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26과
아브라함의 죽음
김태정 목사창세기 25:1-11약 34분 분량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7-8절)
화자는 이곳에서 일견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짜깁기 하듯 엉성하게 엮어 <아브라함 이야기>의 결말로 삼고 있습니다. 아내 ‘사라’의 생전이었는지 사후였는지 그 시기조차 알 수 없는 두 번째 결혼에 관한 이야기, 처음 결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식들에 관한 소개, 적자인 ‘이삭’뿐만 아니라 이들 서자들 모두에게도 유산을 나누어주는 이야기,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향년 175세를 일기로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사라’가 묻혀 있는 ‘막벨라’ 동굴에 함께 매장했다는 이야기 등등이 마치 넝마 주머니에 마구 쑤셔 넣은 휴지처럼 섞여 있습니다.
이들 에피소드들이 과연 <아브라함 이야기>의 결론으로 합당한가? 그렇다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과연 이들 각각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화자의 의도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본문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문학과 역사
단락과 구조. 본문은 세 개의 다른 전승을 함께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결혼(1-4절)
2. 유산의 분배와 상속(5-6절)
3. ‘아브라함’의 죽음(7-11절)
그리고 ‘이삭’과 관련한 마지막 구절(11절), 즉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고 그는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였다는 언급은 이어지는 <이삭 이야기>(25:19-35:29)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법은 <창세기> 화자의 전형적인 서술 방식이기도 합니다. 참고: 4:25-26; 6:5-8; 9:18-29.
특히 한 이야기의 끝부분에(제 6막) 새로운 출생에 관한 언급을 추가하고 있는 방식은(1-2절), 제 2막 <에덴 이야기>의 끝부분에 ‘셋’과 그의 후손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고 있는 방식과 너무나 흡사해서, 편집적인 삽입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25:1-2)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5-26)
이곳에서 추가하고 있는 세 가지 다른 내용은 <아브라함 이야기> 어디에도 포함시키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 본문은 마치 잡다한 쓰레기를 담고 있는 넝마 바구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아브라함 이야기>와 <이삭 이야기> 및 <야곱 이야기> 끝부분에 모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점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순환적인 구성을 통해서도 의도적인 편집의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료와 편집. 다음은 본문에 대한 역사적인 질문입니다. 이들 내용 속에 등장하는 이방 족속들의 이름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바는, 이들 전승들이 아주 오래된 것들이며 이스라엘이 ‘아라비아’ 지역에 거주하는 주변 족속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던 시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는 이스라엘이 주전 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용하게 된 ‘아랍’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광야시절부터 사사시절에 이르기까지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는 했지만, ‘모세’는 일찍이 ‘미디안’으로 도망가 그 지역 사제의 딸과 결혼까지 했습니다. 두 족속 간의 적대감을 반영하는 어떤 구절도 이들 자료 속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들 전승이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Wehham).
그렇지만 전승의 정확한 기원이나 자료에 대해서는 단언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특별히 1-6절의 내용과 관련해서 혹자는 <야훼 자료>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로써,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그 모든 소유를 주었다”는 5절의 표현은 24:36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고, <야훼 자료>의 상투어 “낳다”(ךלי)는 3절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3절에 따르면 ‘욕산’이 ‘스바’와 ‘드단’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라마’가 이 둘을 낳았다는 10:7과는 분명 상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10:7을 <사제 전승>으로 본다면, 3절은 다른 전승에서 유래했음이 분명해 집니다. 그러나 원 자료의 시기와 관련해서 ‘궁켈’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1-6절을 후대 <야훼 기자>의 편집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두 번째 결혼을 다루고 있는 이 부분은 그의 임종을 전제로 하고 있는 24장과는 다소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Skinner나 Westermann 등은 본문의 편집 시기를 더 후대로 잡고 있습니다. 1-6절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죽음과 매장을 다루고 있는 세 번째 단락(7-10절)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편집 시기가 <사제 자료>보다 더 후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근거로는 1-7절이 <사제 자료>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이 본문 속에 <사제 자료> 자료 특유의 족보나(7절) ‘막벨라’ 동굴에 장사지내는 등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막벨라’ 동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23장을 <사제 자료>로 본다면, 8-11절의 본문 역시 동일한 자료에서 유래하였거나 적어도 편집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11절에서 다시 논란이 발생합니다. 학자들에 따라 이 구절을 단일 자료로 보기도 하고 또는 두 개의 상이한 자료의 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입장을 따른다면, 11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는 내용은 10절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사제 자료>로, 그리고 11절 후반의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는 내용은 24:62와 연결되고 있어 <야훼 자료>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11절을 단일 자료로 보는 진영에서조차도 그 출처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학자들에 따라 <사제자료> 또는 <야훼 자료>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들 주장 중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그럴듯한 입장은 본문은 전체적으로 두 개의 상이한 자료 즉 <유사 야훼 자료>(1-6, 11절)와 <사제 자료>(7-10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자가 후자보다 시기적으로 오히려 후대의 편집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제 자료>가 <야훼 자료>에 비해서 탄생 시기가 후대인 것이 사실이나, <창세기> 내에서 그 반대의 경우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본문의 경우도 그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위의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5장에서 자료들을 배치하는 방식이 35-36장이나 48-50장 등에서 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은 이런 구성이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최종 편집자의 의도적이고 정교한 작업의 결과라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신학과 신앙
