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개론>은 <구약>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훈계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또 의로 교육하기 위해서 쓰신 그의 말씀이다(딤후 3:16). 이것이 <성경>의 목적이다. 즉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앙적이거나 영적인 데 있다 하겠다.
하지만 <성경>이 이와 같은 궁극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기는 해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전달함에 있어서 법조문(法條文)이나 신문기사처럼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시나 노래로 아름답게 부르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등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도록 하셨다. 즉 문학이라는 그릇을 빌어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 계신 것이다. 신학이라는 내용물이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겨있다 하겠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하는 자마다 <성경>을 통해서 일련의 신학적 진리들을 지적(知的으로 탐구할 뿐만 아니라, 이들 진리가 얼마다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정서적인 감흥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경> 공부를 통해서 교훈을 배울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 또한 체험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성경> 공부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성경>이 현재의 본문으로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와 배경과 관련된 연구가 그것이다. 결국 진지한 <성경> 연구는 궁극적으로 삼중적인 목표 달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신학과 문학과 역사”가 그것입니다.
<구약개론>의 내용이나 방법도 이 같은 궁극적 목표 달성을 염두에 두고 구성될 것이다. 먼저 제 1권에서는 총론적 내용들을 다루게 될 것인데, <구약>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 및 구약세계의 지리와 역사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어지는 제 2-4 권에서는 <구약> 각 책에 대하여 총론에서 도입한 원리들, 즉 “신학과 문학과 역사”적 내용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목차 참고). 모쪼록 본 교재가 <구약>을 보다 잘 이해하고 깨닫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18) Wenham, G. J. Exploring the Old Testment. Vol. IV. Downers Grove: IVP, 2003.
2. <성경 지도>
(19) Rasmussen, C. G. Atlas of the Bible. Grandrapids: Zondervan, 2009.
(20) 사이몬 젠킨스, <성경과 함께 보는 지도>. 박현덕 역. 서울: 목회자료사, 1990.
3. <성경 역사>
(21) 류모세,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1부-3부. 서울: 두란노, 2012.
(22) 조병호, <성경과 5대 제국>. 서울: 통독원, 2011.
(23) 조병호, <성경과 고대전쟁>. 서울: 통독원, 2011.
목 차
제 1권: 총론
제 1장 서론 ....................................................................................................1
제 2장 성경과 계시 ......................................................................................5
제 3장 구약의 역사: 정경화 ....................................................................16
제 4장 구약의 역사: 비평사 ....................................................................31
제 5장 구약세계: 지리 ..............................................................................46
제 6장 구약세계: 역사 ..............................................................................61
제 7장 구약과 고고학 ...............................................................................72
제 2권: <오경>
제 8장 서론
제 9장 창세기
제 10장 출애굽기
제 11장 레위기
제 12장 민수기
제 13장 신명기
제 3권: <역사서>
제 14장 서론
제 15장 여호수아
제 16장 사사기
제 17장 룻기
제 18장 사무엘
제 19장 열왕기
제 20장 역대기
제 21장 에스라-느헤미야
제 22장 에스더
제 4권: <성문서>
제 23장 서론
제 24장 욥
제 25장 시편
제 26장 잠언
제 27장 전도서
제 28장 애가
제 5권: <선지서>
제 29장 서론
제 30장 이사야
제 31장 예레미야
제 32장 예레미야 애가
제 33장 에스겔
제 34장 다니엘
제 35장 호세아
제 36장 요엘
제 37장 아모스
제 38장 오바댜
제 39장 요나
제 40장 미가
제 41장 나훔
제 42장 하박국
제 43장 스바냐
제 44장 학개
제 45장 스가랴
제 46장 말라기
제 1장: 서론
1
서 론
1. 내용과 방법
<성경>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超自然的 啓示)의 산물이자, 동시에 자연적(自然的)이며 역사적(歷史的)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진공 상태에서 어느 한 순간에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경>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과정을 포함하며, 인간의 언어와 문화와 관습과 전통을 통로로 사용하였다. 이는 곧 <성경>이 신학이라는 내용물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학이란 인간 경험의 표현으로서, <성경>은 다양한 형태의 문학적 장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예컨대, <구약개론>의 내용과 방법도 “<구약>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개론>은 “<구약>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에 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역사. <구약>의 역사라 함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을 포함한다. 하나는 <구약>이 현재의 본문으로 최종적으로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일컫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구약> 본문의 배경에 대한 탐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약>의 역사는 <구약> 본문의 변천사와 <구약>의 배경사(背景史)에 대한 탐구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 본문의 변천사에 관한 탐구는 다시 연구의 대상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는바, 흔히 하등비평(下等批評; lower criticism)과 고등비평(高等批評; higher criticism)으로 불리는 <성경> 비평 방법론이 그들이다. 하등비평은 본문비평(本文批評; textual criticism)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그 학문적 가치가 고등비평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기초적이며 초보적인 본문 자체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하등비평 방법은 연구의 대상을 <성경>의 본문에만 국한시키는데, 그 목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참고. 이형원, <구약성서비평학입문>. 대전: 침례신학대학 출판부, 1993, 57
첫째, 현존하는 여러 <히브리어 사본>과 <번역본>을 비교하여, 본문을 원래의 형태나 의미에 가장 가깝게 재구성(再構成)한다. 이 작업 속에는 본문의 난해한 구절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오랜 세월 동안 ‘히브리’어 본문에 섞여있는 오류(誤謬)들을 제거하는 일도 포함되어있다. 둘째, 여러 <사본>과 <번역본>을 비교 연구하여 가장 오래된 <사본>을 추정한다. 셋째, 이상의 작업을 통하여 오랜 역사를 거친 본문의 변천사를 아울러 소개한다.
한편 고등비평 방법은 하등비평 방법을 제외한 모든 현대적 <성경>비평 방법론을 통칭(統稱)하는 것으로서, 일반 문학비평에서 도입하는 일체의 방법론을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비평의 주된 대상은 <성경> 본문의 역사적 측면은 물론 최종 본문의 사회, 문학, 신학적 측면에 있다. 여기서 고등비평은 그 관심의 대상에 따라 다시 두 가지 방법론으로 나눌 수 있는데, 통시비평(通視批評; diachronic criticism)(혹은 역사비평, 歷史批評)과 공시비평(共視批評; synchronic criticism)이다. 통시비평의 관심사가 정경화(正經化)에 이르는 역사의 전 과정에 있다면, 공시비평의 관심사는 최종 본문의 사회, 문학, 신학적 측면에 있다. 이들 각 비평 방법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구는 별도 과정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통시비평은 관심의 영역에 따라 자료비평(資料批評), 양식비평(樣式批評), 편집비평(編輯批評) 등으로 구분되고, 공시비평에는 정경비평(正經批評), 사회학적 비평(社會學的批評), 구조주의비평(構造主義批評), 서사비평(敍事批評), 신문학비평(新文學批評) 등의 다양한 방법론이 알려져 있다(참고. 이형원, ibid).
<구약>의 배경사라 함은 최종 본문의 배경 내지는 대상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 본문이 대상으로 삼았을 독자(또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오경>의 역사와 배경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참고. <구약개론> 제 2권).
<구약>의 문학/신학. <구약>의 역사나 배경이 본문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에 대한 연구의 결론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구약> 본문에서도 그 역사나 배경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본문 그 자체뿐이다. 결국 <구약> 각 책의 신학적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분석을 통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2. <성경>
정의. 영어의 Bible은 “파피루스의 안쪽 표지” 또는 “갈대 나무의 얇은 안쪽 면”을 뜻하는 ‘헬라’어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이 단어는 책(book)을 의미하게 되었고, 뒤이어 “그 책”(the Book) 즉 ‘The Bible’을 의미하게 되었다. <성경>은 1453년 ‘구텐베르그’(Gutenberg)가 처음으로 인쇄한 이후 현재까지 1760개의 언어로 1500억 부가 발행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의 98% 부족이 자기 언어로 <성경>을 읽게 되었다.
기능. <성경>은 다음과 같은 기능적 측면 때문에 인류 최고의 책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 예술․문학적인 기능: 역사상 최고의 문학책으로 동서양의 문학 및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 ‘까뮈’의 [타락]; ‘밀턴’의 [실락원]; ‘베토벤’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야].
(2) 역사적인 기능: 고대 중근동 지방(‘블레셋’, ‘모압’, ‘에돔’ 등)의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유대’인의 기원과 초기 역사를 알려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책이다.
(3) 법적 및 윤리적인 기능: 서방 국가의 법의 근거가 되고 있다: (예) 사회 정의, 인권존중 사상, 남녀평등, 등. ‘아시아’와 남미의 해방 운동이나 흑인 인권 사상 등도 <성경>의 가르침에서 출발하고 있다. 참고로, <출애굽기>의 도시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했던 도시는 같은 이름을 가진 ‘멤피스’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4) 과학적인 기능: 이 기능은 <성경>의 여러 기능 가운데서 저자의 관심이 가장 적었던 분야였겠지만, 진화와 창조의 대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기능이기도 하다.
(5) 신앙적인 기능: 무엇보다도 가장 궁극적이고 핵심적인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신앙과 생활의 지침으로서의 최고의 기능을 하는 책이다.
전제. 누구든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지는 않는다. 즉 선(先) 이해(전제)없이는 <성경>을 읽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성경>을 읽는 일련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게 될 것이다. <성경>은 또한 신학이나 철학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은 책이 아니다. 따라서 <성경>을 조직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권위. (1) ‘글리슨 아처’: “<성경>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로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의도된 책이며, 결코 오류가 없는 수많은 증거들에 의해 신적 권위를 확증해 주는 유일한 책이다.”
(2) E. J. Young: “신적 권위를 가진 책이다.”
(3) 결론: <성경>의 소리는 최종적이며 궁극적이므로 선언하고 선포해야 한다.
목적. 딤후 3:16.
제 2장: 성경과 계시
2
<성경>과 계시
앞 장에서 밝힌 바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산물이자, 동시에 자연적이며 역사적 산물이다. <성경> 탄생과 관련한 이와 같은 이중성(二重性)은 <구약> 연구의 방법에 대한 상보적인 해답을 마련해준다.
우선 <구약>을 자연적이며 역사적인 산물로 인식할 때, <구약> 연구를 위해서 <성경> 외적인 동시대의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들을 함께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와 같은 비교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에 대한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갔을 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주변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인생의 다른 목적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계는 여러 면에서 <구약>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교 연구의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과의 유사성(類似性)을 부각시키다 보면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정체성이나 차별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고대 근동지방의 종교들은 거의 없지만, <성경>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점만 보더라도 이스라엘이 지닌 차별성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편 <구약>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의 산물로 인식할 때 필요한 <구약> 연구의 가장 신뢰할 만 한 출발점은 <구약> 자체의 기록이다. <구약>의 이야기와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서 <구약>의 문학과 신학과 그리고 교훈과 적용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1. 계시
의미. “누가 무엇을 드러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계시의 이중적 특징을 강조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와 가장 가까운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갈라’이며, ‘헬라’어 단어는 ‘아포칼립시스’인데, 두 단어 공히 “드러내다” 또는 “들추어내다”(to lay bare)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든 하나님의 계시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뜻하기도 한다: (예) ‘느부갓네살’은 ‘유대’ 땅을 “벌거버겼다”(에 2:6). <개역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사로잡아가다”로 번역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계시란 드러내는 하나님의 “행위”를 뜻할 수도 있고, 들추어내는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前者)의 경우는 능동적인 의미의 계시로서, 예컨대, 환상이나 꿈이나, 기적, 음성 등과 같은 소위 현현(顯現; manifestation)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이다. 후자(後者)의 경우는 수동적인 의미의 계시로서, 하나님의 행위로 인식할 수 있는 사건(事件)이나 현상(現象)들을 포함한다. 결국 넓은 의미로 역사나 자연, 사람들, 심지어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이들 두 가지 견해를 다 포함하고 있다. ‘프로스트’(M. Frost)는 <일상, 하나님의 신비>(서울: IVP, 2003)에서 이에 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두 계시의 관계는 어떠한가? 일종의 상승적 순환관계(synergic relationship)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계시의 대상을 통해서 계시의 말씀을 확증할 수 있고,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계시의 대상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무리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계시의 말씀이 없다면 그 사건은 단순한 사건에 불과하며 아무런 계시적인 의미가 없다. 이와 같은 입장은 기적의 정의를 내릴 때에도 그대로 원용될 수 있다.
설령 있다 해도 극히 소수의 무리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예) 열 가지 재앙; 출애굽 사건 등).
목적. 그렇다면 계시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행위와 말씀은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를 받는 자에게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 효과란 “구속”(救贖; redemption) 즉 “재창조”(re-creation)이다. 그리고 이 효과가 실제 일어나기 위해서는 받는 자의 “반응”(response)이 필하다.
필요성. “계시는 왜 필요할까?” 대기권(大氣圈) 밖으로 우주선을 타고 갔다가 되돌아온 러시아 우주 비행사는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왜일까? 이 질문에서 대해서 ‘패커’(James Packer)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두 가지로 답변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 때문이다. 인격체에 대한 지식은 사물이나 짐승의 속성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경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식”에 대한 ‘히브리’적 사고는 단순한 지적 앎(knowledge)을 뜻하는 ‘헬라’적 사고와 달리,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만남(encounter)을 뜻한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일련의 지식이나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 이상을 말한다. 지식에 관한 ‘히브리’적 사고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는 ‘마리아’와 천사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즉 천사가 남자 아이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이 남자를 “알지” 못하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눅 1:34). 즉 남자와의 아무런 육체적 관계를 가진 일이 없다는 말이다. 인격적 교류나 만남은 상대가 먼저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인격적 하나님도 이와 같다. 즉 먼저 그분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결코 그분을 만날 수도, 알 수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나 연구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절대적인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계시는 은혜의 사건이다.
둘째,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절대타락(total depravity)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타락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찾지도 않으며,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마저 이해할 수도, 반응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슨 수로 하나님의 계시에 반응할 수 있을까? ‘칼빈’(J. 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의 결과라고 말한다.
