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32과
죄사함의 축복
김태정 목사시편 32:1약 13분 분량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32:1)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흔히 “창조”, “부활”, 그리고 “재림”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기본적인 진리가 있는데, “회개”가 그것일 것입니다. 성(聖) ‘어거스틴’도 “지식의 시작은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도 ‘어거스틴’은 회개와 관련해서 그것은 신학적인 그 무엇인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이 시는 이러한 점에서 <구약>의 복음서로 부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곳에서 회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지 묵상해 봅시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경직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복음의 축복에 거침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이 시를 통해서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과 역사
장르와 양식. 시 32편은 그 양식에 있어 “개인적인 감사의 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의 제목 ‘마스길’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8절에서 동일한 어근이 “가르치다”, 또는 “지도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시가 교훈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의 배경은 모종의 성전 의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배자가 어떤 질병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여(3-4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속죄제를 바치는 감사의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썩 만족할 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1-2절의 서두는 감사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 전체적으로 볼 때 지혜 전승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이 이 시의 장르를 지혜 전승을 지닌 시로 분류하고 있는 것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시에서 지혜를 나타내는 구절은 1-2절 및 9-10절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를 딱히 한 장르만으로 고집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지혜 시로서의 요소가 감사 시로서의 특징을 압도할 수 없듯이, 그 반대의 상황 또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는 감사의 시를 지혜의 전승에 따라 문학적으로 수정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단락과 구조. 이 시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는 교차대구입니다. 다만 마지막 구절(11절)은 원 작품 속에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개인적 문학 작품의 영역에서 공동체적인 제의적 용도로 변화해 가운데 생긴 추가 편집적 삽입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전반부
A(1) 지혜(1-2절)
B(2) 감사(3-5절)
후반부
B’(1) 감사(6-8절)
A’(2) 지혜(9-10절)
결론찬양(11절)
시의 각 부분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용어들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허물([v'P; 폐샤)(1, 5절); (2) 죄(ha;f;j; 하타아)(1, 5절); (30 악(@/[; 아온)(1,5 절); (4) 숨기다(hs;K; 카사)(1, 5절); (5) 경건한(dysij, 하시드)와 인자한(dsej, 헤세드)(6, 10절); (6) 많은(br, 라브)(6, 10절); (7) 둘러싸다(bb's, 사바브)(7, 10절).
배경과 역사. 이 시는 시 51편과 함께 ‘다윗’의 일생일대의 실수, 곧 ‘바세바’와의 불의한 관계(삼하 11장)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특정 한 개인에게 국한시키기에는 이 시의 전체적인 진술이 아주 일반적입니다. 예컨대 회개와 관련해서 <로마서>는 위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으므로(롬 3:9-10),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것과 같은 죄의 고백을 면제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지혜의 권면 또한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라 이 또한 시인의 충고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배경과 역사는 오히려 이 시의 적용을 일반화 하는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과 신앙
1. 죄사함의 축복(1-2절)
시의 첫 두 구절은 전형적인 지혜문학의 서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도다”(rv,a, 에셰르): “복이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시 1:1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두 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람은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자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는 자는 죄가 전혀 없는 자가 아니라(그런 자도 없지만), 죄를 용서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용서가 필요한 존재”일 것입니다. 언약의 조건이 규정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죄의 결과는 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도 “법이 많은 곳에 사망이 넘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시인은 이곳에서 인간의 “죄”를 지창하면서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허물”([v'P; 폐샤)입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입니다. 두 번째는 “죄”(ha;f;j; 하타아)입니다.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용어로서 위법 행위, 즉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는 “악”(@/[; 아온)입니다. 이는 “왜곡”, “범죄성”, 또는 하나님의 뜻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 등을 뜻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들 모두를 동의반복이라는 시적 구조 속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 각각의 독특한 의미를 구분하거나 파악하려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들 단어들은 총체적으로 인간의 악함과 구원의 필요성을 충분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사반복 구조의 네 번째 행(2절상)은 “간사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죄악임에 분명하지만, 이곳에서 용서받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단어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수단 내지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처음 세 개의 행이 암시하고 있는 용서는 회개와 고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5절 참고), 그런 회개와 고백이 정직하고 간사함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한 용서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2. 회개의 증거(3-5절)
시의 첫 두 절이 지혜에 관한 “일반적인 선언”이라고 한다면, 시인은 이제 두 번째 단락(3-5절)에서 그것을 “체험적인 고백”으로 개인화 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회개하지 아니한 자신의 슬픔을 묘사하고 있습니다(3-4절). 그런 다음에 대조 반복을 통해서 회개와 고백에 따른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5절):
3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5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시 1편이 악인과 의인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회개하지 않은 죄인과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죄인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회개하지 않은 상태(3-4절)를 “침묵”의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문맥상 이 침묵은 5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고백하지 않은 상태”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한 쌍의 표현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죄에 대한) 침묵”의 결과는 “고뇌”(신음)라는 등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3절). “신음”은 “죄 의식”과 짓눌린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결과인 것이지요. “뼈가 쇠하였다”는 말은 죄의 고백을 통해서 용서의 길을 찾기보다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면서 악을 영혼 속에 억눌러두는, 건강하지 못한 태도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이 갈수록 약화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은 “주의 손”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손, 즉 “무거운 손”은 회개의 필요성은 인정은 하면서도, 하나님에게 굴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태를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거운 손으로 가중된 죄인의 침묵은, 사막에서 물이 떨어진 자의 경우처럼 혀가 메말라 오그라들게 할 뿐입니다(4절). 혀가 회개의 말을 하기를 거부하는 한, 그 혀는 고통 가운데서 계속 오그라들 뿐일 것입니다.