1. 아브라함과 그두라(1-4절)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의 계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자가 이 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이며,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가계에서 가장 특기할 만 한 점은 둘째와 넷째 아들에 대해서만 후손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두라’와 결혼한 시점을 놓고 이견이 많습니다. ‘사라’의 생전이었을까 혹은 그녀의 사후였을까? 만일 23-25장 사이에 소개하고 있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후자의 입장이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입니다. 즉 23장에서 화자는 ‘사라’의 죽음을 다룬 바 있고, 24장의 끝에(24:67) 다시 이를 재 언급한 바 있으므로, 이곳 25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두라’와의 결혼은 분명 ‘사라’의 사후에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론일 것입니다. ‘사라’가 127세를 살았고(23:1),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으니, 이 기간 동안 거의 40년이 흐른 셈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1-4절의 내용은 다시 한 번 ‘아브라함’이 누렸던 엄청난 축복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수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결혼으로 얻게 많은 자식들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라’를 통해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아들 하나를 얻은 것에 비하면 지극히 대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 40년 동안에 말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야기는 반드시 연대기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런 식으로 기록되었다면, ‘아브라함’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25:5-6) ‘야곱’과 ‘에서’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25:19-26) 이후에 등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의 손자들이 태어난 이후 15년을 더 살았기 때문입니다(21:5; 25:7, 26). 더 나아가서 24장이 암시하고 있는 바도, 그의 하인이 며느리를 찾으려 ‘하란’에 가 있는 동안 죽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25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련의 자료들도 되도록 이야기의 직선적인 흐름을 크게 끊어놓지 않는 선에서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다”는 1절의 진술을 전기 서술 방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진술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자가 의도하고 있는 바는, 이 단락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름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그들의 출생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두라’와의 재혼에 관한 언급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정확하게 언제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으며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혹자는 주장하기를 ‘사라’가 ‘하갈’을 내좇은 직후일 것이라고 하며(참고, 21:8-21), 혹자는 그보다 더 이른 시기 즉 17장 또는 14장 이전일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혼 시기를 정확하게 안다고 해서 본문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누구나 알고 있었을 두 번째 결혼 이야기를 어딘가에 기록해 놓아야 한다면, 화자는 아마 이곳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의 내용 또한 <아브라함 이야기>의 핵심 주제 “언약의 성취”와 전혀 무관하지 만은 않은 것이, 과연 아브라함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7:4-6). 다만 이 이야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삭과 리브가 이야기>의 주제를 산만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기에 이곳에 삽입한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그두라’(הרוטק)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원은 “향처럼 태우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Wenham).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1절)
이곳에서는 그녀를 ‘아브라함’의 아내로 소개하고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첩’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대상 1:32). 이런 차이는 ‘빌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 <창세기> 화자는 그녀를 ‘야곱’의 첩이라고 하기도 하고(35:22) 동시에 그의 아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30:4). 그러나 ‘실바’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으로 ‘야곱’의 아내로 부르지만(30:9), 한 번도 첩으로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서자들”(첩에서 난 아이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들이 ‘하갈’이나 ‘그두라’의 자식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두 사람 역시 때로는 아내로 불리기도 하고(16:3; 25:1) 동시에 첩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25:1). 혹자는 이런 구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즉 만일 아내로서의 ‘그두라’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 이후에 그녀와 결혼을 했음을 의미하고, 반대로 첩의 신분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사라’의 죽음 이전에 결혼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Hamilton).
