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앙 및 소명 간증
김태정 목사요한복음 1:5약 11분 분량
김 태정
저는 사실 내 나이 37 살이 되던 해 까지만 하드라도 지금 전하려고 하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습니다. 간혹 어릴 적에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든지 하는 등의 경험은 있었지만, 이 기간동안 누구 한 사람으로부터 이 복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전함을 받아 본 적이 없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철저하게 내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구태여 종교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논의를 하고 있는 자리에 우연히 끼게 되면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 자신을 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 종교들에 대해서 그렇게 배타적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때 까지 나는 나름대로 일찍부터 세워둔 인생의 계획들이 있었고, 또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들에 충실했어야 했기 때문에 설사 누가 와서 인간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하드라도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 듭니다. 또 화학이라고 하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과학도로서 그러한 주제는 할 일 없이 시간만 축내는 자들에게나 속한 논쟁의 대상쯤으로만 여겼고, 또 실제 그러한 때가 왔을 때 나는 그러한 식으로 논쟁함으로써 진실 규명을 회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난 1984 년 5 월의 일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그 후 인생의 진로 문제로, 즉 귀국해서 평소 그렇게 원했던 대학 강단에 설 것인가, 아니면 이 곳 풍요로운 곳에서 계속 살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로 고민을 하면서, 좀더 유예 기간을 갖고, 또 보다 많은 연구 경력을 쌓기 위해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일이 바로 그 분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나 생각 듭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보다 빠른 적응을 위해서 대개의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그러하는 것처럼 이곳에 도착하자 말자 교회를 먼저 찾게 되었고, 그 후 주일이면 그곳에 가서 처음 한동안 내 자신을 들어내 보일 필요도 없이, 또 그 무엇에 내 자신을 헌신할 필요도 없이 평범한 종교인으로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즉 내 자신과 새로운 어떤 주체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예로, 그 교회에서는 예배를 마치면서 항상 초청 및 결단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 때 함께 부르는 찬송가는,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로서 도대체 이 찬송이 나오면, 즉 이 시간만 되면 불쾌해 지고, 무언가 내 자신의 부끄러운 그 무엇이 드러나는 것 같아 그 교회의 목사님들이나 동료 교인들을 향하여 내심 많은 불평과 미움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이러한 내적인 갈등은 마치 밝은 빛을 보면 곧장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리는 바퀴벌레의 그것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나의 경험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을 나중에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이기지) 못하더라”(요 1:5).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이 모든 결정의 주인이었고, 또 가치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주일날 그 찬송을 들을 때마다 심사가 뒤틀리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그 뒤로 나는 갈수록 기독교 그 자체에 대해서조차도 반감과 의구심을 가져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반감이라 함은 우선 이 종교가 갖는 독선과 또 한편 그 비할 데 없는 어리석음 이었습니다. 독단이라 함은 예로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인데 이 구절은 결국 나 외에는 생명도 진리도 없다. 즉 내가 진리와 생명 그 자체라는 엄청난 독선과 배타성으로 말미암아, 결국 듣는 자에게 흑백 논리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실로 심각한 반감이었으며, 또 다른 나의 반감을 촉발 시켰던 점은 소위 죄의 용서와 그의 대신 죽음이라는 것이었죠.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롬 5:8) 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도대체 남에게 의해서 용서받아야 할 정도의 죽을죄를 지었는가와, 설령 그렇다 하드라도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지 애꿎은 사람이 왜 나를 위해 죽기는 죽는단 말인가? 하는 내 편에서 보면 아주 자존심 상하는 문제였고, 또 죽은 그 사람을 바라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내 편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호의가 완전히 무시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 소위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하는 식의 아주 근본적인 회의들로 해서 실로 저는 종교인 그 이상은 될 수가 없었고 또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아내가 난데없이 제가 살던 집 근처에서 유학생들을 상대로 그 교회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던 성경 공부에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는데 아내의 청이라 마지못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이 처음 한동안은 모이는 그 무리들에게 냉소를 보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그 무엇인가 드러날까 봐 그랬던지 계속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하느라고 무척이나 고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체면도 있고 해서 계속 참여를 했었는데 약 한달 뒤 쯤 인가부터서는 어깨 너머에서 그냥 듣기만 하던 성경의 그 구절들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과학적이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자부한다면 이 성경을 내가 알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이후 그 성경 공부를 통해서 제일 먼저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내가 그토록 숨기고 방어하기를 원했던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의 지극히도 추한 모습으로 옷 입고 있던 내 자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나는 비로소 나의 참 모습과, 나의 위치와, 처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후련한 일이었는지...
