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22과
레위의 도시들
김태정 목사여호수아 21:1-42약 28분 분량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아래 성읍들과 그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21:3)
문학과 역사
범위와 단락. 본문은 내용상 앞의 단락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단락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 단락의 시작과 결말의 진술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1절)
41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42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41-42절).
자료와 편집. 본문의 구조적 특징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역대기>의 본문(대상 6:54-81)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해 집니다. 본문의 구조적 특징은 <역대기>의 해당 본문과의 비교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Butler, 223-224쪽.
두 본문을 개괄적으로 비교해 본다면, 모두 기본적으로 동일한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 배열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예: 21:5-9와 6:61-65). <여호수아>의 본문은 그 설화적 배경을 <민수기> 35:1-8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에 <여호수아> 14-19장에 소개하고 있는 일련의 모티브들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업의 분배에 관한 것이나(14:2; 15:1; 16:1; 17:1, 14, 17; 18:6, 8, 10, 11; 19:1, 10, 17, 24, 32, 40, 51), ‘레위’ 인들의 어려운 처지에 관한 것(13:14, 33; 14:3-4; 18:7), 그리고 기업의 분배에 관한 ‘갈렙’의 주도적인 권리 주장(14:6-15; 15:13-14)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본문과 <역대기> 모두 ‘레위’ 인들의 성읍에 관해서 상세하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일치하고 있습니다만, <역대기>에서는 ‘단’지파에 관한 언급이나, ‘아론’의 성읍과 관련하여 ‘시므온’ 지파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역대기>는 <여호수아>를 토대로 서술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Butler, 225쪽.
단지 자료를 배열함에 있어 다소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은 <역대기> 편집자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화자의 주 관심사는 ‘레위’의 성읍들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목록을 제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괄적이고 종합적인 그림을 먼저 제시해 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서론에서 먼저 주제에 관한 진술을 한 다음(4절), 이어서 개괄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5-7절). 반면 <역대기> 화자의 주요 관심사는 ‘아론’의 성읍과 여타 ‘레위’ 인들의 성읍들을 별개로 구별하는 데 있느니만치, 따라서 ‘아론’과 관련한 제반 요소들을 먼저 언급한 연후에 결론적인 요약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연대기적으로 비교해 볼 때, <여호수아>가 앞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두 본문의 문학과 역사(배경)를 연구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9절과 13-40절과 관련해서 자료와 편집에 관한 연구가 보다 상세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Butler, 225-226쪽.
구조와 형식. 이 점과 관련하여 본문의 수사적인 특징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우선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로 순종의 모티브를 위한 ‘반복’을 들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2, 3, 8절); “제비뽑기”(4-12절). 독자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화자는 순종의 결과를 두 단락에 걸쳐 소개하고 있는데, ‘레위’의 성읍들에 관한 목록이 그것입니다: 5-7절; 13-40절. 이러한 신학적 모티브에 따라 단락 구분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3절: 배경과 주제 도입
2) 4-7절: 주제의 요약
3) 8-42절: 레위의 성읍들
(1) 8절: 서론
(2) 9-19절: 아론의 성읍
(3) 20-26절: 고핫 자손의 성읍
(4) 27-33절: 게르손 자손의 성읍
(5) 34-40절: 므라리 자손의 성읍
(6) 41-42절: 결론
위 단락 구분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 단락은 다시 여섯 개의 소 단락으로 세분될 수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부분(8절; 41-42절)은 이 단락의 전체적인 내용을 수미 상관적으로 요약하면서 각각 서론과 결론의 기능을 하면서, 신학적인 주제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순종에 대한 모티브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아론’과 ‘레위’의 세 후손들의 기업에 따른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문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반복과 신학적 주제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학과 신앙
1. 배경과 주제(1-3절)
‘레위’ 인들에게 성읍을 나누어주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몇 번씩이나 등장했던 내용이긴 합니다만(13:14, 33; 14:3; 18:7),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오히려 이들은 땅과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분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수아나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의 족장들이 아니라, ‘레위’ 지파 스스로 나아와서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갈렙’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던 것과 흡사합니다(14:6). ‘레위’가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 있는 그 법에 있다는 것입니다:
1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2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1-2절)
이들의 요구 사항은 받아들여졌습니까? 화자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자기의 기업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3절)
사실 <민수기>의 기록에 따르면 ‘모세’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찍이 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민 35:1-8).