‘그두라’가 낳은 아들은 도합 여섯 명입니다: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2절)
‘아브라함’이 한 아내(또는 첩)를 통해서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산(多産)은 하나님의 가장 충성한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왜 ‘사라’와 ‘하갈’을 통해서는 단 한 명씩의 아들만 허락하신 분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그두라’를 통해서는 이처럼 많은 자식을 허용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첫 아들 ‘시므란’은 이곳 외에 <역대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만(대상 1:32), <예레미야>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므리’ 지역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렘 25:25). ‘아랍 족’ 중에 ‘사마레니’(Zamareni)로 불리는 족속이 있는가 하면, 홍해의 ‘메카’(Mecca) 서쪽에 위치한 ‘삼브란’(Zambran)이라 불리는 마을도 있습니다.
‘욕산’ 역시 <역대기>에서 나타나고 있는데(대상 1:32), 이 자는 ‘욕단’과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다른 계보에서도(창 10:26-27)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를 ‘시바’의 아비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두 계보에서 공히 ‘욕단’에 대해서는 후손의 계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므단’도 이곳과 <역대기>에서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만(대상 1:32), 다른 부족이나 지역과 연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다만 혹자는 그를 ‘아라비아’의 ‘데마’ 남쪽에 위치한 ‘바단’ 지역과 연계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아라비아’어에서 두 자음 m과 b를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유가릿’ 문헌에서는 사람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두라’의 아들 중 ‘미디안’ 만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으로서, 성경 여러 곳에서 부족이나 지역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무역상으로서(37:28, 36), <요셉 이야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들이 사는 지역으로 피신하여 그곳 처녀와 결혼을 하였으며, 훗날 ‘시내 광야’에서 ‘미디안’족 장인으로부터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출 3:1; 18:1-24). 나중에 이 족속은 ‘모압’ 족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으며(민 25; 31:1-12), 사사 시대에는 ‘기드온’에 의해 ‘요단’ 서편으로 쫓겨나기도 합니다(삿 7-8).
‘이스박’은 ‘살만에셀 3세’의 비문에 등장하며, 지역적으로는 ‘시리아’ 북쪽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수아’는 ‘욥’의 친구 ‘빌닷’이 속한 부족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욥 2:11). 참고: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욥 2:11).
지역적으로는 ‘바빌론’과 ‘마리’ 사이의 ‘유프라데스’ 중간 지역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 문서에 그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이루 수시로 언급되고 있으며, 주후 천년동안에는 주로 ‘아르메니아’ 인들이 그 지역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가계는 첫 아들 ‘시므란’의 후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두 번째 아들 ‘욕산’으로 바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3절)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곳에서는 ‘시바’와 ‘드단’을 ‘욕산’의 두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만(사 21:13; 렘 49:8; 겔 27:20; 38:13), 다른 곳에서는 ‘라아마’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창 10:7). ‘함’의 계보에 따르면(10:6-7), ‘라아마’가 ‘함’의 손자이므로 ‘시바’와 ‘드단’은 ‘함’의 증손자가 되지만, 3절에 의하면 이들은 ‘아브라함’의 손자가 되므로, 두 기록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두 계보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름들이 동명이인(同名異人)이거나, 아니면 ‘셈’과 ‘함’의 계보가 남부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후대에 합쳐졌을 거나 일 것입니다.