2. 계시와 <성경>
계시와 <성경>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성경>이 최종적으로 형성되기까지 계시의 역할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구약>은 대략 기원전 2천년에서 1천년에 이르는 약 10 세기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성경>의 계시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발전적이고 진행적이며 항상 현재형이다. 그래서 혹자는 하나님의 신비는 천국에서조차 고갈(枯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계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다. 즉 하나님은 온전히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계시에 관한 역설이고 신비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드러나시면서 동시에 숨어계신다. <히브리 성경> 중에서 <성문서>에 해당하는 책들(예: <잠언>, <전도서>, <욥기>)의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오경>의 주제와 대척점에 서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구도 <성경>을 완전히 이해한다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성경> 해석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신비한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형성과 완성에 어떻게 간여해 왔으며, 또 완성 이후 종말의 날까지 어떻게 간여할 것인가? 아마 가장 완벽한 대답은 하나님의 계시가 세 단계에 걸쳐(또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1) 현현(Manifestation); (2) 영감(Inspiration); (3) 조명(Illumination). 이를 계시의 세 요소라고도 한다.
현현. 현현(顯現)이라 함은 꿈, 환상, 기적(초자연적 현상), 음성, 등을 지칭한다. 이 같은 형태의 계시는 <성경>이 기록되기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현현은 계시에 대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요소만을 고집할 때, 극단적인 “역사주의”(또는 “자유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역사주의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 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말한다. 당연히 <성경>은 정확한 기록이 아닐 수 있으며,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 역시 목회적 필요에 의하여 재구성 된 일종의 허구의 인물일 수 있다. 따라서 <성경> 속의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주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역사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영감. 하나님의 계시가 현현의 수준에 머문다면, 하나님의 계시는 시공(時空)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가치도 직접적인 목격자(또는 수혜자)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은 희미해지고, 상실될 가능성도 높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위하여 계시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현현의 기억이나 감동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식은 구두 전승(口頭傳承)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훼손과 변질의 가능성이 있다.
더 나은 방식은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 기록은 계시가 추가되고, 발전해 감에 따라 더 큰 문서로 편집이 이루어질 것이고, 종국에는 이른바 정경화(正經化; canonization)라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영감”(靈感) 또는 “감동”(感動)은 또 다른 방식의 계시로서, 단순히 구전(口傳)으로만 남아있던 하나님의 계시를 문서화(文書化) 하고 정경화 하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계시의 수단인 것이다(참고. 딤후 3:16). 그리고 정경화의 과정에는 문서들을 취사선택하고, 편집하고, 기존의 문서들에 대한 수정, 첨가, 및 재해석 등의 작업도 포함될 것이므로, 이 같은 일체의 행위들도 “영감”의 계시 속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현현과 영감은 함께 작동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반드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계시가 없는 영감이나, 영감 없는 계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경화 과정에서 제외되는 모든 하나님의 계시를 영감 없는 계시의 예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요한’ 화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만약 예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을 다 기록하였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이 일은 결국 감동의 결과이다. 한편, 전자(前者)의 경우는 그 예가 부지기수이다. 극단적으로 <성경> 속에는 <성경>의 원리에 반(反)하는 세속적인 경구(警句)나 금언(金言)들이 있는가 하면, ‘사탄’의 거짓말도 있으며, 일반 문헌이나 족보들도 등장하고 있다. ‘누가’도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일반적인 역사 문서들을 참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 기록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지만, 계시에 필요한 요소들로 보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현이 계시의 수직적인 측면을 보여준다면, 영감은 수평적인 하나님의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또한 영감은 계시의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의 연결 고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요소만을 고집할 때, <성경> 숭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소위 정통주의 신학에서 빠지기 쉬운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조명. 하나님의 계시 행위에서 또 한 가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 중요한 계시의 수단이 있는바, “조명”이 그것이다. 시기적으로 구분하자면, 현현과 감동이 정경화까지 필요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한다면, 조명은 그 이후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탄생한 책이라고 한다면, 독자의 편에서 이 책을 읽고 이해를 구함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독자는 조명의 계시를 통해서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조명의 계시가 없다면 아무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며, 반응할 수도 없다.
조명의 계시는 성령(聖靈)님의 사역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참고. 요 16-17장). 따라서 성령 안에서 <성경>을 읽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과의 구속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충분한 조명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반면, 예수님께서 “누구든 성령을 모독하는 결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마 12:31; 막 3:29; 눅 12:10)고 말씀하신 것도 조명의 계시와 성령님의 사역을 연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계시에는 늘 신비한 요소가 남아있다고 했으므로, 성령님의 조명과는 긴장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즉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숨어계시는 하나님 사이의 긴장 관계로 인하여, 한편으로는 성령의 조명으로 누구나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나, 동시에 누구도 <성경>을 완전히 다 이해한다거나, 완전한 해석을 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특정 시공에 머물러 있는 정적(靜的)인 그 무엇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통합적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의 <성경> 해석의 차이도 조명 계시의 특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계시에 대한 이와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성경>과 계시의 관계를 규명해 볼 수도 있다. 즉 <성경>은 그 자체만으로 계시라기보다는 <성경>이 증거하는 계시의 전체 과정에 참여하는 하나의(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성경>은 그 자체가 계시이기보다는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한 원천적인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르는 필요불가결의 길이다. 이 같은 관계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순서: 그리스도 ⇒ 공동체 형성 ⇒ <성경> ⇒ 공동체(교회)
(2) 틀린 순서: <성경> ⇒ 공동체 형성 ⇒ 예수 그리스도
이런 점에서 <성경>은 계시적으로 “성육신 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계시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영감
3.1. 서론
영감과 <성경>.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영감은 <성경>의 기록과 수집, 편집과 정경화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한 요소다. <신약>도 <구약>의 신적인 기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 영감 받은 저자(벧후 1:19-21; (2) 영감 받은 글(기록)(딤후 3:16). 그러나 이 구절들을 근거로 <성경>이 스스로 영감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영감은 <성경>에 대한 귀납적 인지의 결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귀납과 연역이 순환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감과 현현. 영감은 현현에 근거를 둔다. 현현이 <성경>의 영감보다 앞서 일어났으며, 현현 사건이 영감의 전제가 되는 것이지, 영감이 현현의 전제는 아니다.
영감의 범위. 영감에 관한 이론은 충분히 역동적이고 융통성이 있어서, 현현이 <성경> 문서로 기록되는 모든 과정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현 사건 ⇒ 최초의 인식과 해석 ⇒ 구전(口傳)의 형성과 계속적인 해석 ⇒ 적용과 보존 ⇒ 공동체의 문서화 작업(정경화).
3.2. 영감 이론
<성경> 문서의 영감. <성경> 문서의 영감을 강조하는 이론에는 두 가지가 알려져 있다: (1) 수구설(Dictation theory) 또는 기계적 영감설(Mechanical theory); (2) 완전축자 영감설(Plenary verbal theory)
(1) 수구설: 가장 통속적인 견해로서, <성경>은 인간 저자가 성령께서 일일이 불러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받아쓴 결과이다. 여기서 <성경> 기자는 따라서 수단적 수단에 불과하며, 따라서 <성경>은 정확무오(正確無誤)한 하나님의 계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성경>의 신적인 기원을 강조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처럼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의식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란>의 기원에 대한 입장 외에는 오늘날 이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 완전축자 영감설: 정통주의의 견해로서, 하나님은 말씀을 축자적으로 저자의 생각 속에 주셨고, 저자는 그것을 의식 상태에서 기억하며 <성경>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성경>의 신적이 강조되고, 당연히 무오(無誤; infallible)하고, 무오류(無誤謬; inerrancy)성을 지닌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오류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통주의의 대답은 그 문제는 사본에 국한된 것이지 원본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원본을 본 자가 있을까? 또한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징이나 저자의 인격적 독특성과 조화를 이루는 문제가 남아있다.
<성경> 저자의 영감. <성경> 저자의 영감을 강조하는 이론에도 두 가지 정도의 견해가 알려져 있다: (1) 조명설(Illumination theory) 또는 자연 영감설(Naturalistic theory); (2) 역동적 영감설(Dynamic theory).
(1) 조명설: 자유주의 진영에서 지지하는 견해로서, 영감이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있는 영적 감지력(感知力)을 성령께서 특별히 <성경> 기자에게 강화시키고 향상시킨 결과이다. 곧 모든 인간은 종교적 통찰력과 감지력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은 특별히 뛰어난 감지력을 지닌 종교적 천재가 쓴 것이다.
조명설은 인간 저자의 창의력과 활동을 인정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교회가 <성경>에 두고 있는 높은 권위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2) 역동적 영감설: 전통적인 이론 중에서 최상의 이론으로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성경> 저자에게 영감된 사상 혹은 생각을 주셨고, 저자는 자신의 삶과 시대의 언어로써 그 생각을 표현했다. 이 이론의 장점은 하나님은 인간 저자의 인격적 특성과 제한된 지식이나 관점 등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어는 사상을 드러냄에 있어 필수적인 도구인데, 하나님의 생각과 저자의 언어를 구분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다.
<성경> 사건의 영감. <성경> 사건의 영감을 강조하는 이론에도 두 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다: (1) 전통 형성 영감설; (2) 전통 역사 영감설.
(1) 전통 형성 영감설: 이 이론은 소위 신정통주의의 견해로서, 전통이 형성되는 데에는 세 단계가 있는바, 공동체 내에서의 전통의 형성 ⇒ 전통의 문서화 ⇒ 정경화인데, 이중에서 영감은 첫 번째 단계에만 국한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적인 지도력과 <성경>을 낳게 한 전통의 형성과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영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성경>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성경>이 실제 기록되는 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을 최소화 한다는 문제가 있다.
(2) 전통 역사 영감설: 이 이론 역시 신정통주의의 견해이다. 즉 <성경>의 권위는 저자의 경험이나 책의 질이 아니라,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실재(實在)나 사건의 영감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 자체의 영감보다는 기독교 전통과 <성경> 형성을 야기 시킨 하나님의 계시적 활동의 유일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영감으로 가득 찬 계시 사건의 역동적 영향력이 영감으로 가득 찬 전통을 형성했고, 영감으로 가득 찬 전통이 영감 넘치는 <성경> 문서를 낳았다. 이 이론의 장점은 <성경> 형성의 전 과정에서 성령의 영감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저자와 성령의 상호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약점으로는 <성경> 자체의 객관적인 영감성과 개개 <성경> 구절의 권위가 약화된다는 데 있다.
결론. 이상에서 제시한 다양한 영감 이론들은 모두 <성경> 형성 과정의 한 단면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며, 전체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앞에서 한 차례 언급하였듯이, <성경>은 초자연적인 측면과 자연적ㆍ역사적 측면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을 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이중성을 유념해 줄 필요가 있다.
4. <구약>의 권위
예수님과 <구약>. <신약>에서 언급하는 <성경>은 거의 예외 없이 <구약>을 지칭한다(예. 요 5:39; 10:35; 행 8:32; 갈 3:8; 딤후 3:16). 그리스도 사후 약 20년 동안 <신약>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에 대한 최소한의 골격만 갖추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초대교회 시절의 설교와 가르침의 바탕이 되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해석한 <구약>이었다.
예수님은 과연 <구약>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어떻게 해석했을까? 동시대의 ‘유대’인들과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어떤 면에서 동일했을까?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유대’적 전통.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에 대한 진정한 권위 있는 해석자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구약>의 권위를 완전하게 인정했다. 이점이 동시대의 ‘유대’인들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2) ‘그리스도’론적 재해석. <구약>의 해석에서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전통적인 해석과 완전히 달랐다. 첫째, ‘유대’교가 순전히 의식적인 종교로 전락하였으며, 내적인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참고. 막 7:1-13; 마 9:13; 12:7; 호 6:6). 율법에 대한 재해석도 이와 같은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둘째, 더 중요한 차이는 <구약>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더하였다는 점이다. 즉 그분은 자신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자로서 이해하셨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그는 스스로를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의 왕으로 선언했고(마 12:24), ‘다윗’의 아들이자 주님이었으며(막 12:35-37), 승리의 인자이며(단 7:13; 막 13:26), 고난 받는 종이었다(사 53; 막 10:45). 그분은 <구약>에서 등장하는 이처럼 위대한 주제들이 모두 자신 안에서 완성된 것으로 인식하셨다. 그분의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과 비교해 볼 때, 정적(靜的)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도와 <구약>. 사도들 역시 <구약>의 권위에 관한 한 전통적인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의 인식과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구약> 해석에서 보여주고 있는 소위 “모형론”(typology), 더 넓게는 “우화적 해석”에 있다. <구약> 해석 방법론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게 될 것이다.
제 3장: 구약의 역사: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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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역사: 정경화
“<구약>의 역사라 함은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 영역의 연구를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 “정경화(正經化)의 역사”를 의미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계시가 진공 상태에서 갑자기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의 과정을 거쳐 왔음을 인정한다면, <구약>이 현재의 본문으로 최종 완성되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전체 과정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현재의 본문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봄직하다(제 4장에서 다룰 주제가 바로 이에 관 것이다).
둘째, “<구약>이 다루고 있는 역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 즉 <구약>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등의 시기와 배경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말한다. 이를 흔히 “설화세계”(說話世界)로 부르기도 한다. 설화세계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구약>과의 비교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며, 이를 통해서 <구약> 본문에 대한 신빙성이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구약>의 배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배경이라 함은 공동체나 독자들의 배경을 말한다. 이를 흔히 공동체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로 부르기도 하는데, 본문을 공동체가 당면한 제반 영적이고도 실존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삼고자 했던 그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 또한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현재 이전의 그 공동체와 유사한 영적․실존적 체험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공동체에게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장의 목적은 다음 장에서 다룰 주제인 “정경화의 역사”에 대한 예비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다. 즉 <구약> 정경화와 관련된 내용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1. 고대근동의 필기
<구약>의 언어. ‘셈’어(북서 ‘셈’ 계열)로서 ‘앗수르’나 ‘바벨론’이 속한 ‘메소포타미’아 계열의 설형문자 체계와는 판이하다. ‘히브리’어, ‘페니키아’어, ‘모압’어, ‘암몬’어, ‘에돔’어, ‘우가릿’어 등은 모두 원시 ‘셈’족 어에서 갈라진 방언으로 간주된다(도표 참고).
셈어의 특징. 비교적 적은 수의 어휘로, 한 단어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상상과 비유를 필요로 하는 시적 언어에 적합하며, 비과학적 언어이다. ‘히브리’어가 한 단어로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모음(母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 ם과 ם의 차이).
