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해석의 역사
김태정 목사민 20:12약 63분 분량

1. 성경 해석학
“성경 해석학”이란 간단히 “<성경> 해석의 과학과 기술”로 규정할 수 있다. 영어 단어 “해석학”(hermeunetics)은 궁극적으로 ‘그리스’ 신(神) ‘헤르메스’(Herm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신은 여러 신들의 메시지를 인간들에게 전하며, 과학, 발명, 웅변, 연설, 저술, 및 예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2. 해석의 필요성
<성경> 해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2) 저작 배경과 현재 독자들 간에는 엄청난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3. 기본 전제
<성경> 해석의 대전제는 무엇보다도 “본문 자체에 자신의 사상을 집어넣는 것”(eisgesis)이 아니라,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 내는 것”(exegesis)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선입관(先入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므로 편견(偏見) 없는 <성경> 해석이란 있을 수 없으며, 올바른 <성경> 해석은 아무런 관점도 갖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 및 타인의 해석적 관점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이다. <성경>은 출현 이래 단 한 번도 있는 그대로 읽혀온 적은 없다. 오히려 끊임없이 “해석”(interpretation)되어 왔다. 달리 말하자면, <성경>은 끊임없이 “비평”(criticism)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성경 해석”과 “성경 비평(批評)”은 동의어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비평의 정의
그러나 대개 비평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주로 부당하게 평가하거나 흠을 잡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성경> 비평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감히 비평한다는 것이 신성모독(神性冒瀆)의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비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평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웹스터’(Webster) 영어 사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 작품들이나 문학 작품들의 아름다움과 단점들에 대해서 지적(知的)으로나 논리적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시도는 도덕적 가치들이나 과학적 가설, 그리고 그것들을 진행하는 방법들의 다양성 등을 평가하는 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구약 비평학”이란 <구약>을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는 제반 비평 방법론들을 소개하고, 각 방법의 특징과 장단점을 평가하는 학문의 한 영역으로 정의할 수 있다.
5. 해석의 역사
<구약>에 대한 이른 바 비평적 연구가 19세기 이후부터 많은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같은 시도가 근래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적어도 기독교가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아주 초보적 수준에서 일련의 비평 내지는 해석적 작업이 있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다소 임의적이긴 구분이긴 하지만, <구약> 비평의 전체 역사를 <구약>이 <정경>으로 완성되는 시기부터 현대 “구약 비평학”의 틀을 제공한 계몽주의 시대까지 대략 일곱 시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6. <구약> 정경화 이전
<구약>은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적어도 세 단계에 걸쳐서 “정경화”(正經化)가 이루어졌으며, 최종적인 종합은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1) <오경> (주전 400년)
(2) <예언서> (주전 200년)
(3) <성문서> (주후 100년)
(4) 최종적인 종합: “얌니아 종교회의”(주후 90년)
정경화 작업은 매 단계마다 필연적으로 편집자들의 창조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을 것이며, 이는 그 때마다 고대의 기초적인 자료들에 대한 논리적인 비평과 해석 작업을 시도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고대의 자료들을 하나님의 계시를 지닌 성스러운 것이라 해도, 신앙 공동체가 이를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경>에 포함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경화 작업에는 두 가지 측면, 즉 초자연적인 측면과 자연적인 측면이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초자연적인 측면이라 함은 하나님의 “감동”(inspiration)을 의미하며, 자연적인 측면이라 함은 신앙 공동체의 평가와 인정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경화 작업에서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경>이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래에 제시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편집자들이 정경화 과정에서 해당 자료를 어떻게 비평적 작업을 수행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사례 1. ‘모세’의 비극(민 20:12; 신 32:50; 신 1:37; 시 106:32).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민수기>와 <신명기>는 각기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12);
50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신 32:50-52)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신 1:37)
즉 <민수기>는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모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즉 그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나오게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신명기> 편집자들은 그 이유가 지극히 사적이고, 죄의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과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신명기>는 서론을 첨가하는 과정에서,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백성들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신 1:37). <시편>도 <신명기>의 해석에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시 106:32)