‘드단’의 세 아들 ‘앗수르’와 ‘르두시’와 ‘르움미’는 ‘그두라’의 가계에서 유일하게 족속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이름들이기도 합니다. 첫 아들 ‘앗수르’는 성경에서 잘 알려진 ‘아수르’ 족속이 아니라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던 한 족속을 말합니다(민 24:22, 24; 시 83:9). ‘르두시’에 대해서도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이 구절뿐인데, ‘시리아’ 사막 서쪽에 거주하던 ‘드단’ 부족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르움미’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이곳에서 세 부족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 간의 상호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두라’의 두 번째 아들에 이어 네 번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을 다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4절)
<이사야>는 ‘에바’를 ‘미디안’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 가득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사 60:6). 추측건대 ‘아라비아’ 북쪽에 거주했던 한 유목 부족이었을 것이며, ‘아시리아’ 비문에 등장하고 있는 ‘하이바’와 같은 이름일 것입니다. ‘에벨’은 어린 양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역시 ‘아라비아’의 한 마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녹’을 ‘에녹’과 연계시키기도 하지만(창 4:17)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아비다’는 “아버지가 아셨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와 유사한 이름들이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엘야다’; ‘여호야다’; ‘쉐미다’. 혹자는 ‘아비다’를 ‘아시리아’ 문헌에 등장하는 ‘아랍’의 ‘이바디디’ 족속과 연계시키기도 합니다. 혹자는 ‘엘다아’를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의미일 것이라는 견해를 펼치며, ‘아라비아’의 두 왕 ‘아미야다’와 ‘야다일’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2. 상속과 분리(5-6절)
고대 사회에서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눅 15:12). 이제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이삭’에게 그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있습니다:
5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5-6절)
이 진술을 통해서도 <아브라함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적자(嫡子)에게 모든 재산을 다 가져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으며(신 21:15-17; 민 27:1-11), 서자(庶子)들은 아버지의 선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선물 정도에 해당하는 일부 재산을 나누어주고는 멀리 떠나보냅니다. ‘아브라함’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서자들이 ‘이삭’ 근처에서 함께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앞 장에서도 아들이 ‘가나안’의 처녀와 결혼하여 이들 족속들과 어울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참고, 24장).
서자들이 떠난 곳은 ‘게뎀’ 즉 “동쪽 땅”으로서, 사해(死海) 근방의 한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하인을 “동방”으로 보낸 것과 서자들을 같은 쪽으로 보낸 것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다면, 이들 서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행동은 이전에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던 것과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첩의 아들들을 멀리 내보내면서, 물이나 음식이나 선물을 주어 내보냈다는 사실을 미루어 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에필로그(7-11)
죽음. 그동안 <창세기> 화자가 취해왔던 전형적인 진술을 빌자면, ‘아브라함’의 죽음을 알리는 진술은 대략 다음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가 175세를 살고 죽었더라”(참고, 5:8; 9:29). 그러나 화자는 이곳에서 전통적인 표현 방식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습니다:
7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7-8절)
이런 표현은 그의 아들 ‘이삭’의 죽음과 비교해 보아도(35:28-29) 분명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그의 죽음에 관한 진술이 길고 상세하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화자가 의도하는 바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의 생애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를 강조하려는 것이겠지요. 그가 ‘하란’을 떠날 당시 나이가 75세라고 소개했던 화자가(12:4) 이제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나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의도는 언약의 축복이라는 맥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24:1).