<히브리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모음들은 주후 500년 경 직후에 ‘마소라’ 학자들이 임의로 덧붙인 것이다. 이들 학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것에 맞추어서 <성경>의 ‘히브리’어 발음을 정착시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성경>을 <맛소라 사본>(Masoretic Text, MT)이라 부르며, 이 사본은 오늘날 <구약> 연구에 가장 권위 있는 사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러 <성경> 외적인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마소라’ 학자들의 전통적인 발음 표기는 원래의 <성경>의 언어와 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히브리’어 내의 여러 방언들의 차이점들이 이들 학자들의 표준화 작업으로 희석(稀釋) 된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히브리’ 단어들은 통상 세 개의 자음(子音)으로 구성된 어간(語幹)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각 단어의 어의론적(語義論的) 의미는 여러 가지 모음 형태들과 접두어 및 접미어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로써, םרך(영어의 세 자음 mlk에 해당)라는 어간에서 파생되는 단어들은 ‘멜렉’(melek; 왕), ‘말카’(malka; 여왕), ‘말쿠트’(malkut; 통치), ‘말락’(malak; 다스리다), ‘맘라카’(mamlaka; 왕국) 등이 있다.
동사(動詞) 체계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 시제(時制)를 구분해 주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종류를 나타내 줄 뿐이다. 즉 어떤 동작이 완료되었는지 또는 완료되지 않았는지를 나타내준다: (1) 완료와 미완료; (2) 미완료는 다시 미래와 현재 진행; (3) 현재 진행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시제는 보통 문맥에 의해서 결정된다. 참고로 <예언서>의 시제는 무엇일까? ‘히브리’어 문법은 단도직입적이고 단순한 경향을 띠며, 특히 문장 구조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영어문장에서는 종속절이 많이 나타나는 것에 반해 ‘히브리’ 문장에서는 등위절(等位節)이 훨씬 많다. 이와 같은 문장의 특징이 <구약>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반드시 ‘히브리’어로 <구약>을 했어야 했을까? <구약>을 다른 언어로써는 더 잘 표현할 수 없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지나치게 긍정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일 수도 있다.
아람어. 주전 8세기 중반부터 ‘앗시리아’ 제국이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아람’어가 외교 및 상업의 공식어로 채택된다. 이후 ‘페르샤’ 제국의 확장으로 ‘헬라’어가 지역의 중심 언어가 될 때까지 ‘아람’어는 근동 지역에서 중요한 언어의 역할을 하게 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아람’어로 된 본문은 ‘히브리’ 본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기의 작품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비록 포로 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아람’어가 ‘유다’ 궁전 관리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기는 했으나(왕하 18:17-37), 보통 사람들이 제 1의 언어로 채택하게 된 것은 포로시대 이후의 일이다. 그 결과 <에스라>의 저자와 <다니엘>의 저자는 긴 ‘아람’어 구절들을 ‘히브리’어로 번역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창세기>는 ‘히브리’어를 말하는 민족과 ‘아람’어를 말하는 민족들 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창 31:47), ‘유다’ 백성에게 우상 숭배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도 거짓 신들에 대한 심판의 말을 ‘아람’어로 기록하고 있다(렘 10:1). 그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이방 신들에 대한 고발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필기재료.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필기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 석판이나 석벽(예: 다리우스 왕의 조서/십계명 (출 32:15-16/수 8:32)).
(2) 토판이나 목판(예: 에블라와 우가릿 토판).
(3) 파피루스 사본과 두루마리(기원전 3000-1000)(예: 욥 8:11; 사 18:2).
(4) 동물의 가죽(‘여호야김’이 불태워버린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는 ‘파피루스’ 또는 짐승의 가죽이었을 것임: 렘 36:2).
(5) 동판 두루마리(예: ‘쿰란’ 공동체가 남긴 <사해 두루마리>).
(6) 잉크는 <구약>에서 전혀 언급이 없지만, 쇠로 된 촉(욥 19:24; 렘 17:1), 갈대로 된 펜 (렘 8:8), 펜을 가는 칼 (렘 36:23), 필기구 통 (렘 36:18) 등은 등장하고 있다.
구약 서기관. 고대 세계의 필사(筆寫) 과정은 듣고, 외우고, 낭독하는 것을 중시했지만, 일단 기록된 언어의 전파과정에서 전령과 서기관의 기능도 전문화된 것으로 보인다(삼하 18:19-23; 단 3:4). 고대 근동의 필기법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서기관이라는 전문직이 나타나게 되고, 점차 종교와 행정 분야의 실력자로 부상하게 되었다(삼하 8:16-17; 20:23-26). 포로기 이후 전적으로 성전 관계 일에만 종사하였는데, 예컨대, ‘모세’의 율법을 필사, 보존, 출판하는 일을 맡았다(스 7:1-10).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이 집단은 예수님의 최대의 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2. 정경화
의미. 이 단어 자체가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단어의 어근(語根)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바, “갈대”, “파피루스 줄기” 등을 뜻한다(참고. 왕상 14:15; 욥 40:21).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정경>이란 신앙공동체의 규범으로 작용하는 신앙적 문헌의 모음집이라 말할 수 있다.
정경화 과정. 아마도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그림 참고).
(1) 첫 단계: 권위 있는 선포(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
(예) “만군의 주께서 말씀하신다”,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등의 표현 (신 5:1; 겔 5:5).
(2) 둘째 단계: 문서로 기록하는 단계. 오랫동안 구전(口傳)으로 정착되어오던 말씀을 기록하여 문자화 한다. 때로는 선포와 기록이 거의 동시에 발생하기도 했을 것이다(예: 출 24:3의 법전, 수 1:8, 렘 36). 또 한편 계시가 주어진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상당기간이 지나서야 기록이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이다(출 15; 수 8:32; 삿 5:1).
(3) 셋째 단계: 기록된 문서의 수집과 편집
가장 길고도 복잡한 과정을 포함하는 기간이다. 예컨대, <시편>의 수집에 약 500년이 걸린 것으로 보이며, <구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호와 전쟁기>(민 21:14)나 <야살의 책>(수10:13)도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4) 넷째 단계: 문서의 분류와 정경화
(가) 기본적 원칙에 입각하여, 성령의 인도 하에(영감), ‘히브리’ 종교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작업에는 네 번의 중요한 기간이 있었을 것이다임: ① 출애굽 이후 시내 산의 경험; ② 신정에서 왕정으로의 전환기; ③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 유배; ④ 학사 ‘에스라’와 ‘느헤미야’ 총독의 포로기 이후의 개혁 활동.
(나) 이 모든 기간에 하나님의 활동이 있었다고 받아들이며, <성경>의 영감설은 이 모든 편집과정을 다 포함하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편집되었음을 받아들인다 해서, <성경>이 영감 받은 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 그리고 편집은 단순히 구전이나 문서들을 기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편집자들이 각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을 본문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 of the text)로 부른다: (예) 삼상 17 및 대하 7에 기록된 ‘나단’과 ‘솔로몬’의 대화는 그 시대에 맞는 메시지로 재조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르그만’(W. Brugmann)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상황화가 없었다면 현 시대에 맞는 메시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설교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상황화 작업이 늘 필요하다 하겠다.
(라) 본문의 상황 화 작업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질문은 신학적 영역과 실존적 영역 두 가지이다. 신학적(신앙적)질문이란 “본문 말씀이 나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가?”이고, 실존적 질문이란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문이 공동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실존적으로 대답해 주고 있는가?”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성경>본문의 견고성(stability)과 유연성(flexibility)을 동시에 염두에 둔데서 나온 것이다.
(마) 상황 화 작업의 실례:
① <창세기> 1장: 인간은 창조의 절정이다; 질서 있는 창조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다. 이제 ‘바벨론’ 포로에서 고토로 돌아가면 안식을 질서 있게 잘 지키자!
② <열왕기>)와 <역대기>의 비교 설교: 전자는 신명기적 역사서로 왕들의 과오를 지적하고 경고하며, <역대기>는 왕들의 과오는 빼고 예배만 강조하고 있다.
(바) 후대 독자들의 책임: 어떤 본문이 진짜인지를 따지지 말고, 각 본문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주어졌는지를 질문해야한다.
정경화의 주체. (1) 질문: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대답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교회(신앙공동체)가 그 주체이다!!!
(2) 하나님 말씀의 범위: “오늘날에도 <정경>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가?” 원칙적으로 새로운 시대는 새것을 요구하나 공동체의 삶과 신앙의 규범이 <신ㆍ구약>이기 때문에(‘캘커타’ 종교회의 참조),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 즉 원칙적으로는 정경화 작업이 항상 열려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잘못된 공동체는 항상 새로운 정경을 추가한다: (예) <몰몬경>; <원리강론>; <워치타워>; 등.
정경화의 기준. (1) 세 가지 근거: 첫째, ‘토라’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둘째, 예언적인가? 셋째, 예배 시에 유용한 것인가? 그러나 <지혜서>에서는 이들 세 요소에 대한 강조가 거의 없다.
(2) 정경화의 기준: 각 책이 독자들에게 전인적인 감흥(지적, 정서적)을 주었기 때문이며, 독자들의 실존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3. 유대인의 정경화 과정
<오경>. (1) 시기: 대략 주전 400 년으로 추정된다. (2) 근거: 첫째, ‘사마리아’인들이 가지도 있었던 <오경>이 주전 400 년경부터 있었다. 둘째, <칠십인 역>의 번역이 주전 300 년경부터 시작되었으므로 ‘히브리’어 <오경>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셋째,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포로기 이후 안식일에 회당에서 율법을 읽었을 것이다.
<예언서>. (1) 시기: 전통적으로 <예언서>(또는 <선지자>)는 두 부분,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된다. 전자는 흔히 역사서로 알려져 있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로 이루어져 있고, 후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대 선지서>와 <소선지서>의 열두 편의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선지서>는 내용이 간단하다는 이유로 한 두루마리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모두는 대략 주전 200 년경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2) 근거: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는 우선 이들 책이 다루는 내용이 ‘가나안’ 정복에서 시작하여 ‘바벨론’ 포로 시대까지(주전 1250-550년)로서, 이들에 대한 최종적인 편집은 포로 시대 이전에는 완성되었을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은 이 시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들 선지자들을 통해서 국가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에 대해서 경고하셨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주전 180 년에 기록된 Ben Sirah의 글 <집회서> 46-49장에 따르면, 전기 예언자들과 후기 예언자들의 이름과 그들에 관련된 사건들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늦어도 이 시기까지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전 130 년에 ‘벤 시라’의 손자가 <집회서> 번역시에, “우리 조상들의 오경과 예언서”라고 쓰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길 수 있다.
<성문서>. (1) 시기: <성문서>는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을 지닌 책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시편>, <잠언>, <전도서>, <욥>, <시편>들은 헌신의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권의 책들은 흔히 절기의 책이라 하여, 해당되는 절기에 개별적으로 낭독하였다: <욥>은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에, <애가>는 ‘아브’월 9일(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에, <전도서>는 초막절에, 그리고 <에스더>는 부림절에 낭독하였다.
연대 추정이 훨씬 복잡하다.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주후 90 년까지 최종 편집이 마무리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문서>의 편집과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즉 다섯 명에게 술을 먹여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 기록하도록 시킨 결과, 40일 후에 모두 꼭 같은 24권의 <성경>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2) 근거: 첫째,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아’ 종교회의 때까지 정경화가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 둘째, 사회적 상황과 관련하여 주후 70 년 이스라엘 멸망과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를 맞아 필요에 의해 편집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포로기 직후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예민해 있었다. 포로 생활을 통해서 뿌리가지 흔들린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전의 전통에 근거하여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두 영적 영웅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있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유대’ 사회는 신정 공동체(神政 共同體) 내지는 “유대주의” 공동체로 변모해 갔다.
4. 기독교회의 정경화 과정
시기. 신약 교회가 <구약>의 범위를 확정한 시기는 종교개혁 시기로서, 교회의 정경화 과정에 있어서의 주요 논점은 <외경>과 <위경>을 정경 속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였다.
정경화 과정. 교회의 <구약>의 정경화 과정을 시대 별로 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초대교회: ① <신약>에 <구약>의 범위를 암시하는 언급이 수차례 등장하고 있기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예컨대, “모세와 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14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모세, 예언자의 글들, 시편”을 언급하고 있다.② <신약>의 저자들이 참고한 <칠십인 역>에는 <외경>도 포함되어있다. <신약>의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 내용의 80% 이상이 <칠십인 역>에서 인용하고 있어 <위경>까지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신약>은 ‘로마 카톨릭’의 정경을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개신교의 정경을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2) 2-4 세기의 교부(敎父)들: 교부들은 <칠십인 역>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예컨대, ‘힙포’(Hippo)와 ‘카르타고’(Cartage)의 두 종교회의에서 <외경>을 포함시켰으며, 중세의 ‘제롬’은 <히브리 성경>만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교황의 압력으로 <외경>도 포함시켜, <벌게이트>를 탄생시켰다. 한편, 순교자 ‘저스틴’은 <히브리 성경>만 인정하였다.
(5) 17-18세기: <외경>을 <신약>과 <구약> 사이에 포함시킨 <흠정역, KJV>가 1611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장로교의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처음으로 “외경은 신적 영감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권위가 없다”고 선언한다(1648년).
(6) 19세기: 영국의 성공회도 <외경>을 인정하지 않았다(1827년). 그러니 강단에서 참고로 비치하기는 했다.
(7) 동방정교회에는 이에 대해서 뚜렷한 원칙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5. 정경의 순서
차이. <구약> 내의 각 책의 순서와 내용이 ‘유대’교, 개신교, ‘로마 카톨릭’이 서로 다르다(<구약> 비교표 참고). ‘유대’교과 개신교는 각 책의 순서가 다르며,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의 경우는 <구약>의 내용이 다르다.
(1) ‘유대’교: 전체 2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대기>가 <성문서>에 들어가 있는 이유는 이미 <오경>과 <에언서>가 완성된 이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히브리 성경>은 기록된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반면, <기독교 성경>은 역사 중심으로 배열하고 있어, <역대기>를 <역사서> 속에 포함시켜, <열왕기> 다음에 배치시키고 있다.