추측컨대, <신명기> 편집자의 의도인 즉은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본문의 가장 적절한 곳에서 비평적 재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례 2. ‘다윗’과 성전 건축(삼하 7:1-13; 대상 17:4; 22:8; 28:3)
‘다윗’이 ‘야훼’를 위하여 성전을 <사무엘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짓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하 7:1-13). 그러나 수 세기 후에 기록한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를 그가 전쟁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2:8);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대상 28:3)
그리고 <사무엘하>의 본문,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라는 수사적 질문이 <역대기상>에서는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대상 17:4)는 직설적인 명령문으로 바꾸어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문서>에 속하는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에 기록한 것으로서, 이 시점에서 볼 때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이 건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자명하므로, 보다 확실한 부정 명령으로 바꾸어 기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사건의 발생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덧붙이거나, 역사적 재해석을 통해서 이전의 자료들을 수정 내지는 변경시키는 편집자들의 시도는 분명 비평적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사례 3. 전승에 대한 추가 작업의 예(출 20:12; 신 5:16)
동일한 율법에 대하여 후대의 저자나 편집자들이 추가 작업을 시도한 예도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주전 8-9세기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출애굽>의 율법을 약 2-3세기 이후의 <신명기> 화자는 “복을 누리리라”는 구절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사례 4. 상충되는 계명들에 대한 해설 및 조정의 예(출 21:2-6; 레 25:39-46; 신 15:12-18)
<출애굽>은 ‘히브리’ 인들이 같은 동족을 종으로 사는 것에 대하여 허락을 하고 있습니다만(출 21:2-6), <레위기>는 이와는 정반대로 ‘히브리’ 인들은 동족 ‘히브리’ 인을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군이나 동거인처럼 취급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레 25:39-46).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출 21:2)
39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레 25:39-40)
그러나 후대의 <신명기> 화자는 의도적으로 대립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만 편집하여 새로운 계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2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신 15:12-13)
즉 <신명기>에서는 종이나 품군에 대한 언급은 삭제하고 칠년 째 자유를 주는 <출애굽>의 계명을 따르면서, 동시에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게 하라는 <레위기>의 계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들을 <구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7. 기독교 형성 이전
여기서 다루게 될 기간은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 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의 <구약>에 대한 해석적 주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 ‘랍비’ 무리와 흔히 ‘에세네파’로 알려져 있는 ‘쿰란’ 공동체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무리는 크게 아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구약> 해석에 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이성적이고, 일관성이 있으며, 납득할 수 있는 해석 방법
(2)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 답변 마련
이들 무리가 보이고 있는 해석 방법은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문자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
(2) 주해적 해석(midrashic interpretation)
(3) 종국적 해석(persher 또는 eschatological interpretation)
(4) 우화적(신비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
7.1. 문자적 해석
정의 및 의미. 문자주의란 본문의 역사적 상황이나, 비유, 상징, 과장 등과 같은 문학적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본문을 해석하는 지나친 문자주의를 의미합니다. 흔히 이를 “과도문자주의”(hyperliteralism) 또는 “자구주의”(letterism)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배경. 흔히 ‘에스라’를 율법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70여 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통해서 자신의 모국어와 종교적 유산들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당시의 공용어 ‘아람’어와 주변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히브리 성경>은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읽을 수 없는 난해한 책이 가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라’를 위시한 소수의 ‘유대’ ‘랍비’들은 율법에 대한 철저하고도 문자적인 해석과 적용이야말로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종교적인 사제 공동체로서의 극단적인 “유대주의”가 이 시기부터 비롯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사례. 초대 ‘샴마이’ 학파의 가르침 중에, “저녁에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할 때에는 모두 누워서 암송하고, 아침에는 모두 일어서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아래 <신명기>에 대한 과도한 문자주의적 해석이 낳은 결과입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흔히 “우화적 해석”(寓話的 解釋)의 대가로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 역시 <성경>의 일부 구절들, 특히 <율법서>는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대가 ‘마르틴 루터’(M. Luther) 역시 문자적 해석의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나 봅니다.