그는 ‘가나안’ 땅에서만 무려 100년을 산 셈입니다. 그는 ‘이삭’보다는 5년을 덜 살았으나(35:28), 손자 ‘야곱’보다는 22년을 더 살았으며(47:28), 증손자 ‘요셉’보다는 65년을 더 장수하였습니다(50:26). 앞에서 설명한대로 만일 ‘아브라함’이 ‘사라’가 생전에 ‘그두라’라 결혼을 했다면, ‘이삭’이 나이 40에 결혼을 하였고(25:20)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로부터 20년 뒤에 출생할 때에도(25:26) ‘아브라함’은 여전히 생존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결혼할 당시 ‘아브라함’은 140세였고, 쌍둥이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160세였으니, 이후로도 15년을 더 살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창세기> 화자는 ‘아브라함’과 ‘야곱’이 서로 함께 살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 사는 것과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의 나이가 높고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는 표현이 바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화자는 그가 단순히 죽어(8절) 매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9절), 그가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구약>에서 열 번 나타나고 있는데 모두 <오경>에서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달랐을 것입니다. 적어도 죽음과 관련해서 우리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열조에게로 돌아간 후, 땅에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네 가지 순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일로서, 앞서간 선조들과의 재회 내지는 연합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을 통해서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가족 간의 결속성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경>에서 이런 표현으로 죽음을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아브라함’ 외에도(25:8), ‘이스마엘’(25:17), ‘이삭’(35:29), ‘야곱’(49:29, 33), ‘모세’(민 27:13; 신 32:50), 그리고 ‘아론’(민 20:24; 신 32:50)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네 사람(‘아브라함’, ‘이스마엘’, ‘모세’, ‘아론’)은 조상의 묘역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장사. ‘아브라함’이 죽자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그를 ‘막벨라’ 동굴에 장사지냅니다:
9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9-10절)
이 장면에서 이전에 내쫓긴 ‘이스마엘’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놓고 <자료설>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이 구절은 <야훼 자료>나 <엘로힘 자료>가 아니라, ‘이스마엘’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사제 전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이복형제 간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장례식 동안에는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이런 일이 실제 ‘에서’와 ‘야곱’ 사이에서도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 역시 견원지간 이었지만 아버지의 장례는 함께 치른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35:29).
축복의 승계. <이삭과 리브가 이야기>에 이어 <창세기>에서 두 번째로 언약의 축복이 약속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11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24:1). 이제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전가해 주셨습니다. 이 짧고도 간단한 진술은 이미 ‘아브라함’이 그의 모든 재산을 ‘이삭’에게 물려주었다는 앞선 진술(5절)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 무엇이 다른가?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마지막이 되어서야 약속이 현실이 되었지만, ‘이삭’에게는 그의 생애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이미 그 축복이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그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는 사실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장소는 일찍이 ‘이스마엘’을 임신한 ‘하갈’이 주인집에서 내쫓겨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바로 그곳에 ‘이삭’이 거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 땅과 관련하여 ‘이삭’이 ‘이스마엘’을 대신하는 선택된 자라는 강력한 암시가 베여있습니다.
교훈과 적용
아브라함이 누린 복
오래 살려면 빚을 지거나 미운 짓을 많이 하면 된다는 우리네 역설이 있습니다. 이점은 인생에 대한 지독한 회의와 비관으로 일관했던 <전도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전 7:15).
악한 자가 오래 사는 것은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도 곤란하게 만듭니다. 그분이 이 세상 악고(惡苦)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있다고 하드라도 개입해서 개선할 능력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이런 자가 힘도 세고, 돈도 잘 벌며, 자식도 많이 낳아 번창하게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마저 의심받고 거부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 중에 이런 사람이 있게 되면 무신론의 강력한 증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가 받은 모든 축복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전도자와 같은 뜻있는 자들의 불평거리에 불과했습니까?
열방의 아버지.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은 좁게는 “땅과 후손”, 넓게는 “땅과 후손과 축복”이라는 3중주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소명(召命)이자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언약에 관한 이야기는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이런 엄청난 약속조차도 부족하다고 느끼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단순히 한 민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열방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추가하신 바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곧 이 약속을 함축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17:5).
이제 <아브라함 이야기>의 막(幕)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과연 ‘아브라함’은 그의 생전에 이 약속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는 실로 행복하고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다 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줄을 믿고 죽었다고 말합니다(히 11:12). 그러나 <창세기> 화자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24:1).
그는 죽기 전에 이미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이 본문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여섯 명의 아들을 보게 된 것이 그 첫 번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열두 명의 손자들이 더 태어나는 것을 보았으며(25:13-15), 이들 모두는 나중에 여러 민족들의 조상이 될 자들입니다. 적어도 후손에 관한 한에 있어서는 언약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보다는 더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자식들이 늘고 성장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노후를 즐기고 있을 ‘아브라함’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독백입니다: “과연 내 자손들이 하늘의 별만큼, 바다의 모래만큼이나 수도 없이 많아지겠구나. 과연 내가 여러 민족들의 아비가 되겠구나.”