(2) ‘로마 카톨릭’: 전체 46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방교회가 제외시킨 <바룩서>도 포함시키고 있다. 기독교회는 도합 네 번의 종교회의를 거쳐 <정경>을 확정지었다: ‘힙포’ 종교회의(393년) ⇒ ‘카르타고’ 종교회의(397년) ⇒ ‘카르타고’ 종교회의(417년) ⇒ ‘트렌트’ 종교회의(1546년) ⇒ ‘바티칸’ 종교회의.
‘트렌트’ 종교회의는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외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열렸으며, 이상 마지막 두 회의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외경>을 하나님의 “영감 받은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하고 정경 속에 포함시켰다. 이 두 회의는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경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의 차이를 확인한 회의였고, 지금까지 그 차이를 견지해 오고 있다.
(3) 동방정교: 전체 45권으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다른 점은 <바룩서>를 제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브리 성경>. 기독교 진영에서 부르는 <구약>은 실은 <히브리 성경>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히브리 성경>은 (1) <오경>(torah)과 <예언서>(prophets)와 <성문서>(writings)로 구성되어있고, ‘히브리’어로 이 셋의 첫 글자를 따서 Tanak이라 부른다.
(1) <토라>: 명령이라기보다는 “교훈”(내지 지침)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오경>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은 인과응보(因果應報)으로 하나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예언서>: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나누어진다.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로 구성된다. <전기 예언서> 의 목적은 객관적인 역사를 기록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뛰어난 영적 지도자를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개신교는 이들 책을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는데 반해, ‘유대’교에서는 이들을 <예언서>로 부른다. 그 이유는 개신교에서는 역사의 사실성을 강조하는데 반해, ‘유대’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당시 이들 책을 편집하던 사람들이 예언자들이거나 예언 활동을 강조했던 자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전기 예언서>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 기록이 아니다. 이 책들은 전체적으로 종교적 관점이 지배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이들 책을 선지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위 “신학화 된 역사”(theologized history)로 부른다. 이들 책의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것을 보여주며, ‘사무엘’, ‘나단’, ‘엘리야’, ‘엘리사’ 등의 선지자들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언약의 축복과 저주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후기예언서>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 선지자>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전기예언서>에 비해 시기적으로 뒤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다니엘서>의 경우 개신교는 묵시적 특성을 강조하여 <예언서>로 분류하고 있으나, ‘유대’교는 이 책이 <오경>과 <예언서>가 정경화 된 뒤에 완성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성문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사회정의는 <예언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요한 신학적 주제이다.
(3) <성문서>: 다양한 문학 장르의 책들의 모음집으로, 흔히 지혜서로 부르기도 한다. <성문서>의 지배적인 사상 내지는 신학적 강조점은 인간의 이해나 논리 및 <오경>의 사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제반 실존적 문제들(악고 등)에 대한 해답을 주고자 함이다.
따라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세속적인 지혜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므로, 이들의 출처나 이들이 정경 속에 포함되는 과정 등과 관련해서 초자연적인 계시나 영감의 행위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성경> 속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지닌다. “아래로부터의 계시”-인간의 체험이나 지식-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성문서>의 각 책을 장르 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시가(詩歌): <시편>; <욥기>; <잠언>. 혹자는 이들 세 책을 지헤문학의 장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② 축제의 두루마리: <아가서>- 유월절에 읽는 사랑의 노래; <룻기>-오순절 때 보리밭에서 읽는 책; <애가>- 속죄일에 나라를 빼앗긴 것을 슬퍼하고, 죄를 고백하며 부른 노래; <전도서>- 초막절에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면서도,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비관적 낙관론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에스더>-부림절(2-3월)에 민족이 말살될 뻔 했던 것을 기억하며 읽는 책.
이들 책이 예언이나 율법에 전혀 충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경 속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체의 실존적인 삶의 자리에서 도움과 필요를 채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③ 역사서: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가 포함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예언서>가 완성된 후에 역사를 재조명 하며 쓴 것으로 후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④ 묵시서: <다니엘> 한 권이 이에 해당한다.
<외경>. <외경; Apocrypha>은 “숨겨진 책”이라는 의미로, 주전 300-주후 2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경> 속에도 다음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포함되어있다.
(1) 교훈 지혜문학: ① <솔로몬의 지혜서>는 ‘헬라’의 ‘유대’인들을 무신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이교도의 영향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을 보여주고 있다. ② <집회서>는 일반적인 도적과 실질적인 경건 생활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2) 역사서: ① <에스드라 1서>는 정경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하> 등을 부분적으로 별도로 번역한 것들의 모음집이다. ② <마카비 1서>는 신․구약 중간사(中間史)의 귀중한 역사자료를 담고 있으며, 주전 175-135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③ <마카비 2서>는 <마카비 1서>와 거의 동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주전 175-160년), 한 가지 대조적인 것은 수사학적으로 부정확하며, 애국적 반란을 신화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3) 종교적 전기소설: ① <토빗>은 ‘살만에셀’ 치하에 ‘니느웨’에서 고생한 포로 이스라엘의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② <유딧>은 아름답고 경건한 ‘유대’인 과부에 관한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4) 예언서: ① <바룩서>는 ‘예레미야’의 서신으로, ‘바룩’이 의도적으로 기록한 포로기 ‘유대’인들의 기도와 고백, 그리고 귀환의 약속을 담고 있다. ② <에스드라 2서>는 성격상 계시적인 것으로서, 일련의 환상을 묘사하고 있다(주후 100년 경).
(5) 전설문학: <므낫세의 기도>는 ‘유다’왕 ‘므낫세’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참회의 기도를 담은 책이다. ② <에스더의 남은 부분>은 하나님의 손을 나타내기 위해 환상, 기도, 편지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③ <세 거룩한 아이의 노래>는 <다니엘>에 첨가된 세 부분 중 첫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④ <수산나의 이야기>는 <다니엘>의 내용을 확대한 종교적인 전기 소설이다. ⑤ <벨과 용>은 <다니엘>에 추가된 내용으로 ‘다니엘’을 주인공으로 한 감상적인 이야기이다.
<외경>의 가치. (1) 성경적 중요성: 신구약 중간사를 채워준다(450년간의 정보). (2) 종교적 중요성: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교의 영적, 철학적, 지적인 분위기. (3) 정치적 중요성: 유대국가의 역사적 자료 제공 (가장 장렬하고 영웅적인 시대를 열거하고 있음). (4) 문학적 중요성: 영감이 아니라 모순되고 부정확하나, 세속 문학을 풍성하게 하려고 광범위하게 인용.
<위경>. (1) <구약>과 <신약> 사이의 30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서, 저자를 유명 인사로 붙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책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책은 저자가 아예 없기도 하다.
(2) 특징: 정경의 내용을 모방하거나 첨가하고 있다. 특히 왕들의 역사는 정경의 내용에 많이 추가하고 있다. 또한 종말론적 성격이 강하고, 부활에 대한 언급이 많다.
(3) 인정: ‘팔레스타인’에서 11권; ‘알렉산드리아’에서 6권.
제 4장: <구약>의 역사: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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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역사: 비평사
<성경>은 그동안 한 번도 있는 그대로 읽혀진 적이 없고, 끊임없이 “비평”(批評)되어 왔다. 이점 “정경화”의 과정이 입증하고 있다(3장 참고). 어느 책(또는 자료)을 정경 속에 포함시킬 것이지, 그리고 어떤 책을 제외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 자체가 이미 비평적 연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혹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인간이 비평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비평이란 용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평에 대한 ‘웹스트’사전(Webster Dictionary)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예술이나 문학 작품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지적, 논리적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기술.” 이 정의에 따르면, <성경> 비평이란 실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은 <성경> 외의 다른 영역, 즉 과학이나 윤리ㆍ도덕의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구약> 비평학”을 이해하자면, <구약>을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여러 비평 방법들을 소개하고, 각 방법의 특징과 장단점을 평가하는 학문의 한 영역 정도가 될 것이다. “성경 해석학”(hermeneutics) 또는 “성경 비평학”(biblical criticism)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된 일련의 신학 분야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구약>을 비평적 관점에서 연구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우나, 앞 장에서 본 바처럼, 기독교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 시대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경화>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비평적 <구약> 해석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다소 인위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구약> 비평의 전체 기간을 정경화(正經化) 이후 계몽주의 시대까지 대략 일곱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도표 참고).
비단 <오경>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대한 올바른 해석적 작업을 위해서는 “종합적 해석” 체계가 절실하다. 이는 <성경>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 전반에 관한 입체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각 시대에 걸쳐 나타난 다양한 성서 해석 방법들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 구약 해석사(解釋史) 전반에 걸친 모든 내용들을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이형원의 <구약비평학 입문>은 <구약> 해석과 비평에 관한 유익한 입문서로서, 필독을 권하는 바이다(참고도서 6).
이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성경 비평학”의 배경과 발전 과정이다. 계몽시대 이전의 <성경> 해석 방법은 주로 종교적, 즉 신앙 고백적이거나 기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해석의 주체는 교회였다. 물론 종교개혁 이후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 교회의 양 진영에서 일련의 교리적 해석 방법들을 채택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한계는 <성경>의 권위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종교적 해석에서 일탈(逸脫)하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 하여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물론 <성경>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는 ‘마소라’ 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 역시 <성경>을 완성된 하나의 책으로서 인정하는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마소라’ 학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현존하는 여러 <히브리어 사본>과 <번역본>의 본문을 원래의 형태나 의미에 가깝게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난해한 구절들에 대하여 여러 사본, 번역본, 그리고 현대 본문 비평학자들이 보여주는 차이점 등을 비평적 관주로 소개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 둘째, 여러 사본과 번역본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가능한 가장 오래된 사본을 추정한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서 본문의 변천사(變遷史)에 대한 이해도 더할 수 있다.
<성경>의 본문에 대한 이와 같은 연구를 본문비평(本文批評) 내지는 하등비평(下等批評)으로 부른다. 이 용어는 계몽시대 이후 발전해 온 소위 “고등비평”(高等批評)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그 가치가 열등하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고등비평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적게 끌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 통시적 비평 (痛視的 批評): 본문의 역사
그러나 18세기 이후 <성경> 연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는데, 흔히 역사비평(歷史批評)으로 불리는 새로운 일련의 해석적 방법론들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방법론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교회가 기존 사실로 받아들이던 것들(<성경>의 저자나 그 내용 등)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실제 출처를 확인하고, 본문이 그리고 있는 사건들의 역사성 여부를 평가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는 물론 <성경> 외의 문서들과 비교 연구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도 취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역사비평적 방법이 교회의 문서들을 포함해서 ‘그리스’와 ‘로마’ 문서들, 그리고 고대 문서로 추측되는 모든 자료들에 대해서 적용한 바 있다. 다만 <성경>만큼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성경>이 교회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속적 역사비평의 방법을 <성경> 본문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입장은 계몽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만개(滿開)하게 되었고,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성경> 연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역사비평의 대 전제(前提)는 다음과 같다. 즉 <구약>의 많은 책들은 단일 저자의 창조적인 작품이 아니라, 후대의 저자나 편집자들이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고, 창조적인 재해석이나 편집 등을 통하여,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이다(참고 도표: <오경>의 형성 과정). 이와 같은 전제에 따라, 역사비평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성경> 본문의 역사, 즉 현재의 본문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제반 역사적 과정을 찾아내는 일이다.
따라서 이 작업은 구전(口傳)이나 문서(文書)의 출처나 성격, 편집 당시의 배경과 시대상 등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일을 포함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기록했을까?’ 최종 본문의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다.
역사비평은 그 관심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법론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 참고):
(1) 양식비평(樣式批評)
(2) 자료비평(資料批評)
(3) 편집비평(編輯批評)
이제 이들 세 방법론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알아보기로 하자.
양식비평. 양식비평의 전제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구두(口頭)로 된 전 역사(前歷史)가 존재한다; (2) 양식(genre)은 나름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거친다; (3) 각 양식은 독특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가진다.
이들 전제들을 보충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구약> 저자들은 본문을 하나의 문학 양식으로 기록하면서, 구두로 된 전 역사를 가진 자료들을 모아서 사용했다(도표-오경형성과정 참고). 둘째, <성경>의 본문으로 채택된 하나의 본문 양식은 문자화(文字化) 된 이후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특성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하나는 양식이 전통으로 굳어져 시대를 두고 계승해 가는 불변성의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사회적 상황에 따라 일련의 변천(變遷)을 거듭해 가는 무상성(無常性)의 특징이다. 그러니까 양식은 고정되어있으면서 동시에 변화를 거쳐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각 양식은 독특한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다는 전제가 있다. 이 경우 “삶의 자리”에 대한 범위를 놓고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넓게는 사회 및 시대적 상황을 의미할 수 있고, 좁게는 독특한 제도적 위치(예: 제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 양식비평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두 영역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최종 <성경> 본문의 문학 양식을 결정하는 일; (2) 각 양식의 역사 즉 변천사를 규명하는 일. 양식의 변천사를 규명하는 일에는 그 양식과 연관이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시대상이나 역사적 배경을 유추하는 작업도 포함될 것이다. 동시에 그 양식의 의도나 목적, 기능 등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료비평. 양식비평의 주된 관심사가 본문의 전 역사, 즉 구전(口傳)의 역사라면, 자료비평의 관심사는 기록된 자료들에 있다: (예) 기록 연대; 기록자; 기록 당시의 상황; 기록 목적; 문학ㆍ신학적인 특징.
관심사가 동일하다 해서 방법론이 동일할 수는 없다. 예컨대, <오경>의 경우, 자료의 종류나 성격을 구분하는 방법이 학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오경> 안에 네 개의 자료가 혼재(混在)해 있다는 점이다. 네 개의 자료란 (1) <야훼 자료>(Y 또는 J); (2) <엘로힘 자료>(E); (3) <사제 자료>(P); (4) <신명기 자료>를 말한다.
이처럼 한 책에서 상이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을 발견하고 구분해 낼 수 있게 된 데에는, 당대의 지적․사상적 영향력도 있었지만, <성경> 자체의 증거도 큰 몫을 차지한 바 있다. 즉 <오경>에 대하여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했을 때, 동일인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논리적인 의문점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료비평의 목적은 이들 자료들을 비교ㆍ분석함으로써, 최종 본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데 있다 하겠다.