이 단락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레위’가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며 나아온 곳이 ‘실로’라는 점입니다. 반복되는 두 표현, “모세의 규례”와 “실로”는 화자가 무엇을 강조하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표지판과도 같습니다. 책 전체를 통해서 흐르고 있는 일관된 주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레위’ 인들이 차지하게 될 땅은 농사를 짓기 위한 땅이 아니라 가축들을 먹일 방목지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양이나 염소 등의 가축들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장 잡아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옷을 위한 가죽으로도 쓰일 수 있고, 더 나아가 희생 제사를 위한 제물로도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었다”는 언급(3절)은 마치 이스라엘 각 지파가 희생제물을 레위 지파에게 가져오는 행위를 연상케 합니다.
2. 주제 요약(4-7절)
각 지파가 그 땅을 나누어주는 방식 역시 이번에도 이전에 다른 지파들에게 적용했던 “제비뽑기”의 방식을 따랐다고 세 번에 걸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4그핫 가족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레위 사람 중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고, 5그핫 자손들 중에 남은 자는 에브라임 지파의 가족과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 성읍을 받았으며, 6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지파의 가족들과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와 바산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 뽑은 대로 열세 성읍을 받았더라(4-6절)
다시 한 번 화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에 관한 모티브입니다. ‘레위’의 세 아들은 태어난 순서로 보자면, ‘게르손’, ‘그핫’(또는 ‘고핫’), 그리고 ‘므라리’ 입니다만(창 46:11; 출 6:16), 먼저 제비가 돌아간 지파는 대제사장 ‘아론’의 조상 ‘그핫’의 후손들이었습니다(4절후). 그리고 이들에게 돌아간 성읍은 ‘유다’와 ‘시므온’과 ‘베냐민’ 지파의 땅 중에서 취한 13개 성읍입니다. 그리고 이들 성읍은 훗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예루살렘’에 인접한 성읍들입니다. 21장 전체를 보면 ‘레위’의 성읍이 도합 48개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로부터 각각 네 성읍을 취한다고 볼 때 산술적으로 얻어지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핫’ 자손이 세 지파로부터 취한 도시의 수는 13이 아니라, 12가 됨이 마땅할 텐데 이곳에서 그러한 형식상의 규칙이 깨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러한 불규칙성은 ‘납달리’ 지파를 언급할 때 다시 한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16절). 혹자는 이러한 숫자상의 불규칙성은 오히려 본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척도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즉 ‘아론’의 13개 성읍은 처음부터 48개의 ‘레위’ 성읍들과는 별개로 구별되어있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두 가지 관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는 <역대기>의 기록과 관련한 것으로서 이곳에서는 ‘아론’의 성읍을 언급하면서 ‘시므온’ 지파에 대한 언급은 빠뜨림으로서 ‘유다’지파로부터 9성읍만 취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은 각 지파 당 네 성읍씩이라는 숫자상의 규칙성과 관련된 것으로서, 이는 후대의 편집적인 손길의 결과로 볼 수 있는 것이, 예를 들어 <민수기> 35:8에 의하면 지파 당 인구 숫자에 따라 성읍의 숫자 역시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의 전승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규칙성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5절에 따르면 ‘단’ 지파는 원래 배정받았던 지역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만, <사사기>에 따르면 훗날 북방으로 이주하여 그 경계를 확장한 바 있습니다(삿 18). 이 지파의 경계는 남쪽 ‘유다’나 ‘베냐민’ 지파가 아니라(삿 15:9-13), 북쪽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와 접해 있습니다.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주지하다시피 ‘바산’ 지역의 ‘요단’ 동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이 단락에 따르면(6절) 오히려 ‘요단’ 서쪽의 ‘잇사갈’, ‘아셀’, 그리고 ‘납달리’ 지파와 연계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스불론’은 ‘요단’ 동편의 ‘르우벤’과 ‘갓’ 지파와 연계해서 소개하고 있는데(7절), 이를 통해서 고대 전승에서 취한 자료의 일부로 볼 수 있게 하는데 이 전승은 레위의 성읍들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지파의 목록과는 다른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므라리 자손들은 그 가족대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열두 성읍을 받았더라(7절)
3. 레위의 성읍들(8-42절)
서론. 세 번째 단락은 ‘레위’ 인들에게 돌아간 48개 성읍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자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이 이러하니라(8절)
이 구절은 일견 앞 단락의 결론으로 귀속시킬 수도 있겠으나, 세 번째 단락의 서론적 요약으로 취급함이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신학적 기능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 순종의 모티브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아론의 성읍. 8절의 신학적 서론에 이어 9절에서부터 실제 성읍들의 목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다 자손의 지파와 시므온 자손의 지파 중에서는 이 아래에 기명한 성읍들을 주었는데(9절)
그런데 9절 후반의, “기명한 성읍”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훗날 이들 성읍들의 이름을 새롭게 불렀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전부터 이들 48개 성읍의 목록이 분명하게 확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후 어느 왕도 이 목록에서 한 도시를 빼거나 더하거나 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아론’의 주도적인 역할이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론’ 자손의 분깃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 자손 중 그핫 가족들에 속한 아론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혔으므로(10절)
그리고 이 구절은 이어지는 두 절에 대한 서론에 해당합니다.