물론 이들 후손 중 일부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어 싸우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아브라함’이나 또는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들 언약 밖의 족속들에게조차 할례의 언약을 통해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 하셨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참고, 17장). 만일 이들이 조상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믿음에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언약의 축복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을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그의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 나의 삶은 어떻습니까?
유산과 상속. 당시 사회에서 자식보다 더 귀한 재산이나 재물이 있을 리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축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화자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부터 많은 재산과 가축과 하인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가진 재산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으며, 조카를 구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해서는 전리품까지 획득하는 행운을 만나게 됩니다. 가축의 수가 너무 많아서 방목지를 놓고 하인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 재력으로 이웃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도 ‘막벨라’ 매장지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시세(時勢) 이상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었던 그의 재력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원주민이 아닌 나그네 같은 이웃에게 땅을 살 권리를 주지 않았던 당시의 관습을 이해한다면 이런 매매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재산을 죽을 때까지 잃지 않고 지니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나누어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비단 ‘이삭’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서자들에게도 일정액의 유산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서자들은 원칙적으로 유산을 물려받을 법적인 권리는 없습니다만, 이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호의 외에도 그만큼 재산이 많고 넉넉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상속 문제를 놓고 자식들 사이에 분쟁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노인 학대가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노인 학대의 가장 큰 원인이 아들과 며느리라고 하는 통계 조사가 있는데, 이는 부모가 늙어 오갈 데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고, 설상가상 병까지 얻어 자식들에게 의지하며 살다보니 생긴 결과일 것입니다. 부모가 늙어도 재산이 많으면 자식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이점도 언약의 축복 속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까?
열조에게로.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소위 ‘웰빙’(well-being)에서 ‘웰다잉’(well-dying)으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는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더 큰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전도서> 기자도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다”고까지 했을 정도이니(전 7:4), 행복한 죽음은 우리 모두의 최대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에도 갖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명횡사(非命橫死), 급사(急死), 요절(夭折), 아무도 볼보지 않는 쓸쓸한 죽음,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의 죽음, 억울한 죽음. 어느 누구도 이런 죽음으로 인생을 마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죽음은 이런 것입니다. 많은 재산과 자식들을 두고, 오랜 세월 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병들지 않고, 그냥 기력이 다하여,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눈을 감았으면 하는 것이지요. 과욕인가요? 화자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합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장사하였으니”(7-9절).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8절). 그가 단순히 죽어 매장되었다는 진술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표현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고 난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일로서, 앞서간 선조들과의 재회 내지는 연합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을 통해서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가족 간의 결속성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열조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가서 함께 살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오늘 죽음 이후의 부활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우리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만이 그 소망을 현실로 바꾸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나에게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열조가 있습니까?
2. 아브라함: 복의 근원.
<칼레의 시민>은 조각가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이 제작한 조각 작품입니다. ‘칼레’ 市가 1347년 영국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시민들을 위해 밧줄에 목을 매어 처형받기로 자원한 여섯 명의 ‘칼레’ 시민들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복사절단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왕은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여섯 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여섯 명이 자원하여 나섰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습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습니다. 상인이 나섰습니다.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 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생 피에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가 안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지요.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 왕은 왕비의 간청으로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市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 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입니다. 1895년 6월 3일 비(碑)의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 즉 “거룩한 소명”(noble obligation)은 이처럼 처음부터 슬픔과 비장한 용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명성과 명예라는 옷은 그것을 입는 자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은 그에 걸 맞는 윤리․도덕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돼지가 진주를 걸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브라함’의 거룩한 소명도 이와 같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2-3).
그가 평생 누렸던 그 모든 축복들은 혼자의 것으로 끝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 때문이지요. 본문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그가 과연 하나님의 그 모든 축복을 다 누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축복이 자식에게로 전가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11절).
