보상을 받고 더불어 영생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2) 돈 많은 부자 청년이 왜 주님을 떠났을까? 사실 그는 솔직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믿고 안 믿고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마음으로는 이사야나 엘리야를 원하지만 실은 요나가 아니던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열심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실은 내 마음 속에는 늘 두려움이 있다. 이 청년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버리고, 진짜로 주님을 따르라고 할까봐...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 버리기 싫은 것은?
4. 불공평한 포도밭 주인에 관하여
1) 먼저 와서 일한 자나, 나중에 와서 일한 자가 꼭 같은 품삯을 받는다면, 먼저 온 자가 불평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곳에서는 분명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상급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분명 다른 상급을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여기서는 왜 불공평하신가?
2) 그러나 불평하는 먼저 온 자들은 마치 요나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께서 이들의 정곡을 찌르시면 하신 말씀은? “내가 관대하므로 너희들이 시기하느냐?” 먼저 온 자들은 항상 하나님이 두렵고 엄하고 정의롭기를 원하신다. 이들의 문제는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유약하고, 관대하다는데 있다. 그러나 그분은 나에게 대해서는 어마나 관대하셨는가?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라고 한가?
2. 기도
1) 주님, 이번 주에는 내시경 검사 때문에 토요일에 몰아서 세 장을 묵상합니다. 검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구정 휴가 기간에 우리 교회 식구들 모두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즐거운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아무튼 이들 모두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적인 가족입니다. 늘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강건한 제자들이 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양육하기 원합니다.
2) 요나의 표적과 함께 불공편한 포도원 주인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이 비유가 천국에서의 상급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직 은혜에 의한 구원을 말하는 것인지 다소 애매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하나님의 무한한, 무조건적 사랑을 알 수 있는 비유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사람의 자유나 은혜에 대해서 과분하다거나 지나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누가 불평하고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속에도 요나와 같은 심성이 늘 꿈틀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왜 하나님은 저런 머저리 같은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시는가? 이런 불평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저들은 그냥 놀고먹으며 천국에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까? 이런 불평이 가당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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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승리의 입성
1) 당나귀 등에 앉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주님. 열렬한 환영과 환호. 모두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님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마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이미 “도적의 굴”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 그 앞에서 온갖 것들을 내놓고 사고파는 무리들. 주님을 종교로 만들어버린 무리들. 제사장들과 무리들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겠지. 사람들은 종교를 원한다. 제사장들은 이러한 무리를 원한다. 그러나 주님은 순수한 그 자체를 원하신다. 이들 무리를 성전으로부터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뒤엎으신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듯이, 교회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과격한 주님!
2) 성전에서 과격한 주님. 제사장들과 율법 선생들과의 대화
3)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 그러나 마가복음서에서와는 달리, 나무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교훈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심. 믿음이 있고 의심치 말라는 교훈과 연결시키심. 믿음이 있으면, 무엇을 기도하든 원하는 대로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
2. 두 아들의 비유
1)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인가?
2) 큰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그대로 실행하였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반대로 아버지 시킨 대로 하겠다고 했으나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3) 나는 얼마나 작은 아들 같은가? 거의 매일처럼 아버지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하고 다짐하나,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언제 그런 기도를 했느냐는 듯이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내 모습. 기도할 때 내가 과연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를 먼저 숙고하고, 아버지의 뜻을 알려고 무진 애를 써야겠다. 행하려고 애쓰자. 예배 시에나, 목장 모임에서나, 개인 경건 시간에 참으로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내가 오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회개하며 울며 기도하자. 오늘 나에게 주님은 무엇을 행하라고 하시는가? 최소한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찾아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경건의 유익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직전에 주님께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사실 굳이 주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하지 않았더라고, 이는 그 나무는 말라죽어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살았다고 하나 실은 이미 죽은 자는 아닐까?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다 하나 영적으로 죽어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으로 내가 이를 확인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주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가?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
4) 무슨 열매를 말씀하시는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분명히 주님께서 자신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그들은 돌이켜 회개했을까? 그렇지 않다. 정 반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주님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응이 무서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무서워했던 대상은 아무 힘없는 백성들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역설인가? 오늘 국회의원들처럼 말이지. 육체를 멸할 수 있으나 영혼은 멸할 수 없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육체를 멸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다. 오늘 내가 맺을 열매는 무엇인가? 회개의 열매가 아닐까? 그것도 단순히 “오, 주여. 내가 회개하나이다”가 아니라, 큰 아들처럼 비록 회개의 말은 없을지라도, 말없이 회개에 합당한 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닐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두려워해야 하는데, 이것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보이지 않고, 매일 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면 그나마 순종하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마음이 강퍅한 자인가!