11아낙의 아버지 아르바의 성읍 유다 산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를 그들에게 주었고, 12그 성읍의 밭과 그 촌락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11-12절)
이 두 절은 <갈렙 전승>이나(14:6-15; 15:13-14) <레위 전승>(13절)에 비추어 볼 때,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이 두 절이 분명하게 해 주고 있는 바는, ‘아르바’ 성읍과 주변 목초지는 ‘레위’ 지파에게 주었으나, ‘헤브론’을 비롯한 여타 성읍들과 농경지들은 여전히 ‘갈렙’ 지파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구분을 통해서 ‘레위’ 지파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 세력화 하는 것이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력을 축적해 가는 것 또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민수기>(35:6)에 소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도피성은 모두 ‘레위’의 성읍 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목초지이요 또 립나와 그 목초지와(13절)
이처럼 도피성이 ‘레위’의 성읍 내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들어 후대 편집의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만(Noth),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사실 <민수기> 35:6은 여섯 개의 도피성과 그 외에 42 성읍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 어떤 다른 전승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듯도 합니다만, 이 역시 분명치가 않습니다. 추측컨대 도피성은 고대의 제단(祭壇)과 일단의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으로서, 이들 성읍이 ‘레위’의 소유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도 나름대로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레위’의 모든 성읍들이 고대의 성소였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헤브론’과 관련해서 10:3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며, ‘립나’에 대해서는 10:29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아론의 후손들의 성읍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4얏딜과 그 목초지와 에스드모아와 그 목초지와, 15홀론과 그 목초지와 드빌과 그 목초지와, 16아인과 그 목초지와 윳다와 그 목초지와 벧 세메스와 그 목초지이니 이 두 지파에서 아홉 성읍을 냈고, 17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목초지와 게바와 그 목초지와, 18아나돗과 그 목초지와 알몬과 그 목초지 곧 네 성읍을 냈으니, 19제사장 아론 자손의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14-19절)
‘얏딜’은 오늘날의 ‘기르벳 아티르’로 보이며, 이 지역은 ‘헤브론’의 동남 13 마일과 ‘브엘세바’의 북동 14 마일 떨어져 있습니다(참고. 15:48; 삼상 30:27). ‘에스드모아’는 오늘날의 ‘에스-사무’로서, ‘헤브론’의 남서 14 킬로미터에 위치해 있습니다. 철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은장구와 주괴(鑄塊)들이 이곳에서 발견된 바 있습니다(참고. 15:50; 삼상 30:28). ‘홀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15:51). ‘드빌’은 이 책의 제 1부에서 정복 전쟁과 관련해서 등장한 바 있습니다(10:3). ‘아인’은 도시의 이름이라기보다는 한 지역의 이름으로 보입니다(15:32; 19:7; 민 34:11). ‘윳다’는 ‘헤브론’의 남서 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얏다’(Yatta)인 것으로 보입니다(15:55). 그 위치는 오늘날의 ‘벳-세메스’(Beth-Shemesh) 근처로서, ‘예루살렘’ 서쪽 20킬로미터 지점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성경>외의 다른 고대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 18세기 경 유적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이 도시는 “태양의 집”이라는 호칭도 가지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태양신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단’ 지파에게 할당된 ‘이르세메스’ 즉 “태양의 도시”와 동일한 지역일 것으로 보입니다(참고. 19:41; 15:10; 삼상 6; 왕상 4:9; 왕하 14:11, 13; 대하 28:18). ‘베냐민’ 지파에서 내놓은 네 성읍들은(17절) ‘예루살렘’ 성소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목록에서 뺘져 있는 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목록은 ‘예루살렘’이 성소(즉 ‘기브온’의 山堂)로 확정되기 이전 ‘다윗’ 시절을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게바’는 유다의 북방 경계와 연한 ‘베냐민’의 도시로서(18:24; 왕하 23;8; 슥 14:10), 오늘날 ‘예루살렘’의 북동 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예바’(Jeba)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참고. 삼상 13-14; 삼하 5:25; 왕상 15:22; 사 10:29; 스 2:26; 느 7:30; 11:31; 12:29). ‘아나돗’은 <예레미야>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유명한 도시입니다(렘 1:1; 11:21-23; 29:27; 32:7-9). 그 이름은 ‘가나안’의 여신 ‘아낫’(Anath) 신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사 10:30; 스 2:23; 느 7:27; 11:32).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라스 엘-카루베’(Ras el-Kharrubeh)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몬’은 이곳에서만 등장하고 있는데, ‘아나돗’ 북동쪽 1.6킬로 지점에 위치에 있습니다.