그러나 과연 무슨 수로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는 그를 <칼레의 시민>, 즉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히 11). 과연 그렇습니까? 그의 삶은 완전무결함과는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몇 중요한 순간에 ‘노블리스 오블리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례는 그가 재물을 다루는 모습에서입니다. ‘롯’과의 분쟁이 생겼을 때 그는 양보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조카로 하여금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현실적인 ‘롯’이 전쟁에 휩쓸려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을 때 그를 구출하기 위하여 전쟁터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그의 영적․도덕적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부분은 ‘소돔’ 왕과 ‘셀렘’ 왕 ‘멜기세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오면서 거들먹거리기 보다는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바치는가 하면, ‘롯’만큼이나 이기적이고 세속적이며 계산적인 ‘소돔’ 왕에게는 전쟁 노획물 모두를 다 주어버리는 장면에서 그의 도덕적 자질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세나 도움을 통해서 출세했다는 비아냥거림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창 14:23).
예수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까지 하신 바 있습니다. 이것은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모으라는 뜻이 아니고, 설령 불의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물이라 하드라도, 그것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삭개오’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그가 손님과 나그네를 접대하는 모습을 통해서입니다(18장). 처음 보는 세 사람이 그를 찾아왔을 때, 달려 나가 그들을 맞이해 들이고는, 온 집을 바삐 돌아다니면서 하인과 아내와 더불어 음식을 신속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준비하여 접대하고 있습니다(창 18:1-8). 이를 놓고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히 13:2).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행위와 같은 것인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이런 사람이 이웃 동네가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는 불가지문입니다. 과연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힘든 씨름을 벌입니다(18:16-33). 비록 그가 하나님의 뜻을 꺾지는 못했지만, 그분을 설득하기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질이 아무리 영웅적인 것이라 해도 <이삭 이야기>(22장)를 빼놓고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전 생애에서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명령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고, 지체함도 없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일견 하나님의 명령만큼이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비칩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순종과 관련해서 화자는 번번이 “그날에” 또는 “다음날 아침 일찍” 등의 표현을 자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즉각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거룩한 소명을 주셨습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벧후 1:4상);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 예수님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칼레의 시민>이 되라고 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모 단체 회장직을 맡고 있었을 때, 어떤 행사를 주최하는데 경비가 필요하여 그 중 일부를 회원들로부터 찬조를 좀 받기로 했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들을 선정하였는데, 이들은 연구비 수혜 규모에 있어서나, 학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있어서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도움을 준 사람들은 이들이 아니라,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형편에 과할 정도의 찬조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분들이야말로 <칼레의 시민>들인 셈이지요.
우리는 언론에서 소위 사회 지도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행태의 탐욕이나 비리 또는 위선을 자주 접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세금 납부는 고사하고 의료보험료마저 내지 않는 의사나 변호사들, 입만 열었다 하면 반미자주를 외치면서 정작 자식들은 미국에 보내놓은 정치가들, 모 대통령 후보가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고 신문 사설에서 온갖 비난을 퍼부어대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도 병역을 피하여 미국에 보내버린 한 방송사 사장, 북한을 소위 내재적 접근법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면서 옹호하고 정작 자신이 속해있는 남한 정부를 매도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아들은 미국에서 시민으로 살게 하고 있는 한 대학 교수, 국회의 청소년 성범죄 방지대책 위원으로 있으면서 남몰래 청소년과 성 관계를 가져 물의를 일으킨 한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며 온갖 규제책을 남발하면서 정작 자신은 남몰래 땅을 사두었던 재경부 장관, 반 동성애 활동을 벌이면서 자신은 동성애 행각을 하다 들통 난 어느 복음주의 목회자,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언론이 어째서 이런 사람들을 지도층 인사, 즉 ‘노블리스’로 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한 사람, 즉 ‘노블리스 오블리지’는 양보와 절제에 더하여, 영적․도덕적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이웃에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8-19).
연습과 토의
1. 본문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에필로그입니다.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서 핵심 주제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언약의 핵심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 「약속에서 현실로」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설교해 봅시다.
원고에 실린 그림
원고 속 자리를 확인하지 못한 그림을 모았습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