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던 ‘갈릴레오’를 반박하고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하면서 그가 인용한 <시편> 19:6에 대한 해석은 우스꽝스러운 문자주의적 해석의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시 19:6). 오늘날에도 과도한 문자주의적 해석의 예는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폐해. 문자적 해석이 과도할 경우 역설적으로 신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극과 극이 통한 예가 될 것입니다(위 도표 참고). <예언서>나 <시편> 및 <계시록>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낳은 수많은 폐해들과 오류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소위 “666”이나 “천년왕국” 등에 관한 다양한 문자주의적 해석에 바탕을 둔 책들은 여전 인기 목록 상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7.2. 주해적 해석
정의 및 의미. ‘미드라쉬’(midrash)란 “해설” 또는 “보충적 설명”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해석 방법은 본문의 문자적 의미에 만족하지 않고 본문 배후에 숨은 더 깊은 의미나 기분을 이해하자는 것이며, 본문을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자는 시도입니다. 그 결과 본문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어떤 숨은 의미들에 대해서 해석적 유추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 방법은 ‘유대’인 특히 ‘유대’교 ‘랍비’나 ‘바리새’인들의 해석 방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다양한 해석적 방법론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해석적 의역: 긴 본문 단위에 대한 해석적 의역은 본문으로부터 종교적, 윤리적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 자체를 인용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창세기 외경>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 22:17)
그리고 그 날 밤에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온 집에 고통을 주기 위해 고통의 영과 악령을 보내셨다. 그와 그의 온 가족이 고통을 당했고, 그리하여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그녀를 알지도 못했다(창세기 외경 20:16-17)
<창세기 외경>이 의도하는 바는, <창세기> 본문의 상황을 보다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또 ‘사래’의 고결함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통해서 보호되었음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E. Peterson)의 <메시지 Message>도 오늘날의 해석적 의역의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2) 해석적 보충: 본문 자체가 한 사건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을 때, 보충 자료를 만들어서 그 사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보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예컨대,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집트’에서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 사전에 예고하거나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만, <창세기 외경>은 ‘아브라함’이 꿈을 통하여 위험을 미리 알았고, 그 결과 5년 간 아내를 ‘이집트’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둘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지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율법의 재해석: <탈무드>나 <탈굼> 등이 대표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해석적 보충 방법이 본문 자체에 대한 논리적 이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면, 흔히 <다메섹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율법의 재해석은 본문의 구체적인 조항들을 공동체의 당대의 상황에 비추어 보다 쉽게 교정한 채로 적용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민수기> 30장은 여자가 ‘야훼’ 앞에서 서약을 했을 경우 그녀의 아버지나 남편이 이를 파기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다메섹 법칙>은 이에 대하여 남편과 아비들로 하여금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서약을 파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성경> 본문과 윤리적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4) 적용을 위한 본문 인용: 이 역시 <다메섹 법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종교적, 윤리적 교훈을 위해서 <성경> 본문을 원래 문맥과는 상관없이 인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다메섹 법칙> 6:11-13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활동하던 분파적인 사제들을 제거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말라기> 1:10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목적. 위에서 보듯이 주해적 해석 방법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훈이나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석의 대상. <구약>의 전 본문이 이러한 해석적 작업의 대상이 되었으며, 해석적 주체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탈굼>(Targum): <탈굼>은 <히브리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본문의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석적 의역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 번역자들의 신학사상 뿐만 아니라, 이들이 본문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해와 교훈적인 적용을 위해서 유추해 낸 해석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2) <탈무드>(Talmud): “공부” 또는 “교훈”을 의미하는 이 책은 주전 250-주후 550년 사이에 발전된 구전 율법을 성문화 한 방대한 편찬물로서, 주된 내용은 <히브리 성경>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랍비들의 교훈들이 철저하게 <히브리 성경>에 근거하고 있음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경> 본문을 인용하거나 해설하고 있습니다.