고핫 자손의 성읍. ‘고핫’ 자손의 남은 자들의 가족들에게는 이전에 ‘에브라임’과 ‘단’과 ‘므낫세’ 반 지파의 경계 상에 있는 ‘가나안’의 요새들이 돌아갔습니다:
20레위 사람인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들의 가족들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 21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목초지이요 또 게셀과 그 목초지와, 22깁사임과 그 목초지와 벧호론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3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 24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5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다아낙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두 성읍이라. 26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들을 위한 성읍들은 모두 열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20-26절)
‘세겜’은 <육경>의 역사에서 핵심 도시입니다. <사사기> 8-9장에 따르면, 이곳은 ‘바알’ 신앙의 본산으로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바알-베릿트’, 즉 “언약의 바알”이라는 언급이 등장할 정도입니다(삿 8:33). 그리고 이 도시는 또한 <족장 이야기>와도 깊은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만(창 12:6; 33:18-35:4; 37:2-14), 유독 <여호수아>의 정복 이야기에서는 이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단지 종교적 제의와 관련해서 두 번 등장하고 있을 뿐입니다(8:30-33; 24:1-28). 이 도시의 위치는 ‘므낫세’ 지파의 영역과 경계선 상에 있습니다만(17:7), 도시 목록에는 빠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발굴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주전 3600년경에도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1900-1540년 사이와 1450-112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많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이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서 종교와 관련하여 이 도시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게셀은 ‘세겜’에서 남서쪽으로 꽤 떨어진 곳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도피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이 단락의 일부 구절이 후대의 편집적 삽입으로 보기도 합니다. ‘게셀’의 위치는 ‘텔-예세르’로서 ‘라므레’에서 남동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도 적어도 주전 3300년경에 이미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2500-1900년 사이에는 버려진 채로 남아 있다가 1650에 이르러 요새가 세워졌습니다. 이곳에서 열 개의 성전 기둥을 가진 거대한 성전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가 파괴된 것은 1470년으로서 이마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며, 도시의 재건은 1400년 경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주전 14세기에 ‘게셀’의 왕들로부터 ‘아마르나’ 서신 열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집트’의 ‘메르넵타’가 1232년경에 이 도시를 파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아무런 고고학적 증거는 없는 실정입니다. ‘게셀’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된 것이긴 합니다만, 정복된 적은 없습니다(16:3, 10). ‘블레셋’ 족속이 12세기경에 이 도시를 차지하여 이스라엘 왕정이 시작될 때까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왕상 9:15-17). ‘솔로몬’ 왕이 이곳에서 새로운 요새를 건설합니다만, 924년경에 곧바로 ‘시삭’ 왕이 이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 도시를 재탈환하게 되나 733년에 ‘아시리아’에게 다시 내어주고 맙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 도시를 다시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586년에는 ‘바벨론’이 다시 약탈해 버립니다.