그러나 자료비평과 양식비평의 주된 관심사가 <구약>의 완성 단계 이전에 국한된 것으로서, 해석학적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성경> 본문이 형성되는 최종 단계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20세기 중반 이후 방법론적인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즉 <성경>의 최종 본문을 낳게 한 구두 전승이나 이를 기록한 문서(원 자료)가 중요한 것만큼이나, 그 같은 자료들을 취사선택하고 편집하여 <성경>의 최종 본문으로 정경화 하는 과정이나 그에 따른 신학적 의도 역시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편집비평. 이 새로운 방법론을 편집비평이라 부른다. 편집비평의 기본 전제는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1) 일련의 편집 과정; (2) 창조적 저자; (3) 특정 전통(또는 학파)의 신학의 반영. 이들 전제들을 보충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약> 본문이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기까지 여러 편집 단계를 거쳤을 것이라는 전제는, 양식비평의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다만 편집비평의 주된 관심사가 원 자료나 구전 자체에 있기보다는 각 편집 단계와 본문의 최종적인 편집 형태에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째, 편집자들은 단순한 필경사들이 아니다. 이들은 역사나 전통들에 대한 수정과 보충, 더 나아가서 재해석까지 시도했던 창조적 저자들이다. 이들은 당대의 신앙 공동체가 당면한 제반 신학적이고도 신앙적인 대안이나 교훈을 주고자 했던 자들이다.
셋째, 편집자들은 대개 특정 전통이나 학파의 구성원이었다. 따라서 최종 본문은 자신들이 속해있던 공동체나 학파의 사상과 신학, 언어나 문체 등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구약>의 전승이나 학파를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야훼’ 전통; (2) ‘엘로힘’ 전통; (3) 신명기적 전통; (4) 예언자적 전통; (5) 현인적 전통; (6) 사제적 전통; (7) 역대기적 전통.
결국 대부분의 <구약> 본문은 이들 전통 가운데 하나에 속한 저자나 편집자가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속한 전통이나 학파를 알 수만 있다면, 최종 본문이 담고 있는 신학적인 주제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공시적 비평 (共視的 批評): 완성된 책
17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성경> 해석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통시적 비평은 본문의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학문적인 관심사 때문에 큰 오류를 저질렀다. 그것은 <성경> 본문을 파편화(破片化)하고, 비정경화(非正經化) 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신앙 공동체(교회)의 삶과 신앙의 표준이 되어 온 <성경>의 권위가 학문적 비판과 해부의 대상이 되어 그 고유한 권위를 상실해 온 것이 사실이다.
공시비평은 이에 대한 반동과 반성으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등장하게 된 다양한 비평 방법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공시비평의 기본적인 인식은 <성경>을 하나의 완전한 문학작품으로 간주하고, 연구의 대상을 최종 본문과 독자 및 해석 공동체로 국한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공시비평의 방법에는 정경비평(正經批評), 사회학적 비평(社會學的 批評), 구조주의적 비평(構造主義的’ 批評), 서사비평(徐事批評), 신문학 비평(新文學 批評) 등이 알려져 있다(도표). 각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자료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1) 이형원, 6-8장(참고도서 6); (2) “서사비평과 신약성서 해석”, 『복음과 실천』18(1995), pp.11-30.
그러나 공시비평의 제 방법들 역시 주된 관심의 대상은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기에, 전인적(全人的)인 의미나 교훈을 이끌어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좀 더 새롭고도 추가적인 비평 방법이 필요하다 하겠다.
3. 종합 비평- 대통합
“성경 종합 비평”이란 새로운 하나의 비평 방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의 올바른 자세나 태도를 제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통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기존의 통시비평과 공시비평을 대통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그림 참고), 이들 방법들이 소홀히 했던 영역들을 새롭게 포함시키는 접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형원 교수는 종합비평을 문학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참고. <구약성서비평학 입문>.
3.1. 종합비평의 전제들
이를 토대로 종합비평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대 전제를 요약하면 다음 몇 가지가 될 것이다.
<성경>-완성된 문학작품. <성경>은 완성된 문학작품으로서 독자들에게 의미나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최종 본문의 형성과 관련된 제반 역사적 질문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현재 접하고 있는 최종 본문의 신학적 주제, 신앙적 교훈, 그리고 정서적 감동이다. 그리고 이들은 본문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대한 문학적 연구ㆍ분석과 그에 따른 전인적(全人的)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얻어진다. 이와 같은 인식은 이른바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으며, 역사비평적 입장보다 더 포괄적이며 융통성을 지닌다.
문학화 된 역사. <성경>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기술해 주는 역사서가 아니라,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교훈을 전해주기 위한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따라서 <성경>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문이 아니라, ‘스테인 글래스’나 거울처럼 과거의 역사를 희미하게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것이다.
정서적 감동도 함께. 종합비평은 <성경>을 단순히 신학과 신앙을 체계적으로 요약해 놓은 구약신학이나 조직신학 교과서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한다. 신학과 동시에 본문의 문학을 연구하고, 정서적인 감동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훌륭한 고전은 독자들에게 정서적 즐거움과 지적 교훈을 둘 다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의 주제나 교훈을 얻기 위해서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님과 같은 이치다.
독자 중심 비평. 최종 본문의 연구와 함께 독자에 대한 연구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문학 작품이든 일단 저자의 손을 떠나면, 그 작품의 최종적이고 현재적인 의미는 독자가 결정한다는 입장이 있다. 따라서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의도했던 의미는 여러 가능한 의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특히 <구약>의 경우 대부분 원래의 저자나 저술 목적 등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란 많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최종 본문에 의지해서 의미를 산출해 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성경>의 정경화 과정을 회고해 볼 때 충분히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경화의 주체는 당대의 신앙 공동체 또는 해석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성경>의 각 책은 신앙 공동체라는 독자가 신앙적 판단과 필요에 따라 기록했으며, 그 가치와 권위를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공동체에서도 인정했기 때문에, <정경> 속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 <성경> 해석에서 독자의 상황 이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종 본문의 “처음 독자”(original reader)나 “의도 된 독자”(implied reader)에 대한 연구를 장려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비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한 가지 긴장이 있다. 그것은 독자가 부여한 의미가 본문 자체가 의도했던바 의미와 충돌될 때이다. 이와 같은 긴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독자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성경>의 의미에 굴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본문의 의미를 자신의 삶에서 현실화 시킬 것인가? 이는 독자비평을 시도할 때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긴장이자, 갈등이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 양식과 의미 전달. 본문의 특정한 양식은 그 본문이 전하려고 하는 의미를 드러냄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장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듀브로우’(Heather Dubrow)는 「장르」라는 책에서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아래 인용문을 <마플토프의 살인>(Murder at Marplethorpe)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읽어보자.
벽로 선반의 시계는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최근에 그 시계가 고장 났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죽은 듯한 여자의 형체가 거실의 침대 위에 드리우자, 그녀만큼 음산한 모습을 지닌 어떤 사람이 재빨리 그 집을 빠져 나갔다. 그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와 어린 아기가 크게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죽은 여자는 누구이며, 또 어떻게 해서 죽었는가? 그 집을 빠져 나간 사람은 누구인가? 그 어린 아기는 왜 울고 있는가? 그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글의 제목은 이 인용문이 살인 추리 소설에서 발췌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따라서 독자는 이미 죽은 여인이 살인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또 그 집을 빠져 나간 사람이 살인자일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아마 그 아이는 갑자기 침입한 살인자 때문에 놀라서 우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살인이 일어난 시간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계의 정확도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목을 바꾸어 <마플토프의 이력서>(the personal history of Marplethorpe)로 읽어보자. 그리고 위에서 제기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들을 해보자. 전혀 다른 대답들을 얻게 될 것이다. 전기(傳記)들이 대개 주인공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이 아이는 바로 ‘마플토프’일 것이다. 죽은 여인은 애석하게도 아기를 낳다가 죽은 그의 어머니임에 틀림없다. 또 집을 빠져 나간 사람은 산파였을 것이며, 그 시간은 이 아이가 출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3.2. 종합 비평의 요소들
이상의 전제들을 바탕으로 <성경> 비평을 수행한다면, 이는 <성경> 해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성경 해석자의 태도 등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진술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방법론도 이에 걸맞게 본문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과 신앙에 대한 단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연구를 통해서, 현재를 위한 교훈과 적용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와 문학. 본문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위에서 밝힌 바대로(도표 참고), 다양한 역사비평의 방법론을 동원하는 것으로서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필요 없을 듯하다. 본문의 문학과 관련해서는 대략 다음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1) 문학 양식: 올바른 <성경> 해석의 첫 단계로서, 본문의 장르 구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듀브로우’의 인용문에서 밝힌 바 있다.
(2) 구성(plot)과 수사(修辭, discourse): 학자들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이야기를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예컨대, 서사비평(敍事批評, narrative criticism)에서는 저자가 서사를 통해서 어떻게 독자에게 의미를 전달하거나 영향을 주려고 하는가를 연구하는데, 이 경우 서사를 이루는 두 부분으로 “이야기”(story)와 “담론”(discourse, 서술 방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구약> 문학의 경우 구성상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평행(a-b-c-d); (2) 대칭 및 교차(a-b-c: a'-b'-c' 또는 a-b-c-c'-b'-a'); (3) 반복(또는 순환)(a-b-c-a-b-c). 고대 근동 언어들은 전형적으로 상형문자의 회화적(繪畵的)이며 시청각적(視聽覺的) 특징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한다. 근동의 언어는 읽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보고 듣는 대상으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저자들은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화자(話者)요 화가(畵家)이다. <구약>의 장(章)과 절(節)의 구분은 현대의 독자들이 첨가한 것으로서 고대의 독법(讀法)을 살린 것이 아니다. 고대 사본들은 한 결 같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기록함으로써, 제목이나 부제나 들여쓰기와 같은 어떤 시각적인 구조 표시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단순히 열을 채워나갔다. 이것은 저자들이 그들 언어의 회화적이며 시청각적인 특징을 염두에 두고, 이들 특징이 문장의 이면에 강하게 버티고 있는 구조적인 틀을 이루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틀의 특징은 (1) 평행(parallel), (2) 반복(repition), (3) 교차(chiasmus)로 구분할 수 있다. 반복은 다시 역반복(antistrophe), 평행은 (1) 유사평행(synonymus parallel), (2) 대조평행(antithetic parallel), (3)종합평행(synthetic parallel) 등을 포함하며, 교차에는 (1) 역순환(palistrophe)과 원형구성(ring-composition) 등이 있다.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어느 한 구성의 형식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여러 구성들을 다양하게 혼합시켜 무미건조함을 피했고, 더 나아가 나름대로 독특한 심층 구조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주제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러한 원리에 따라 결말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나아가는가 하면, 때로는 시적인 반복 평행의 기법처럼 순환적인 특성을 보이기도 하고, 또는 음악에서처럼 절정(絶頂)을 향하여 나아가다가, 그 절정에서(최고 또는 최저)에서 다시 그동안의 과정과 대칭(對稱)을 이루면서 결말을 향하여 나아가기도 한다. 이 경우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그 절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야기의 구성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추가로 덧붙일 수 있다: (1) 구성의 원형(原型)은 무엇인가? 즉 비극으로 끝나는가(∩字型 구성), 아니면 희극인가(∪字型 구성)?; (2) 주인공은 누구이며, 그는 어떤 인물인가?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주인공과 어떻게 비교되는가?; (3) 반복되는 행동이나 대화 또는 이미지 등을 통해서 형성되는 모티브(motifs)는 무엇인가?; (4) 이야기의 해설자는 누구이며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이야기의 구성에 대한 이러한 질문들과 더불어 수사적 기법에 대한 질문들 역시 본문의 문학과 관련된 연구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성경>의 화자들은 아주 다양한 수사적 기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비유; 은유; 이미지; 역설; 해학; 침묵; 오해; 과장; 언어의 유희; 등.
신학과 신앙. 본문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제대로 수행되었다면, 신학적 주제는 마치 결론처럼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 문체, 그리고 구조와 배경 등이 함께 어우러져 총체적인 조화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의 신학적 주제 도출과 관련해서 대상이 되는 본문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훈과 적용. 이 부분은 <성경> 해석의 절정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그 첫 단계로서 본문의 “처음 독자” 내지는 “의도된 독자”가 누구인지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 독자들이 처해있던 삶의 자리 또는 실존적 상황에서 주어졌을 것으로 기대되는 지적 교훈, 정서적 감동, 그리고 의지적 결단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을 위한 적용과 구체적인 행동 지침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경종합비평 방법은 종교개혁 이후 계몽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 온 통시비평의 학문적 업적과 가치를 인정하며, 이러한 바탕 위에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등장한 공시비평의 제 방법들의 관심사들을 공유하려는 시도이다. 앞선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비평의 주된 관심사가 저자에 대한 것이었다면, 공시비평의 관심사는 주로 <성경> 본문 그 자체이다. 그리고 더욱 최근에는 문학비평의 관점이 고조되면서, 독자 연구 중심으로 변해왔다. 이는 당시의 청중에게 그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지나친 독자 비평의 추세는 본문 자체가 지니는 의미를 소홀히 하거나, 부인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문의 문학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는 <성경> 본문이 해석학에서 갖는 권위를 계속 옹호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이 단순히 역사나 과학 또는 사회학 교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주는 문학적 도구, 즉 성문학(聖文學)으로서의 지위를 갖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다.
종합비평의 관심사가 신학과 신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주는 시청각적(視聽覺的)이고 회화적(繪畵的)인 효과를 통해서 정서적인 감동을 얻는 데에도 있음을 보았다. 즉 독자의 전인적인 반응, 즉 정서적, 의지적 반응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종합적 접근 방식을 요한다는 사실은 해석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문학적 자질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자질이 결핍된 가운데 해석자들이 자유스러운 해석을 시도할 때 혼돈과 주관적 독단주의로 흐를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므로 문학 비평을 시도하는 해석자들은 일반 문학에 대한 이해나, 그 방법론에 대해서 부단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건전한 해석 공동체의 역할도 필수적인데, 이를 통해서 각 해석자가 주관에 빠져 해석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제 5장: <구약>세계-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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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세계: 지리
제 3장에서 “<구약>의 역사”에 관하여 세 가지 가능한 의미가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1) “정경화(正經化)의 역사”; (2) <구약>의 세계, 즉 “<구약>이 다루고 있는 역사”; (3) <구약>의 배경, 즉 공동체의 “삶의 자리”. 제 3장에서 다룬 내용은 이중 첫 번째에 관한 것이었고, 이어서 두 번째 주제를 두 장에 걸쳐서 다루게 될 것인데, 이곳에서는 <구약>의 지리(地理)에 관해서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그분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 속에 등장하는 역사나 지리적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약>의 세계는 지리적으로는 오늘날 중동(中東)으로 불리는 지역이며, 역사적으로는 고대 근동(近東) 세계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이 문명의 발상지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해야 할 것이다.