(3) <미드라쉬>(Midrash): <탈무드>가 율법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책은 율법 외의 <히브리 성경>에 대한 종교적 재해석의 여러 전승들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편찬 시기는 주후 150-1300년 기간 동안입니다. <탈무드>이든 <미드라쉬>이든 모두 공통적으로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할라카’(halakah) 즉 율법 및 윤리적 삶의 교훈을 강조하는 부분과, 둘째 ‘하가다’(haggadah) 율법 외의 본문들에 대한 풀이와 그 속에 든 윤리적, 신앙적 교훈들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 주해적 해석의 대가로 예수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네 복음서에서 읽을 수 있는 바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의 주해적 해석에 한 차원을 더하거나, 또는 수정을 가미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혼에 관한 새로운 주해적 해석이나 ‘만나’에 관한 해석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요 6:32)
폐해. 과도한 주해는 결국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7.3. 종국적 해석
정의 및 의미. 이는 주해적 해석의 특수한 한 유형으로서, 대전제는 <구약>의 예언들이 당대에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종말론적 시대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메시야 시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한 무리(공동체)로 간주하며, 자신들이 종말의 목격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을 하는 해석자의 책임은 <성경>의 예언자적 선포와 당대적 성취를 현명하게 연결 짓는 일이라고 간주했다.
해석의 대상. <구약>의 대부분 특히 <예언서>가 해석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해석의 주체. 흔히 ‘에세네파’로 알려진 ‘쿰란’공동체가 종말론적 해석의 대표 주자였다. 이 공동체의 인식에 따르면, 세상의 최종 정복자는 ‘기딤’인 (즉 로마인)으로서 아래 <하박국> 구절을 ‘기딤’ 인에 의한 세상의 종말로 이해하고 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합 1:6)
폐해. 교리일변도적인 해석으로 본문의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는 자의적이고도 주관적인 해석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수년전 대한민국뿐 만 아니라, 구미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던 소위 “다미 선교회”가 끼친 폐해는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7.4. 우화적 해석
정의 및 의미. 본문의 문자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의도한 핵심 사상을 찾아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본문의 이면적(裏面的이) 의미들을 자유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이러한 해석 방법은 문자적 해석과는 정반대의 극단에 서있는 해석 방법으로서,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까지 <성경>의 해석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쳐왔던 해석적 시도입니다. 오늘날 소위 영적(신령한> 설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화적 해석이 대부분입니다.
우화란 일종의 확장된 은유로서,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든 우화도 있기는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화적 해석은 저자가 명시적으로 우화를 쓰고 있다고 밝힌다면 그 해석에 별 어려움은 없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숨은 뜻(만일 있다면)을 찾아내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해석의 대상. 우화적 해석 역시 <구약>의 대부분 특히 <예언서>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아래 세 가지 경우를 대표적인 우화적 해석의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경우:
1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 54:1-3)
즉 본문은 당대의 일반 청중들이 이면적 해석을 해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신비한 용어들을 등장시키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당대의 청중들에게 “잉태”나 “너”나 “여인” 등이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명백백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구절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우화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2) ‘로고스’에 대한 해석: 우화적 해석의 대가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가 쓴 <창세기 주석>은 우화적 해석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인데, 특히 그는 이곳에서 ‘로고스’에 대한 우화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3)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례전에 대한 해석: 기독교회의 성례전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해석을 시도한 결과입니다.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대부분의 조직신학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밀라드 J. 에릭슨. <복음주의 조직신학(하)>. 신경수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서울 1995.
배경. 해석의 배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설적으로 ‘유대’적이 아니라 ‘희랍’적입니다. ‘희랍’인들은 두 개의 고귀한 세계관 내지는 사상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호머>나 <헤시오드> 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다신론(多神論)적 세계관으로서 비록 공상적이며, 괴기하고, 불합리하며, 비도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심성과 전통입니다. 다른 하나는 ‘탈레스’, ‘헤르도투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이어지는 사변적이고 변증적인 철학적 전통입니다. 이 둘은 ‘희랍’인들의 사고 속에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호긴장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공위성 발사 시험 전에 돼지 머리 등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희랍’인들의 이러한 이중적인 사고 양식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뿐 만 아니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까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희랍’적 세계관과 <성경>과의 만남 속에서 태동한 것이 곧 우화적 해석으로서, 이는 결국 ‘희랍’적 사고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해석자의 취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두 사람은 우화적 해석의 창시자로 꼽을 만 합니다:
(1)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 주전 20-주후 54년): <창세기>에 관한 그의 주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Colson, F. H. & Whitaker, G. H. Philo.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1929.