‘깁사임’은 이곳에서만 등장하고 있으며, 그 위치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아마도 ‘욕느암’에 대한 본문 파괴로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열왕기 상>이나(왕상 4:12),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등장하고 있는(12:22; 19:11; 21:34) 유사한 이름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벧 호른’은 적어도 네 개의 작은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 상에 위치한 저지대와(16;3; 18:13), 고지대, 및 ‘에브라임’의 남쪽 경계 상에 위치한 지역(16:5) 등을 말합니다(참고. 왕상 9:17; 대하 25:13).
‘단’ 지파에 속해있던 ‘엘드게’는(19:44) 주전 701년에 ‘아시리아’의 ‘산헤립’과 ‘이집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혹자는 이 도시를 ‘게셀’의 북서쪽에 위치한 ‘텔 엘-멜랏’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단’ 지파의 또 다른 도시 깁브돈은(19:44) 남북조 시대 초기에 블레셋이 차지하게 됩니다(왕상 15:27; 16:15-17). 그 위치는 ‘텔 엘-멜랏’의 서쪽 4킬로미터의 ‘아기르’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역시 ‘단’ 지파의 ‘아얄론’은(19:44) 이스라엘이 정복한 도시였음에도(수 10:12), ‘아모리’ 족속의 지배하에 남아있었습니다(삿 1:35). 그 위치는 ‘예루살렘’의 북서 20킬로미터의 ‘엠마오’ 근처 ‘얄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참고. 삼상 14:31; 대하 11:10; 28:18). 그리고 ‘가드 림몬’의 위치는 오늘날 ‘야콘’ 강 유역의 ‘라맛’ 간 지역 내에 있는 ‘텔 예리세’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고고학 발견에 따르면 주전 2300년이 이미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그곳을 요새화 했습니다만, 주전 16세기 중반에 파괴됩니다. 도시 재건이 곧바로 있었습니다만, 다시 파괴가 뒤따랐고(주전 1200년) 곧이어 ‘블레셋’이 이곳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도시는 아마 ‘다윗’이 훗날 파괴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스라엘의 통치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주전 920년경에 ‘시삭’ 왕이 다시 파괴해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다아낙’은 위치상으로는 ‘잇사갈’ 지파의 경계 내에 있었습니다만, ‘므낫세’의 소유였습니다(17:11). 그런데도 ‘가나안’의 손에 계속 남아있었습니다(삿 1:27).
게르손 자손의 성읍. ‘게르손’ 자손이 얻은 것은 ‘갈릴리’ 호수의 동서 양쪽에 위치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한 지파가 ‘요단’강의 동과 서에 걸쳐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아마 이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군사적 세력을 창출해 내기 위한 정책적 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27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28잇사갈 지파 중에서는 기시온과 그 목초지와 다브랏과 그 목초지와, 29야르뭇과 그 목초지와 엔 간님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0아셀 지파 중에서는 미살과 그 목초지와 압돈과 그 목초지와, 31헬갓과 그 목초지와 르홉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2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함못 돌과 그 목초지와 가르단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세 성읍이라. 33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27-33절)
‘골란’은 도피성 전승과 관련해서 알려져 있는 도시로서, 그 위치는 ‘엘-알란’ 강의 동쪽 제방으로 연해있는 ‘삼 엘-얄란’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7절의 ‘브에스드라’가 ‘에스드롯’의 표기 오류라고 한다면, 이는 고대의 도시 ‘옥’(Og)일 가능성이 큽니다.