<구약>당시의 고대 근동은 동쪽으로 ‘메소포타미아’(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북쪽으로 소아시아와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터키’), 서쪽으로 ‘이집트’와 ‘시리아’-‘팔레스타인’,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를 총칭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구약>에 등장하는 사건의 80%가 지중해 동편에 위치한 ‘시리아’-‘팔레스타인’(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오늘날에도 각종 정치ㆍ사회적인 문제들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구약>의 지리
1. 비옥한 초승달
(1) <구약>의 무대는 이른 바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로 불리는 ‘나일’ 삼각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계곡, 지중해 연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하는 비옥한 땅으로, 인류의 2대 문명의 발상지가 이곳에 있다(지도 참고).
(2) 북동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을 위시한 높은 산맥들로, 남서쪽으로는 ‘사하라’사막, ‘아라비아’ 사막 등으로,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지중해로 둘러싸여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천연요새로, 경제 문화적으로는 요충지로, 일찍부터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천연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2. 메소포타미아
(1) ‘메소포타미아’란 “강 사이에 있는 땅”으로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을 말한다. 이 지역은 북부 산악지역에서부터 남부 ‘페르시아’만(蠻)의 평원에 이르는 길이 600마일의 띠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비옥한 초승달을 포함하고 있어 특별히 영농에 적합한 땅이기도 하다.
(2) 북부 ‘메소포타미아’는 이스라엘의 기원을 이루는 본토(本土)로서, ‘히브리’ 족장들의 출신지역이기도 하다. ‘아브라함’도 ‘아모리’족 출신이며(겔 16:3), ‘야곱’ 역시 ‘밧단 아람’에서 ‘아모리’ 친척들과 동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창 28:1-9).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지역에서 발흥한 제국들-‘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의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제 4장 참고). 대제국들이 일어날 때마다 모두 ‘팔레스타인’을 지배하였고, 특히 ‘앗수르’와 ‘바벨론’은 ‘히브리’왕국을 분열시키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두 제국은 엄청난 숫자의 포로를 각기 자국(自國),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시켰으며, 이들 포로는 이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통치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된다.
3. 소아시아/아나톨리아
(1)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의 북서 편에 위치해 있으며, 기후에 따라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남서부; ②중부 평원; ③ 북동 산악지역.
남서부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비옥한 토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부평원은 건조하고 황폐하나 다양한 광석이 이곳에 매장되어있다. 그리고 북동지역은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다.
(2) 보다시피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남동부 유럽을 잇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공과 간섭에 시달려야 했다. 주전 2천년 경에는 ‘힛타이트’ 제국이 이 지역에서 흥기(興起)한 바 있고, “신 바벨론” 시기(주전 685-546)에는 ‘리디아’ 족이 소아시아의 서부 지역을 다스리기도 했다.
(3) 이 제국은 무기 수출과 용병계약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제국이 정복한 적국(敵國)과 더불어 작성한 정치조약은 고대세계에 널리 통용되는 문서양식이 되기도 했다. 흔히 “힛타이트 계약 법전”으로 알려져 있는 이 문서는 <구약>의 언약(예. 출 19-24)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이 많다. 그 형식과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조약 체결 당사자의 신원 진술: 조약 쌍방의 신원을 밝힘.
② 역사적 서언: 두 국가 간의 관계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에 대한 기술(대개 지배국이 속국에 대하여 그동안 얼마나 관대하게 대해왔는지를 기술함). 따라서 속국은 지배국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있다.
③ 계약(언약): 두 국가 간의 미래의 관계에 대한 규정. 예로써, 속국의 왕은 지배국이 적국의 공격을 받을 때 대국을 지원해야 하며, 또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속국이 적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국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④ 축복과 저주: 속국이 이 언약을 어기면 저주를, 신실하게 지키면 축복을 받을 것임을 규정하고 있다.
⑤ 증인들: 이는 계약 문서의 결론으로서, 신들과, 백성들과, 하늘과, 땅을 언약의 증인으로 참여시킨다.
⑥ 언약 문서의 보관.
4. 시리아-팔레스틴
(1) 이 지역은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세 대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중해를 남북으로 400여 마일에 걸쳐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 치 해 있는 지역 내 주요 천연 항구들로서 ‘두로’, ‘시돈’, ‘비블로스’ 등이 있다(참고. 지도).
(2) 이 지역에 거주했던 주요 민족들로서는 ‘페니키아’ 족속과 ‘아람’인을 들 수 있다. ‘페니키아’ 족속은 북부 해안 도시에서 거의 2천여 년을 지배하면서(참고. 겔 27),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들과 동맹을 맺어 성전 건축의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기도 했다(참고. 왕상 7:13-22; 9:26-28). 그리고 분열왕국 시기에는 ‘아합’ 왕은 ‘페니키아’공주와 ‘이세벨’과의 혼인을 통해서 ‘바알’ 종교를 북이스라엘의 종교 속에 혼합시켰다(참고. 왕상 16:29-34).
두 번째 족속 ‘아람’은 ‘시리아’-‘팔레스틴’ 내륙 지역을 차지한 ‘아모리’와 ‘호리’ 족속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접경을 유지하면서, ‘앗수르’ 제국의 세력 부침(浮沈)에 따라 이스라엘과 동맹 또는 적대관계를 오가는 외교를 펼쳤다.
5. 이집트
(1) ‘이집트’는 ‘나일’ 하류 750 마일에 의하여 그 특성이 확연히 다른 두 지역으로 양분 된다: 영토의 동쪽은 석회석 절벽, 서쪽은 사막지대이다.
(2) 삼각주는 연 강우량이 200밀리 정도로, 경작가능지역은 강변 폭이 25마일-150마일에 이른다.
(3) 고대 ‘이집트’는 상부왕국(남부강변 계곡지대)과 하부왕국(북부 삼각주)으로 나뉘는데, 구왕국(舊王國)(주전 3100-2100) 시기에 이르러 ‘바로’의 영도 하에 두 왕국이 통합을 이룬다. ‘피라밋’ 등과 같은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이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어서 중왕국(中王國)(주전 2133-1786)및 제 2중간기(1786-1570)는 ‘아브라함’의 ‘이집트’ 체류(창 12:10-20), ‘야곱’ 일가의 이주(창 45:16-47:12), 그리고 아마도 ‘히브리’인들에 대한 억압(출 1:1-14)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신왕국(新王國)(주전 1570-1085) 때에 출애굽이 이루어졌다(참고. 출 3-13). 그러나 “출애굽”의 시기에 대해서는 이보다 늦은 주전 13 세기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4) ‘이집트’는 전통적으로 왕국시대의 이스라엘과 밀접한 정치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남북조 시기에는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 맞서 이스라엘의 중대한 동맹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밀접한 관계로 ‘이집트’는 <구약>의 언어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이집트’에서 직접적으로 차용한 용어만 해도 50개 이상이나 되며, <창세기> 41:43의 “엎드리다”는 ‘이집트’어다.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출 32)도 ‘이집트’의 송아지 신 ‘아피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고,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참고. 왕상 12). 따라서 이스라엘의 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의존하는 행태를 두고 이를 경고하고 정죄했다는 사실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참고. 호 7:11; 사 19:16-25).
6. 아라비아 반도
(1)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갈라놓는 천연 격리 물과 같다. 지역적 특징은 북서쪽에 페트라 지역(‘에돔’, ‘모압’, ‘요르단’), 중부 사막지대, 그리고 남부 해안 지역으로 나뉜다.
(2) ‘모압’과 ‘암몬’ 족속은 ‘롯’의 두 딸과 그 아비와의 근친상간으로 발생한 단일 민족 집단이다(참고. 창 19:30-38). 이 족속은 조직적 왕권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며, 출애굽 당시 ‘요르단’ 동남부 노정을 방해한 세력이다(신 2:9-37). 이들은 이 일로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신 23:3). 이들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에도 항상 이스라엘의 주요 적대세력이 되었고, ‘바벨론’과 동맹을 이루어 ‘예루살렘’ 함락을 도운다(왕하 24; 렘 37). 왕정시대 내내 ‘암몬’의 우상신 ‘밀곰’과 ‘몰록’과, ‘모압’의 우상 ‘그모스’는 끊임없는 두통꺼리가 되기도 했다(참고. 왕상 11:7; 왕하 23:10; 왕상 11:7). 그러나 ‘모압’의 여인 ‘룻’(룻 1:16)은 ‘다윗’ 가계에 드는 영예도 누렸다.
(3) ‘에돔’은 ‘모압’ 남부 지역 거민들로서, ‘에서’의 후손이다(창 25:19-26). 이 족속은 ‘예루살렘’ 멸망 시까지 이스라엘과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야훼’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으로 전락한다(말 1:2-4)
(4)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으로(참고. 창 36:12,16),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방해한다(출 17:8-16).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을 압박한 동맹 세력의 일원이 되기도 했고(삿 6:3; 7:12), 출애굽을 방해한 죄로 소멸의 저주를 받았다(신 25:17-19; 민 24:20).
(5) ‘미디안’: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참고. 창 25:1-2;18), ‘구스’ 족속인 듯하다(힙 3:7).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려갔으며(참고. 창 37:25-36), ‘미디안’ 인 ‘이드로’의 딸은 ‘모세’의 아내가 되었고(출 2:15-22),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적이 되기도 했다(삿 6:2;7:2).
팔레스타인: 그 땅
1. 땅의 의미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그 땅”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땅”이다. 사람들은 이 땅을 흔히 “사이의 땅”(the Land in between)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이 땅이 지닌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아래 그림 참고):
(1) 대륙과 대륙 사이
(2) 기후와 기후 사이
(3) 문화와 문화 사이(예: 농경과 유목 사이)
(4) 역사와 역사 사이
(5) 바다와 사막 사이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에 세계 3대 종교가 혼재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땅에 대한 이와 같은 수식(修飾)은 결코 과장되었다고 할 수 없다. ‘유대’교도 들에게 이 도시는 종말의 날에 대망의 ‘메시아’가 와서 새로운 역사를 펼쳐갈 ‘시온’ 성이 될 것이며, 기독교인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향이자 기독교의 발원지이며,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메카’이자 ‘알쿠드’(거룩한 도성)이다. 이 땅이 갖는 신학적 의미 등에 대해서는 본인의 <여호수아> 교재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성경>에서 이 땅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바, “그 땅”, “약속의 땅”, ‘가나안’ 등인데, 정작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블레셋’ 족속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족속은 주전 1300-1200년경 ‘욥바’에서 ‘가자’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에 정착한 민족으로, <성경>에서는 ‘크레테’섬 또는 ‘갑돌’(렘 47:4; 암 9:7)과 연관되어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이전에 부르던 이름으로, “자주 빛 땅”이라는 의미라는 해석이 있다.
2. 그 땅의 지형
그 땅은 경도에 따라 네 지역으로 나뉜다: (1) 해안 평야; (2) 중안 고원 지대; (3) 요르단 계곡; (4) 요르단 동쪽 평지.
해안평야. (1) 연 강우량이 750밀리 이상의 비옥한 땅으로서, 지중해에 연한 해안을 따라 ‘갈멜’산까지 뻗친 ‘악코’평원, ‘갈멜’산에서 ‘욥바’항에 이르는 ‘샤론’평원, ‘욥바’에서 최남단 ‘가자’까지 ‘팔레스틴’ 평원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2) ‘페니키아’인이 북부를, ‘블레셋’인이 남부를 각각 통제하였는데, 구약사(舊約史)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중앙고원지대. (1) 왕정시대 ‘유대’인들이 점령한 대부분의 땅이 이 지역에 포함되어있으며, 당연히 전쟁이나 종교적 행사가 주로 여기서 수행되었다.
(2) 그리고 높은 언덕들마다 감람, 무화과, 포도 등의 많은 수확이 있었다.
(3) 이 지역은 ‘갈릴리’, ‘사마리아’, ‘유다’의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갈릴리’는 ‘다볼’ 산(삿 4:6, 12)과 ‘이스르엘’ 계곡을 포함하며, ‘사마리아’(후에 이스라엘로 바뀜)에는 ‘세겜’과 ‘에발’과 ‘그리심’산(수 8:30-35) 등이 있다. 그리고 ‘유다’에는 돌이 많고 일 년 내 농사에 부적합한 땅이다. 흔히 ‘유다’광야가 불리기도 한다.
요단계곡. (1) ‘요단’강: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로 합류된다. (2) ‘갈릴리’ 호수(폭 20km, 길이 11km)로부터 ‘요단’강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사해(死海)까지 이른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430미터가 낮다. (3) ‘갈릴리’ 지역은 인구가 밀집한 농경지로서, 남쪽 계곡에는 정글과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었다(렘 49:19; 50:44; 슥 11:3). (4) 계곡 남단에는 ‘여리고’의 오아시스를 제외하고는 거주민이 서의 살지 않았다. (5) 사해 곳곳에는 동굴이 있어 정치 망명자나 분리파 종교집단의 은신처가 되어왔다. 유명한 사해 두루마리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요단 동쪽 평지(Transjordan Plain). ‘요단’강과 ‘아라비아’ 사막 북부 사이의 고도 650-2000 미터의 높고 넓은 평야지대로서, 이스라엘이 지배한 적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발원하여 ‘요단’강을 이루는 네 강이 있는데, ‘야르묵’, ‘얍복’, ‘아르논’, ‘제렛’강이 그들이다. ‘요단’ 동쪽 지역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최초로 정착한 곳으로서(수 13:24-31), ‘이스라엘’, ‘아람’, ‘앗수르’, ‘모압’, ‘암몬’ 족속들 간에 세력 다툼이 이 지역에서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교역로와 ‘길르앗’, ‘바산’의 옥토 때문이었다. ‘요단’ 평원을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바산’ 평원: 북쪽 ‘야르묵’에서 ‘단’으로 이어지는 세 지역 중 가장 비옥한 지역(시 22:12; 암 4:1).