2. 기도
1) 주님, 이번 주에는 구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삼일 동안 주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지켜주셔서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주셔 감사를 드립니다.
2) 오늘 다시 마태복음 22장으로 묵상을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항상 곁에서, 그리고 내 속에서 말씀하시고, 들려주시며, 격려하시며, 그리고 명령하시는 줄로 압니다. 오늘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교인들과 논쟁하고 그들을 꾸짖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 나는 항상 아버지의 생명과 훈계를 종교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지, 아니면 작은 아들처럼 하겠다고 하면서, 실은 항상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나에게 말씀하시는 줄을 알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3) 아버지, 저로 하여금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해주십시오.
4) 이번 남은 주간동안 세미나 참석, 연말 정산, 그리고 설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 늘 깨어 기도하게 해 주시며, 제가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설교 준비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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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화 있을 진저...(일곱 가지 저주)
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저주를 말씀하신다. 화자는 강도의 깊이나 정도를 더하기 위하여 한 곳에 이 모든 저주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 마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집중 강의를 한 것처럼.
2)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위선자,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 율법을 가르치기는 하나 자신은 행하지는 않는 자, 사람들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기는 하나 자신은 그것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 선생님, 아머지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자, 존경과 칭송을 듣기 좋아하는 자, 항상 상석에 앉기를 좋아하는 자, 천국에 자신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 한 사람의 교인을 만들기 위해서 온 나라를 돌아다니지만, 정작 그가 교인이 되면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자, 소경으로 남을 이끄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왜곡하며 가르치는 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 그리고 살인자.
3)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단순한 건강 검진을 위해서 병원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는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이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청천벽력이라는 말 외는 달리 적절한 말이 없을 것이다. 암이라는 단어는 구제 불능 또는 회복 불능과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4) 그런데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면, 영원한 저주가 아닐까? 특히 나 같은 신앙인으로 자처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내가 살았다고 하나 실은 죽은 자라고 한다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 내가 곧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런 진단을 해준다면 화를 내며 무시하면 그만이겠으나, 다른 사람 아닌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마주 대하면서 이 진단을 해 주신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예수님께서 나를 불러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거룩하게, 그럴 듯하게 모양을 내고 살아가고 있으나, 나를 속일 수는 없어”라고 말씀하신다면 내 기분이 어떨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항변이라도 해야 할까?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낫다고 해야 하나? 건강 진단의 경우라면 혹시 의사의 오진이 아닐까 해서 다른 병원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내 영혼과 내 속 사람에 대한 진단은 예수님 외는 달리 찾아가 오진 여부를 가려내 달라고 하소연 할 상대가 없지 않은가?
5) 주님이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리새인인가? 서기관인가? 아니면 유대인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저주하지 않으신다. 미워하지 않으신다. 그분이 진정으로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위선과 가식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를 받아 죽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척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위선 때문에 교회는 그 탄생의 고고를 울리는 순간에 죽음의 비보도 함께 들어야 했던 것이다.