‘잇사갈’ 지파에게 속한 ‘기시온’(19:20)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기손’과 관련되어 있는 듯합니다(삿 4:7, 13; 5:21; 왕상 18:40). 그 위치는 ‘텔 엘-무카르카스’나 ‘텔 엘-아줄’과 연계시키고 있습니다만 분명치는 않습니다. ‘스불론’ 지파와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다브랏’(19:20)은 ‘다보르’ 산 서쪽 ‘다부리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르뭇’은 ‘유다’ 지파에 속한 한 도시의 이름입니다(15:35; 10:3, 5, 23; 12:11; 느 11:29). 그런데 이 도시가 ‘잇사갈’ 지파에 속한 도시라고 언급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잠정적이긴 하지만 이 도시는 ‘카우캅 엘-화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엔 간님’은 ‘유다’ 지파에 속한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15:34), ‘잇사갈’ 지파의 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잠정적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예닌’에 해당하는 ‘키르벳 베이트’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아셀’ 지파의 ‘미살’(19:26)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 도시와 관련하여 ‘텔 키산’, ‘텔 엔-나할’, ‘텔 아부-하완’ 등의 여러 다른 도시들이 동일한 위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들 도시들은 모두 ‘아코’ 평원에 위치해 있습니다만, 그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셀’ 지파의 ‘압돈’(19:28)은 ‘악집’의 동쪽 5킬로미터 지점의 ‘키르벳 아브데’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역시 ‘아셀’ 지파의 ‘헬갓’(19:25)은 ‘아코’ 평원 남동편의 ‘텔 엘-하르바’로 확인되고 있습니다만, 분명치는 않습니다. ‘아셀’ 지파의 ‘르홉’은 실제 이들 지파가 정복한 도시는 아닙니다(삿 1:31). 그 위치는 ‘아코’ 평원 동남쪽 10킬로미터 지점의 ‘텔 엘-가르비’(또는 ‘베르웨’로 불림)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납달리’ 지파의 ‘게데스’(19:37)는 <사사기>에 따르면(삿 4-5) 이스라엘 군대가 집결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위치는 ‘하솔’의 북쪽 10킬로미터의 ‘텔 케데스’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발굴에 따르면 초기 청동기 시대(주전 3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이른 시기에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후기 청동기 시대나 철기시대에도 간헐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기는 합니다. ‘함못 돌’은 아마도 ‘납달리’ 지파의 ‘하마스’(19:35)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름에 따르면 이곳에 온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위치는 ‘갈릴리’ 호수 서쪽 연안의 ‘티베리우스’의 남쪽에 있는 ‘함만 타마리예’일 것으로 보입니다. ‘돌’은 지중해 연안의 갈멜 산의 남쪽에 위치한 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가르단’(또는 ‘락갓’)은 ‘티베리우스’의 북서쪽에 있는 ‘키르벳 엘-쿠레이예’와 ‘텔 에크라티예’로 보입니다.
므라리 자손의 성읍. ‘므라리’ 후손이 받은 도시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지역에 나누어져 있습니다. 즉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북서쪽에 있는 ‘스불론’ 지파의 땅에 속한 도시들이며, 또 하나는 좀 더 넓은 지역으로서 ‘요단’ 강 동편과 ‘갈릴리’ 호수 이남의 ‘르우벤’과 ‘갓’ 지파에 속한 도시들입니다. 이처럼 이들 후손의 도시들에 대한 언급이 다소 의도적이며 인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Noth의 견해에 따르면, 본문 기록은 레위 지파가 자신들이 소유한 땅도 없이 이스라엘 내의 여러 지파의 땅을 전전하며 흩어져 살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각 지역의 전승들을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4그 남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에게 준 것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욕느암과 그 목초지와 가르다와 그 목초지와, 35딤나와 그 목초지와 나할랄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6르우벤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베셀과 그 목초지와 야하스와 그 목초지와, 37그데못과 그 목초지와 므바앗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8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목초지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목초지와, 39헤스본과 그 목초지와 야셀과 그 목초지이니 모두 네 성읍이라. 40이는 레위 가족의 남은 자 곧 므라리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이니 그들이 제비 뽑아 얻은 성읍이 열두 성읍이었더라(34-40절)
‘욕느암’은 ‘스불론’의 경계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19:11). 가르다는 이곳에서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아트릿’에 위치한 이 도시는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청동기 중후반 시대와 주전 18-17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도시의 위치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딤나’ 역시 이곳에서만 등장하는 이름으로서, ‘스불론’과의 경계에 위치한 ‘림몬’인 것으로 보입니다(19:13). 그 위치는 오늘날 ‘나사렛’의 북동쪽 10킬로미터 지점의 ‘루마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스불론’의 ‘나할랄’(19:15)은 정복된 적이 없는 도시입니다(삿 1:30). 오늘날 그 위치는 ‘이스르엘’ 계곡의 ‘말룰’ 마을이나 또는 ‘아코’ 평원 남방 끝에 있는 ‘텔 엔-나할’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베셀’은 도피성과 관련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혹자는 이 도시를 오늘날 ‘메데바’ 북동쪽 13킬로미터에 있는 ‘움 엘-야마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의 또 다른 도시 ‘야하스’와 관련해서는 13:18을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또한 <사사기>(11:20) 또는 <이사야>(15:4), <예레미야>(48:21, 34) 등도 함께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르우벤’에 속한 두 도시 ‘그데못’과 ‘므바앗’도 13:18을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르앗 라못’은 13장의 목록에는 빠져 있는 도시로서, ‘솔로몬’ 왕의 여섯 주의 수도였습니다(왕상 4:13). 