(2) ‘모압’과 ‘길르앗’: ‘제렛’에서 ‘야르묵’으로 이어지는 중앙의 건조한 땅으로서, 경작에 적합한 옥토뿐 아니라 광대한 목초지를 포함하고 있다.
(3) ‘세일’산 평원: ‘엘랏’만과 ‘제렛’강을 연결하는 지역.
3. 무역 통로
육로. (1)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겔 27:12-)로서 주전 3000년 이래 국제 교역의 중요 거점이 되어왔다(지도 참고).
(2)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잇는 두 개의 통로가 있는 바, 하나는 바닷길이며, 다른 하나는 왕의 대로다: ① “바닷길”(‘로마’ 시대는 ‘비아 마리아’로 불렸다)은 ‘칸타라’(‘이집트’ 하부 삼각지역)에서 ‘시나이’ 반도 북부를 가로질러 ‘네겝’과 ‘유대’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므깃도’를 거쳐 ‘벳샨’에 이르는 길이다.
‘벳샨’에서 갈라진 하나의 길은 ‘갈릴리’ 서안(西岸)을 따라 ‘단’과 ‘다마스커스’로 이르며, 다른 길은 동쪽으로 계속 진행하여 ‘바산’을 지나 ‘다마스커스’로 향한다. ‘다마스커스’에 이르러 이 고속도로는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벨론’과 ‘우르’로 향한다; ② “왕의 대로” 역시 ‘바벨론’과 ‘이집트’를 연결하면서 ‘시나이’ 반도와 ‘가네스 바네아’만, ‘네겝’, ‘에돔’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모압’, ‘암몬’, ‘길르앗’ 등 여러 도시를 거친다(왕하 3:8).
무역 통로의 중요성. (1) ‘팔레스타인’은 세 개의 대륙을 잇는 경제망으로서,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두고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세계사 전체에 걸쳐 열방(‘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샤’, ‘로마’)들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2) 이와 같은 국제 도시적 성격은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종교적 혼합주의, 즉 종교다원주의에 쉽게 빠져들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나라 전체의 멸망을 자초하기에 이른다.
4. 땅의 신학적 의미
<구약>은 결코 땅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구약>을 이해하는 세 가지 핵심어는 율법(the Law)과 땅(the Land)과 지도자(the Leadership)로서, 이들의 관계는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특히 잘 이해할 수 있다. 본인의 <여호수아서> 설교 참고.
땅이 갖는 신학적 의미는 다음의 관계들을 통해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1) 아브라함과 언약과 땅(창 12:1-3)
(2) 자유와 해방(출 3:8): 정치와 경제와 인권의 평등
(3) 순종과 땅(레 18:24-30; 신 27; 신 28:1-14; 여호수아)
(4) 안식과 땅(대하 36:21; 왕하 21:10-15; 24:3)
(5) 구약의 언어와 문학적 표상과 땅(시 23; 욜 2:23; 3:18; 신 32:15)
(6) 하나님의 나라와 땅(마 5)
제 6장: <구약> 세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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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세계: 역사
1. 연대기 문제
<구약>시대의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정확한 연대(年代)를 결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록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구약> 연구에서 연대표는 얼마나 중요할까? 적어도 <구약>을 역사(歷史)로서 이해하려 한다면, 이들 질문은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하다 하겠다.
고대의 역사 기록이란 고작해야, “아무개 왕 즉위 제 몇 년” 하는 정도로 연대를 서술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긴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의 자료들을 대별해서 얻은 상대적 연대 (한 왕의 즉위 3년은 다른 왕의 1년이라는 식)의 배열로부터 의외로 자세한 연대 결정이 가능하다는 점만 알아두자. 절대 연대 (“출애굽”은 주전 몇 년이었다 등)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상대 연대의 그물을 고정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근동에 있어 이러한 기점으로 ‘앗수르’의 연조 목록이 사용된다. 이 표는 매 해마다 관리한 사람의 이름을 그 해의 이름으로 삼는 관습에 따라 작성된 목록이다. 이 목록은 관리의 이름과 더불어 그 해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 한두 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주로 군사 원정과 관련된 내용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구자나’의 총독이었던 ‘이시디-사갈레’의 연도가 주전 763년이 거의 확실하다는 점이다. 이 연도가 고대 근동의 연표의 기점이 되며, 이로부터 연조 목록이 포함하고 있는 주전 893-666년의 기간에 대한 연대 계산이 가능해진다. 이 목록에 있는 인물들 중 상당수가 ‘앗수르’ 왕이므로, 2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친 왕조 목록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이 기간이 “신 앗수르” 제국의 지배 기간이었던 관계로, 대부분의 주변국들을 ‘앗수르’를 기준으로 한 연대 계산을 통해서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 해도 연대 계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종종 상대 연도와 절대 연도의 계산 결과가 상충하기도 하고, 때로 상대 연도에 필요한 사건과 인물들이 문서에 기록된 바가 없어서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 당시의 ‘바로’의 경우인데, 그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보다 장기간에 걸친 역사 정보를 주는 사료들 중에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셋’ 1세의 기록에서 ‘샤마쉬-아닷’ 1세가 세운 성전이 641년 만에 붕괴했다는 기록이나, ‘솔로몬’의 기도문(왕상 6:1)에서 성전 봉헌이 출애굽 이후 480년에 있었다는 기록도 연대 계산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어려움을 주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볼 때, 정확한 연대 계산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왕의 경우, 여러 이론에 따라 최대 12년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1-2년의 오차를 지닐 뿐이다. 이후 학자들은 <성경>이 연대 계산의 수수께끼를 풀어준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신뢰를 하기 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2. 메소포타미아
2.1. 족장 이전 시대 (주전 2900-2000)
수메르 왕국. ‘수메르’인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주전 4000년 이전부터거주하면서 이 지역에 문화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의 전성기는 주전 2900-2500년 기간의 초기왕조 시대였다. 이 기간 중에 ‘셈’족 인구 역시 증가하고 있었으며, 필기법의 발명을 위시하여, 수학, 건축, 문학, 교육, 법률,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 기간의 시대적 특징으로, 도시화, 왕권강화, 그리고 종교 사상의 흥왕(興旺) 등을 등 수 있다.
아카드 왕조. ‘사르곤’ 1세가 ‘수메르’를 정복하고 세운 ‘셈’ 계열의 왕조다. 그의 왕조는 동으로 ‘엘람’, 북서로 지중해, 남으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지배하는 세계사상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왕국은 이후 150년을 지탱하다 ‘구이탄’ 족에 의해 멸망한다. 이후 20여명의 ‘구이탄’ 왕이 갈린 것 외는 이 왕조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우르왕조. 향후 1세기에 걸쳐 ‘수메르’ 문화의 부흥기가 이루어진다. ‘슐기’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이후 동쪽으로부터 ‘아모리’족의 침투로 세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엘람’ 족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구약>의 족장들은 바로 이 시대적 배경 하에 등장한다. ‘아브라함’도 ‘아모리’족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2.2. 족장 시대(주전 2000-1600)
‘우르’ 제 3왕조는 ‘이비-신’을 마지막 왕으로 종국을 맞이하였고, 이후 약 2세기 동안 제국 내 각 지역은 도시국가들의 등장으로 공존체계가 이루어진다: ‘이신’, ‘라르사’(‘림신’), ‘라기쉬’, ‘마리’(‘야흐둔 림’), ‘앗수르’(‘샴시 아닷’ 1세), ‘바벨론’(‘함무라비’) 등이 정치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구 바벨론. ‘바벨론’ 제 1왕조로 알려진 제국으로 주전 1800-1600년 사이에 존재했다. ‘우르’ 제 3왕조 때부터 이 지역에 이주해 들어온 ‘아모리’족이 세웠다. ‘함무라비’가 이들 세력의 정점을 이룬바 있다. 흔히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이 법전은 ‘모세’의 법전보다 약 300년을 앞서며, 고대 근동 최초의 법전이자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포괄적인 법전이다. 이 법전은 또한 ‘모세’법에 대한 비교 연구로 아주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구 바벨론’은 ‘함무라비’ 이후 약 1세기를 지탱하다 ‘헷’족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이 기간 동안 가나안 지역 역시 여러 도시국가들이 산재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집트와의 무역 성행과 친화가 두드러진다.
3. 이집트
구 왕국(제 3-8왕조). ‘메소포타미아’의 초기왕국과 거의 동시대에 존재했던 왕국. ‘이집트’ 정치 문화사에 항구적인 자취를 남긴 시대로서 거대한 ‘피라밋’의 건설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다.
제 1중간기(제 7-11왕조). 분열과 무정부 상태로 알려진 시대다.
중 왕국(제 11-12왕조). ‘아멘호텝’(제 12왕조)의 재통일로 향후 200년에 걸친 성장과 개발이 시작된 시기. ‘시리아-팔레스타인’과 활발한 교역이 있었고, 따라서 ‘히브리’ 족장들이 ‘이집트’와 접촉이 있었다면 바로 이 시기였을 것이다.
제 2중간기(제 13-17왕조). ‘셈’ 계열에 속하는 ‘힉소스’ 족이 삼각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중 왕국은 제 13왕조에 이르러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권력은 ‘힉소스’인들에게 이양되고, 이들이 18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까지 이집트를 다스린다. ‘히브리’인들은 이 시기에 삼각주 지역에서 민족적 번성을 누리면서 언약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 왕국 (제 18-20왕조). ‘힉소스’가 추방되고, ‘아모세’에 의해 18왕조의 막이 오른다. ‘히브리’인들이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이 아마도 이 시기였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은 ‘이집트’가 오랜 외세의 지배로 이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축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바로’ 왕이 ‘히브리’인들을 두려워 했던 것도 그들이 군사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외세와연합할 가능성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참고. 출 1:10). 그러면서도 모종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추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창 47:6).
제 18-19왕조를 거치면서 ‘이집트’의 정치력은 단기간의 하강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수준에 있었다. 15세기 전반부를 지배한 ‘투트모스’ 3세 때 ‘이집트’의 세력은 절정에 달했다. 출애굽이 이 시기에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투트모스’ 3세의 아들 ‘아멘호텝’ 2세가 바로 출애굽 당시의 ‘바로’라고 믿는다.
이후 ‘이집트’의 세력은 약화되다가, 13세기에 ‘라메세스’ 2세의 제 19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제 13세기 출애굽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바로 ‘라메세스’ 2세가 출애굽 당시의 ‘바로’라고 주장한다.
4. 가나안/팔레스타인
4.1. 후기 청동기 시대(주전 1500-1200)
제 18왕조를 시작으로 ‘이집트’가 그 세력을 잃어갈 때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가 막을 올린다. 이 시기는 흔히 국제 교역의 시기로서 국제 교역로를 틀어쥔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이권은 대단한 것이었다. 모든 수송이 이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열강들은 저마다 이 지역의 지배를 놓고 패권을 겨루게 되었으며, 이 시기는 <구약>의 <사사기>에 해당된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외적의 끊임없는 침입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미타니 왕국. (1) 후기 청동기 시대가 시작될 무렵 <성경>에서 ‘아람-나하라임’으로 불리는(삿 3:8-10) 이 왕국은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와 ‘가데스’ 북부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적도 있다.
(2) 그러나 이들은 이후 북쪽의 ‘힛타이트’족(<성경>에서는 ‘헷’족으로 알려져 있다)에 의해서 진멸되고, 이후부터 ‘힛타이트’가 약 250년 동안 고대 근동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이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이집트’와 ‘미타니’는 동맹을 맺어 ‘헷’제국에 도전하지만 역부족이었다.
(3) 주전 13세기에 이르러, ‘이집트’는 19왕조의 등장으로 세력이 강화되어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놓고 ‘헷’제국과 한 판 격돌을 벌이게 되나 역시 ‘이집트’의 참패로 끝나고 ‘헷’의 지배권은 오히려 남방으로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그러나 때마침 ‘앗수르’의 ‘살만에셀’ 1세가 시리아로 진격해 오고 있었으므로 양국은 오히려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군사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서진(西進)을 막으려 한다.
4)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리아’와 ‘가나안’을 중앙에 두고 주변 강대국들이 벌이는 세력다툼의 판도가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이 이 시기에 ‘가나안’에 정착했다 하드라도 그들은 이런 세력 다툼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강대국들은 비교적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가나안’은 너무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집트’ 군대 역시 주요 도로망에서 비교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머지않아 돌변하게 될 것이었다.
4.2. 철기시대 1기(주전 1200-1000)
시작. 철기시대의 등장으로 ‘헷’제국이 몰락하고 ‘시리아’ 도시국가들도 파괴된다.
해양족속. 해양족속으로 불리는 연합세력이 ‘에게’해를 타고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여 ‘헷’제국을 초토화시킨다. ‘이집트’와 대규모의 해전을 벌여 대량의 사상자를 낸 후에 비로소 물러나긴 했지만, 이들 중 ‘블레셋’이라 불리는 족속들이 ‘가나안’ 남서부에 정착하게 되고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이 이들로부터 유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블레셋의 철기문화. 이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간략하게 등장한다(삼상 13:19-23)
소강 시대. 이 시대는 두드러진 강대국이 거의 사라지고 각지에 산재한 소규모의 권력 집단이 할거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권력의 진공상태 속에서 이스라엘과 같은 소규모 국가들은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
4.3. 다윗과 솔로몬 왕국(주전1000-900)
사사기 이후. 사사들의 시대가 거의 끝날 무렵 ‘블레셋’은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다(삿 15:11). ‘사무엘’ 시대에 들어 ‘블레셋’은 고원지대를 침공하고 ‘실로’를 파괴했으나(삼상 4), 훗날 철수한다(삼상 7). ‘사무엘’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은 권력균형 유지에 대체로 성공했지만, ‘길보아’ 산 전투에서 ‘사울’의 전사로 패전을 당한 후 ‘블레셋’이 ‘가나안’ 중앙부 대부분을 지배하도록 허용한다.