(죄에 대한) 침묵은 고뇌를 낳고, 발설은 후련함을 낳을 것이라는 대조적 메시지를 5절에서 읽게 됩니다. 시인은 앞에서 죄인의 포괄적인 특징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했던 세 개의 단어(죄와 악과 허물)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죄에 대한 자신의 “고백”이 포괄적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첫 세 개의 행들 속에 나타나고 있는 고백의 행동(“자복”, “아룀”, “숨기지 아니함”)은 네 번째 행에서 기술하고 있는 하나님의 용서를 가져옵니다. 죄의 고백은 댐의 수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죄의 고백이 없을 때 물은 댐 뒤에 모여서 엄청난 압력을 가하지만, 수문이 열리자마자 물은 빠지고 압력은 줄어듭니다.
3. 경건한 자에게 기도를 권함(6-8절)
용서의 환희를 맛본 시인은 이제 세 번째 단락에서 다른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자신의 체험에 동참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6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단락은 삼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모든 경건한 자에게 동일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기도에 참여할 것을 권고함(6절); (2) 모든 경건한 자들의 기도가 뒤따르고 있음(7절); (3) 기도에 뒤이은 제사장 또는 성전 시종에 의한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8절).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 기도하라”(6절)는 말은 “곤경의 때” 또는 “환난의 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3-4절 참고).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중압감은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홍수의 범람”(6절하) 또한 중압감과 같은 맥락에서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홍수조차도 하나님에게 죄를 고백하며 기도한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절은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곳에서 전능자 하나님에게 구한 보호의 성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신처가 되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보호를 제공하시고, 승리하시는 구원자기 되실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노래”는 승리한 용사의 함성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직접적인 구원보다는 가르침과 훈계를 약속하고 있습니다(8절). 이 구절은 신탁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어조는 다분히 지혜 문학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며, 일차적으로 경건한 자가 걸어가야 할 길에 관해서 가르침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길을 걷는 자에 대해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주목하여...”
4. 지혜의 결론(9-10절)
결론적인 지혜의 훈계는 무엇입니까?
9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간혹 9절을 신탁의 일부로 간주하여 8절과 함께 다루기도 합니다만, 지혜의 결론으로 보는 것이 더 나아보입니다. 결국 지혜의 결론은 <잠언>의 지혜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잠 26:3). 결론인 즉은 말이나 나귀처럼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집이라 함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집은 채찍 즉 슬픔과 아픔만을 경험할 뿐인 반면에, 죄를 고백하는 자 다시 말해서 “경건한 자”(하시드, 6절)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10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 결론적인 찬양(11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촉구하는 결론 부분은 전형적인 감사의 노래입니다:
1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이 구절이 감사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게 해주는 것은 이 노래가 담아내고 있는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즉 “의로운 자”들에 대한 언급이 그것입니다. 지혜의 전승에 따르면 “의로운 자”는 바른 길을 걷기로 작정한 자를 말합니다(시 1:5-6):
5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교훈과 적용
시 32편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 가장 사랑했던 시라고 합니다. 그는 이 시를 즐겨 읽었고, 죽을 때는 자신이 직접 벽에다가 그 말씀을 새겨 넣어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겨놓았습니다: “지식의 시작은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받은 영감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 시는 일반적인 원칙에 대한 진술로 시작합니다(1-2절). 그리고 그 원칙에 대한 예를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제시하고(3-4절), 타인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면서(6절), 완악하지 말라는 훈계에 이어(9-10절), 마지막으로 힘찬 찬양으로 끝맺고 있습니다(11절). 이 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는 일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칭의”의 원리를 이 시의 일부를 인용함으로써 예로 삼고 있습니다.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롬 4:6-9)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복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상태에 있으며, 그 실존적 필요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가 들려주는 교훈적 측면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기도에 참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하시드, 6절)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10절)을 받은 자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 기도문>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즉 ‘하시드’는 ‘헤세드’를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용서할 줄 모르는 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였으나, 채무자로부터 그 모두를 탕감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불과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 대해서는 탕감은커녕 그를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주님의 교훈과 경고는 이것입니다:
32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2, 33, 35).
연습과 토의
1. 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구조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시의 장르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한 인식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2.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형식적 특징, 유사반복과 대조반복이 나타나고 있는 곳을 열거해 봅시다.
3. 이 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 시를 <구약>의 복음으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4. 이 시의 교훈과 관련해서 토의해 봅시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