이 도시의 위치에 대해서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오늘날 ‘다마스커스’의 남쪽 70마일 지점의 ‘텔 엘-라밋’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갓’ 지파의 ‘마하나임’과 관련해서는 다음 구절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수 13:26; 창 32:3; 삼하 2; 17:24-27; 19:33; 왕상 2:8; 4:14. 그리고 ‘헤스본’은 다음 구절들을 통해서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 12:2; 9:10; 13:10, 17, 21, 26, 27; 민 21; 32:3, 37; 신 1:4; 2:24-35; 3:2, 6; 4:46; 29:6; 삿 11:19, 26; 사 15:4; 16:9; 렘 48:2, 34, 45; 49:3; 느 9:22. ‘갓’ 지파의 또 다른 도시 ‘야셀’은 13:25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 참고로 다른 구절들을 통해서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 21:32; 32:1, 3, 35; 삼하 24:5; 사 16:8-9; 렘 48:32; 대상 26:31.
결론. 화자는 마지막 결론을 <민수기> 35장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41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42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41-42절)
그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즉 ‘모세’의 명령이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칠십인역>에서는 이점을 더욱 분명하고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교훈과 적용
가난한 제사장들을 잘 보살피라! 이것이 본문의 핵심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민수기>나 <신명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참고: 민 35). 흔히 우리나라 목회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하듯이, 이스라엘 역시 전통적으로 ‘레위’ 인들에 대한 인식이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는 자”였던 것 같습니다. 화자는 이곳에서 이들 ‘레위’ 지파가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을까?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계를 당연히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물려받았던 것은 땅이나 농작물 등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13:14, 33). 이들은 농사 일로 자신들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18:7). 당연히 다른 지파들에 비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이 책임을 함께 떠맡으면 될 것입니다. 그 한 방법으로 이들에게 일정 몫을 지급해 주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마다 자신들의 성읍 중 몇 개를 제사장 몫으로 할당해 줄 수 있을 것이고, 희생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 몫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13:14). 제사장이 취할 수 있는 희생 제물에 대해서는 <레위기>에서 이미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레 2:3, 10; 5:13; 6:9, 11, 19, 22; 6:16, 18, 26, 29; 7:6-10, 14, 31-36; 8:31).
물론 이러한 제도가 도가 지나쳐 남용될 소지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제사장 ‘엘리’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의 아들들은 제대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불량자들로서” 하나님께 돌아갈 희생 제물조차도 자신들이 차지해 버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강제로 빼앗기도 했습니다(삼상 2:12-17).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전의 제사장들이 오히려 일반 백성들보다 더 부유하게 되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경우 제사장의 권한 남용은 훗날 성전이 파괴되고 사라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신약 교회의 경우 우리의 제사장은 오직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히브리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사장을 먹여 살리는 문제나 제사장의 권력 남용과 같은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초대 교회의 경우 교회 내에서 복음 전도자나 교사나 또는 목회자로 섬겼던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은 자비량 사역으로 생계를 꾸려가긴 했지만,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이렇게 볼 때 <여호수아> 21장은 복음 사역자들의 권리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바울’은 스스로의 생활을 통해 그러한 권리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권리는 복음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12)
사실 필자도 복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신조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나누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해 갈 계획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구절을 필자의 대답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전 9:18)
연습과 토의
1. 본문의 핵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2. 신약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3.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