다윗의 등장. 그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은 영토를 회복하고,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솔로몬의 통치. 그는 선왕(先王)의 위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군사적으로 ‘다윗’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의 지혜와 부가 대단했지만, 국가적으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의 영적 자질 역시 낙제점이었음을 <열왕기>와 <역대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이 남북 분열을 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5. 아람의 등장 (주전 950-800)
설상가상으로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이 왕국의 북쪽을 장악함으로써 ‘아람’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아람’인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후기 청동기 말엽 ‘유프라데스’ 북부였는데, 해양족의 침공으로 ‘시리아’로 남하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들은 ‘솔로몬’ 통치 말기에 자취권을 획득하여 ‘다마스커스’를 중심으로 새 왕국을 건설하고, 주전 9세기 중엽에 이르러 완전한 통일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이 왕국은 상당기간 서부의 강대세력으로 동부의 ‘앗수르’를 견제하는 이스라엘의 방파제 역할도 했으나, 그와 동시에 북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말년에는 ‘하사엘’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의 영토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성과를 거둔다.
6. 앗수르와 이스라엘 (주전 850-750)
‘아람’의 부흥과 거의 동시에 ‘앗수르’ 제국 역시 그 세력을 점차 키워가고 있었다. 초기의 지도자로 ‘앗술나시르팔’ 2세와 그의 아들 ‘앗술나시르팔’ 3세는 ‘유프라데스’강 상류를 장악하고 ‘아람’ 원정에 나선다(853년). 이 원정은 ‘아람’의 ‘벤하닷’과 ‘이스라엘’의 ‘아합’간의 연합 세력에 의해 저지된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9세기 내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 시기의 역사에 관해서는 추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7. 신 앗수르 제국(주전 750-650)
반세기 가량 잠잠하던 ‘앗수르’는 745년 ‘디글랏빌레셋’ 3세의 영도 하에 새로운 강대국으로 재등장한다. ‘신 앗수르’로 불리는 이 제곡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처음 기록된 “세계 규모”의 대제국이며, 훗날 ‘로마’ 제국으로까지 이어지는 제국 역사의 효시를 이룬 나라이다. 제국의 최우선 과제는 ‘시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굳히고 주요 교역로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므나헴’ 왕이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시리아 왕 레진. 이에 ‘다마스커스’ 왕 ‘레진’은 새로 흥기한 이스라엘 왕 ‘베가’를 부추겨 왕권 확립을 지원해 주는 대신에, 남 왕국 ‘유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유다’왕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앗수르’와 협약을 맺고 북방 두 동맹을 견제하려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북 왕국의 영토의 대부분이 ‘앗수르’의 속국으로 전락해 버렸고, ‘아하스’ 자신도 결국은 속국의 처지에 만족해야만 했다.
살만에셀 4세. 그는 ‘디글랏빌레셀’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의 반란을 저지하고 ‘사마리아’ 원정으로 결국 북 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다(722년).
사르곤 2세/산헤립. 이 두 사람이 통치하던 기간은 ‘바벨론’이 독립을 선언하고, ‘앗수르’가 서방원정을 꾀하던 시기이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황급히 조공을 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빌었다. 그러자 ‘앗수르’ 군대는 자기네들끼리 싸우다 황급히 퇴각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펴면서 오랜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이 당시가 ‘앗수르’ 세력의 절정이었고 이후부터 서서히 ‘신 바벨론’에게 대륙의 지배권을 넘겨주게 된다.
8. 신 바벨론 제국(주전 600-550)
주전 626년. ‘바벨론’의 독립 당시 왕권을 쥔 ‘갈대아’의 ‘나보폴라살’은 향후 10여 년간 ‘바벨론’을 지휘했지만 ‘앗수르’ 영토 내부로 세력을 확장하지는 못했다.
니느웨의 함락. 그러나 이후 ‘매데’족 왕 ‘사사르’와 동맹을 맺어 ‘니느웨’를 함락시키기에 이른다(612년).
느부갓네살. 이 왕의 등장으로 ‘앗수르’는 완전히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 동시에 ‘신바벨론’ 제국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 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왕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605-562년 사이의 재위 기간 동안 군사원정과 내정 통치 양면에서 확고한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의 지배는 ‘이집트’까지 이르렀다.
유다의 운명. ‘바벨론’을 맞아 싸우던 ‘앗수르’ 왕 ‘아술발릿’을 도우려는 ‘이집트’의 파병을 좌절시키려는 ‘요시아’의 노력은 그 자신의 죽음으로 실패로 끝난다. 이로 인해 그의 개혁 정책도 끝이 나고, 그의 세 아들과 손자가 줄줄이 왕위를 물려받는 혼돈과 혼란이 왕국 내에서 계속된다. 처음 그를 계승한 장남 ‘여호아하스’는 즉위 3개월 만에 ‘이집트’로 끌려갔고, 이어 차남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이 ‘앗수르-이집트’ 연합군을 격파하고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주권자가 되면서 그의 속국이 되는 비운을 맛보았으며, 이후 반 ‘바벨론’ 반역을 시도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으나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597년). 선지자 ‘에스겔’이 바로 이때 함께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은 ‘요시아’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책정했는데, 그는 재임 초부터 반 ‘바벨론’ 정책으로 ‘이집트’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지만(589년), 이듬해 ‘예루살렘’은 정복되고 그 역시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왕국은 그 종말을 고한다(주전 586년). 이상의 이야기는 모두 <예레미야>에서 읽을 수 있다.
9. 메대-바사 제국(주전 550-450)
느부갓네살의 죽음. 그토록 막강한 신 바벨론 제국도 ‘느부갓네살’의 죽음으로 급속히 쇠락해 갔으며, 그의 죽음 이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네 왕이 통치를 이어갔다. “벽에 쓰인 글씨”는 막상 ‘벨사살’이 멸망 전날 밤에 잔치를 열던 그 순간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죽은 지 5년 내에 ‘고레스’ 왕은 이미 자신의 군사력을 결집하고 있었다.
고레스의 등극.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가 ‘메대’와의 조약을 파기하고, ‘고레스’의 ‘바사’(페르샤) 왕국과 결탁한 것이 556년의 일이다. ‘메대’를 칠 기회만 노리고 있던 ‘고레스’는 승전을 거두고 새로운 ‘메대-바사’ 왕국을 세우게 된다(555년).
귀환. ‘고레스’는 이전의 포악한 ‘바벨론’ 왕들과는 달리 자애로운 해방자로 불리기를 원했고, 그의 통치 방식은 그에 대한 충성심을 지킨다는 한도 내에서 민족적, 종교적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은 이때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흥망성쇠. ‘메대-바사’ 왕국은 ‘고레스’- ‘캄비세’-‘다리우스’를 이어가면서 그 세력을 확장해 갔으나, 세력 확장을 위한 해외원정은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예컨대, 5세기 초 ‘아나톨리아’ 지역에서의 반란을 해결하기 위한 ‘그리스’ 침공은 “마라톤 전투”(490년)를 가져왔고, ‘다리우스’는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그 뒤를 이은 ‘크세륵세스’ 역시 “살라미 해전”에서 ‘그리스’에게 패배를 당한다. 그가 암살된 뒤를 이어 ‘아닥사스다’ 1세는 자신의 궁중 술 관원 ‘느헤미야’의 요청으로 공식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한다. 이는 아마도 그동안 계속되던 ‘그리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을 우려했던 왕의 한 정책의 결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후 ‘그리스’와의 계속되는 교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1세기 이상을 견뎌냈지만, 군사천재 ‘알렉산더’ 대제 앞에는 역사 무대의 중앙을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7장: <성경>과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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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고고학
<구약>의 역사 기록을 이해하는 두 가지 자료가 있다. <구약> 내적인 자료와 외적인 자료가 그들이다. 전자(前者)는 <구약> 자체가 증거하고, 기록하고 있는 당시의 문화나 역사, 그리고 <구약> 본문의 문학적 분석을 통한 이해를 포함한다. 한편 후자(後者)는 고대 근동(近東)의 문화나 언어 등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한 이해를 말한다. 전자가 고립적이고 절대적인 특징을 지닌다면, 후자는 상대적이며 개방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考古學)은 후자의 자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팔레스타인’을 고고학적 양파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지질학에서의 지층 연구처럼, 한 지역에서 지역이나 땅의 깊이나, 또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出土)된 것에서 기인한 때문이다. 고고학은 생명과학에서의 고생물학에 비견될 수 있는 것으로서, 그 한계와 유용성을 동시에 지닌 학문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고고학의 가장 큰 기여(寄與)라면 토판(土版)에 기록한 낙서에서부터 왕실 문서에 이르기까지 도장, 동전, 장례비문, 편지, 건물에 새긴 각문, 주전자 손잡이 등 실로 다양하다.
1. 고고학의 유익들
(1) <성경>에 등장하는 자료들을 다룰 수 있는 역사적 이해의 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2) <성경>에서 다루는 일련의 사건들을 인과관계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3) 고대인들의 행동 양식, 풍습, 선례, 언어 등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다.
2. 고고학의 한계들
고고학적 자료들이 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유익을 제공해 줄 수 있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들을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 땅 속에 있는 수없는 자료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출토되었을 뿐이다.
(2) 유적 발굴지 또한 전체 지역에 비해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3) 극소수의 유적 후보지에서 발굴되는 유물들 중 상세한 분석을 거쳐 보고되는 자료는 극히 미미하다.
(4) 고고학적 자료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함에 있어 고고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예컨대, ‘여리고’ 성벽 붕괴의 과학적 원인과 하나님의 역할이나, ‘바벨론’ 포로귀환과 하나님의 섭리를 연계 시키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역사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신학적 도구이며, 고고학이 역사를 확증할 수는 있을지라도 신학의 진위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적 사건은 “신학 화된 역사”이다. 즉 <성경>은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소위 說話(또는 敍事)(narrative)라고 부르는 문학의 한 양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점과 관련해서 ‘트렘퍼 롱맨’의 역사 기술(記述)에 관한 설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참고 도서 1).
3. 고고학적 유물들
<구약> 연구와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고대 근동의 유물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문서고(文書庫); (2) 기념비와 토판(土版); (3) 왕실 연대기(年代記); (4) 사해 사본(死海 寫本).
문서고. 이스라엘의 문서고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으나,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왕실 도서관은 십여 개 정도 알려져 있다. 이들 문서고는 여러 가지 자료나 문헌들을 보관하고 있다: 영수증; 신화; 조약; 지혜문서; 서사(敍事); 역사문서; 예언; 종교적 저주; 呪文; 찬가; 기도문. 이들 자료들은 모두 이스라엘 신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아주 유익한 것들로서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서고들을 들 수 있다:
(1) ‘에블라’(Ebla) 문서고: 이 문서고는 1970년 중반 시리아 북부 ‘텔-마르디크라’ 지역에서 이탈리아 고고학 팀이 발견하였다. 이곳에서 기원전 3천년으로 추정되는 수천 개의 토판이 발굴되었으나, <구약>의 이해에 직접적인 관계는 현재까지 미지수.
(2) ‘마리’(Mari) 문서고: ‘유프라테스’ 상류의 ‘마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이렇게 부른다. 이 지역은 주전 3000후반기-2000전반기에 존재했던 도시로 ‘짐리-림’으로 불리는 왕궁 도서관이 이곳에 있었다. 이 문서고는 ‘함무라비’ 왕의 군사원정(주전 18세기)에 관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문학에 편재해있던 각종 예언들을 최대 규모로 보관하고 있어, 이스라엘 예언문학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제공해 주고 있다.
(3) ‘누지’ 문서고: 이 문서고는 고대 근동의 개인 소장 문서고로서, 주전 1500-1350년경의 ‘미타니’ 왕의 ‘후리아’ 제국 당시의 결혼계약, 입양 합의서, 토지매매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구약> 족장들의 생활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예컨대, ‘사라’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의 상속자를 낳도록 하는 풍습이 등장하고 있다.
(4) ‘아마르나’ 문서고: 이 문서고는 주전 14세기 경 ‘바로’ 왕과 여타 고대 근동 국가 간의 편지 4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집트’ 지배력의 약화와 그에 따른 “신 힛타이트” 제국의 발흥 등에 관한 역사적 자료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속국으로 있던 ‘가나안’의 속국들이 보여주는 저항과 배신에 관한 표현들도 보여주고 있다: (예) ‘바로’는 위대하다....그는 어린아이이다.
(5) ‘하투샤쉬’ 문서고: 이 문서고는 현재 소아시아 ‘보아즈쾨’ 지역에 자리했던 것으로, 고대 근동 ‘헷’ 제국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이 문서고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조약문서를 통해서 <신명기> 법전의 문학 양식에 관한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6) ‘우가릿’ 문서고: 이 문서고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시리아’ 북부 항구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가나안’의 ‘바알’신앙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예컨대, ‘바알’과 관련한 여섯 개의 토판에는 ‘바알’이 바다의 신 ‘얌’을 정복하는 신화라든지, ‘바알’ 왕궁의 건축 이야기, ‘바알’과 ‘모토’(죽음의 신)간의 투쟁 신화 등을 ‘히브리’어에 가장 가까운 언어로 소개하고 있다.
(7) 앗술바니팔 문서고: ‘니느웨’에 소재한 이 문서고는 고고학 사상 최대의 도서관으로 불린다. 그 유명한 <길가메쉬 서사시>(홍수설화), <에뉴마 엘리쉬> (바벨론의 창조설화), <욥기>와 흡사한 주제를 다룬 지혜문학서, ‘바벨론’ 신정론(神政論)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설화는 <창세기>의 문학과 신학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사해 사본. 1947년 사해(死海) 서북 해안선을 따라가는 계곡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도표 참고). 특히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당시까지 현존하던 <성경> 사본의 역사가 거의 천 년 이상 앞당겨졌다.
기념비와 비문. 도표 참고
왕실 연대기. 도표 참고.
4. <성경>에 대한 참고 사항
인물들. (1) <성경>이나 토판 등에 기록된 인물들을 흔히 가상적 인물로 치부하곤 했으나, 이들이 실존 인물이라는 역사적 증거들이 때로 발견되기도 한다: ① ‘바벨론’왕 ‘벨사살’(단 5); ② ‘길가메쉬’; ③ 예언자 ‘발람’(?); ④ ‘산헤립’; ⑤ ‘느부갓네살’; ⑥ ‘고레스’.
(2) ‘오므리’왕(왕상 16:21-28)에 대한 보다 상세한 기록의 존재. 주전 9세기 ‘이스라엘’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었음이 발견되기도 했다.
장소와 사건들. (1) ‘우르’, ‘하솔’ 등의 발굴; (2)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 (3) ‘사마리아’의 함락(주전 722년)과 ‘유다’의 멸망(주전 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