그 뒤 나의 모든 가치관, 세계관에는 완전한 새로운 정립이 시작되었는데, 그 한 예로 회심 이후 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드라도 주님을 위한 증인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으며 이후 이곳 경북대학교에 부임하면서도 나는 앞으로의 선교의 비전도 바로 이곳으로서 여기를 떠날 때까지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해야 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함께 하셔서 구원 얻을 자들을 하나 둘씩 보내셨고 그 수는 조금씩 늘어가서 이제는 이미 졸업하여 직장을 갖게 된 자도 적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우주와 역사 그리고 과학법칙 및 생명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 세계관으로의 무장은 나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잡다한 다른 세계관들의 오류를 지적하여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하였고, 특히 전공이 화학인지라 자연과학 분야에 만연된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무신론적 자연주의나 신비적 범신론 등과의 투쟁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하였습니다. 감사하기로는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될 당시부터 이곳 대구 및 경북 지역에도 이미 전공을 달리하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어 이러한 사역들을 성공적으로 감당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도 뒤늦게 참여하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이곳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과학도로서 또한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 일에 기쁨으로 진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사역, 특히 학교 안에서의 성경공부 모임은 한 가지 근본적인 제약을 안고 있었습니다. 즉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의 사무실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으로는 올바른 제자훈련은 물론 효과적인 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워져 갔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훈련을 받아 가르치는 자와의 인격적인 관계는 물론 영적 번식을 위한 다음 지도자로서 이용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자신이 속해있던 교회로 출석하게 되거나 졸업 후에는 더더구나 그나마 그동안의 관계마저도 소원해져서 나는 항상 신학기가 되면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 다시 처음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들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공부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이 공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아무런 계획도, 앞날에 대한 설계도 없이 그냥 공부만 하는 것에 대해서 다소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나 또한 이들을 이러한 모임에 계속해서 헌신하게 할 특별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점차 나는 나름대로의 교회 개척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야말로 막연한 미래의 일 정도로 머리 속에서만 남아 있었지 도저히 그러한 일을 구체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게 느껴지는 장애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우선 설득해야 하는 일에서부터, 나 자신의 시간을 따로 떼어 신학 공부를 해야 하는 문제, 그리고 주변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의식, 등등, 차라리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현상대로 그냥 유지해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생각들은 점점 더 큰 갈등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으며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기도를 해보기도 했고 또한 내가 과연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받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이러한 질문들이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며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뜻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찾고 알고자 했던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숨겨진 뜻, 즉 그의 특수한 부르심이었는데, 그러나 내가 실로 알아야 할 그의 뜻은 오히려 그의 모든 신자를 향한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부르심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성경의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나 자신 그렇게 가르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리석게도 그 전통적인 질문들, 즉 내가 과연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그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나를 참으로 자랑스럽게 했고 또한 마음에 큰 위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특별히 도움이 되었던 말씀으로는 디모데 후서 3 장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지도자의 자격에 관한 바울의 제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부르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의 부르심을 좇아 오히려 그 직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온갖 노력과 방법을 동원하기를 즐거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지난 7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미 이곳의 선교사로 그리고 목회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나를 이용하고 계셨고 나 자신 또한 그러한 일을 즐거이 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서서히 이곳 학원에서 자비량 목회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버클랜드 교회에서 전도사 임명을 추천해왔습니다. 아마도 그동안의 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인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추천이 나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비록 목회를 함에 있어 신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법칙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르치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또는 우리들을 이상한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개인적인 배려로 나는 이 전도사 추천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본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또 다른 배경에는 주님의 선례를 따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있기도 했다. 즉 도무지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덕을 세우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시던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배우는 동안 나름대로 그동안 단편적으로 배워왔던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토대를 마련도 해야겠고 더 나아가 새로운 학문들에 대한 지식은 물론 목회사역 그 자체에 대한 좋은 경험들을 쌓은 선배 교수님들로부터 더욱 많은 것들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감사하며 또한 즐거울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반대하던 나의 아내마저도 이 일에 순순히 응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그동안의 수년 동안의 성경공부 모임의 결과 지난 1993년 2 월 14일 내가 근무하는 이곳 경북대학교 캠프스 안에서 침례 진흥원장을 비롯한 많은 친지들과 동료들의 기도와 격려 가운데서 창조침례교회라는 이름으로 첫 창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창립 당시 여러 가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몰라 현재 본 교회가 가입하고 있는 대구 지방회에 가입하기까지 선배 목회자들의 의구심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선배 목사님들의 배려로 가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다니던 신학교도 졸업하게 되었고, 개척 후 약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새롭게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나 또한 이 일을 통해서 많은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해짐을 느끼며 누구나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이러한 사역을 위한 준비에 항상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이니 만큼 이제 우리 교회의 목적은 철저한 훈련과 양육을 통해서 학원과 세계를 향한 선교, 다시 말하자면 다음 세대를 향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그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일련의 목표들로서 교회의 조직과 기능을 크게 교회학교, 교회목장, 교회행정부의 셋으로 나누어 교회학교에서는 교회가 최고의 신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18년 과정의 성경 및 일반 교양과정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목장은 순수한 가정의 사역을 닮은 것으로서 마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있듯이 목장의 목자와 목양으로 편성하여 철저한 순종을 통한 신앙훈련을 거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행정부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지원해주기 위한 일반 재정 및 총무의 사역을 감당케 하였습니다. 대교회 한 개를 세우기보다는 작은 교회 여럿을 여러 지역에 설립한다는 목표 아래 향후 10년 이내 인근 도시의 학원 근처에 또 다른 교회를 본 교회에서 배출한 교인 및 신학졸업생으로 하여금 개척토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