6)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그 거짓된 모습을 숨기려고 애쓰는 순간, 이미 회칠한 무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교회 공동체 앞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나아올 수는 없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척하며”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고통일 뿐만 아니라(왜냐하면 나 아닌 모습으로 내 자신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의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나를 향해서, “너는 이미 죽은 자이다”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7) 내가 사형 선고를 받을 수야 없지 않는가? 하나님은 나를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살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담과 화와처럼 말이다. 그들이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도 생물학적으로는 무려 구백여 년을 살았겠지만, 그들의 일생은 실은 질곡과 고통과 아픔과 갈등과 시기와 미움으로 점철되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8) 나는 어떻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암 환자가 회복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치료를 다 받아야 하듯, 영혼의 병 역시 그러할 것이다. 누구나 혼자서 스스로를 치료할 수는 없다. 공동체 없이 자신의 영혼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스스로 선생으로, 아비로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질병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환자이면서도 환자인 줄도 모르고 의사로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말 회개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9) 공동체가 어떻게 병원이 될 수 있을까? 인격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서이다. 진정한 관계의 사역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혼자서 병을 고칠 수 없듯이, 피상적인 관계 또한 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진정한 관계 형성의 첫 걸음은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내려놓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하자.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선다는 것은 혼자 있을 때 진정한 내 모습을 찾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자. 내가 나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나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용서받지 못할 회개라면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내려놓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또 누가 필요한가? 공동체 식구가 아니겠는가!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시켜보면, 목장 모임에서 자신의 잘못, 혼자서는 도무지 고쳐지지 않은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결함들을 드러내놓고 회개하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목장의 가족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시 절대적인 용납과 이해로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공동체가 이런 능력이 없으면, 목장이 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목장 모임은 위선과 거짓의 회칠 한 무덤일 뿐이다. 용서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아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을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수술 전의 마취에 자신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10) 내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회의 어느 지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면할 수 있겠는가!
2. 기도
1) 주님, 제가 남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목사로 불리면서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복음 전도를 위한 열정으로 아무 사심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점차 제 자신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지 못할 일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도록 시키고, 가르치지만, 정작 내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회개하고 제 자신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행동함으로써, 저의 회개가 진정한 것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2) 교인을 얻으려 기도하고, 전도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만, 혹시라도 교인이 된 자가 백배나 더 지옥에 가기 쉬운 자로 만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위선과 거짓의 탈을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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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상
1. 종말의 징조
1) 나는 사실 역사나 우주의 종말보다 나 개인적인 종말에 관심이 더 많다. 내가 언제 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등에 관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말의 불안감과 함께 죽음에 대해서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2) 그러나 내 죽음의 시기에 대해서 누가 알겠는가? 다만 내가 그 죽음을 향해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일 것이다.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들을 통해서 너무 쉽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둔해지며,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며, 앞으로 해야 할 일보다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지고, 자주 피곤을 느끼며, 이런저런 잔병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하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등,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 죽음의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 않은가!
3) 내가 만일 지혜로운 자라면, 인생에 죽음이 없는 것처럼 무한 질주 내지는 앞만 바라보며, 희망이나 꿈만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인생에서 달려야 할 때가 있으면 서야 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으며, 모아야 할 때가 있으면 흩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을 위해 준비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4) 역사나 우주의 종말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이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든, 종말의 징조와 그 시기에 관한 말씀, 그리고 그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지침은 결국 내 개인적인 종말에 관한 단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 시기는 알 수가 없으나, 너무나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너무나 당연하며,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역사의 종말의 징조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드러나고 있으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역사의 종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그리고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또한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심판자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들 종말의 징조들을 아주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종말의 징조는 생각처럼 무슨 신비한 수수께끼처럼 지극히 소수의 선택된 무리들에게나 알려지는 지식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다.
5)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라면, 마땅히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며,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를 위해서나,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나...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역사가 끝도 한도 없는 윤회나 직선처럼 느낄 것이고, 노아의 홍수 시대처럼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결혼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2. 기도
1) 주님,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저의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며 불안해하며, 그래서 무기력해져가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참으로 지혜로운 신부처럼, 밭에서 일하다가 들림을 받은 농부처럼 살 수 있을까요? 남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성령님의 교통과 감동과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2) 남에게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제 자신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3) NIV, Message, 그리고 Rick Warren의 책을 가지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게 하십시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