그는 논리적으로나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경우에는 언제나 우화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그가 <구약>을 상징들의 집합으로 보려했기 때문입니다. ‘필로’는 후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우화적 해석 학파를 이렇게 불렀음)의 시조가 됩니다.
(2) ‘유대’인 ‘아리스토볼러스’(Aristobulus, 주전 160년): 그는 희랍 철학의 기원을 <모세의 율법>에서 찾았으며, <오경>에 대하여 우화적 해석을 도입함으로써 희랍철학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7.5. 평가 및 고찰
초기 유대교회가 시도한 <성경> 해석 방법은 본문에 대한 논리적이거나 분석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개인이나 공동체를 위한 기능적이고도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해석 방법이 당대의 교훈을 위한 목적을 지닌 것이었던 만큼, “무리한 본문 인용”(proof-text)의 오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오류는 결코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의미에 있어서의 비평적 관심을 보인 해석적 방법이 있다면, 주해적 해석으로서 율법에 대한 재해석이나 해석적 보충 방법들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논리적이며 비평적 해석 방법들을 보기 위해서는 이들 유대인들은 무려 2천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8. 초대교회 시대
초대교회 시대라 함은 초대교회 탄생 이후 주후 400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탄생 직전까지의 모든 기독교회 내에서 행해왔던 해석 방법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의 <성경> 해석 방법은 그것이 해석적 합리성을 지녔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성경> 해석사에 지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 이 기간의 성경 해석이 <신약> 27권을 형성하게 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약>을 공부하면서 <신약>에서 인용하고 있는 모든 <구약>의 구절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 또는 기타 <신약> 기자들의 해석 방법이 어떠한 유형의 해석 방법에 속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약> 성도들도 같은 방식으로 <구약>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비적 질문: 나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좁은 의미로 초대교회 시대는 주후 100-200년 사이의 기간으로서, 당시 교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으로서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소위 “변방의 무리”들이었습니다. 다소의 예외도 없지는 않습니다: 의사 ‘누가’; 사도 ‘바울’; 예수님.
따라서 이들 무리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해석 체계를 개발했다기보다는 당시 ‘유대’ ‘랍비’의 종교적 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에서의 <구약> 해석도 여전히 기존의 ‘유대’적 전통을 따랐다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1) 문자적 해석
(2) 주해적 해석
(3) 우화적 해석
(4) 종국적 해석
그런데 이 기간 동안 한 가지 독특한 해석을 추가하고 있었는데, 소위 “그리스도론적 해석”(Christological Interpretation) 또는 “메시아적 해석”(Messianic Interpretation)으로 부르는 것으로서, 이는 실은 “우화적 해석”을 더욱 확장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8.1. 문자적 해석
초대교회의 문자주의는 ‘유대’교로부터 유래한 것이긴 하지만, 소위 극단적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본문의 문법적이고도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 나름대로의 독단적인 해석 체계를 구축해 갔다고 하겠습니다. 최초의 해석 학파는 ‘시리아’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학계는 이들을 “안디옥 학파”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학파의 중심인물들로서, ‘루시안’(Lucian), ‘도로데우스’(Dorotheus), ‘디오도루스’(Diodorus), 그리고 ‘크리소스톰’(Chrysostom) 등과 같은 저명한 교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후에 ‘라틴’어 번역판 <벌게이트>(Vulgate)를 출간한 ‘제롬’(Jerome)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학파는 유대교의 과도한 “문자주의”(lettersim)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화주의”를 동시에 배격하는 독자적인 해석 체계를 형성했다 할 것입니다. 이들에 의하면 문자적 의미란 “순수한 문자적 의미”(plain-literal)와 “비유적 문자적 의미”(figurative-literal)로 구분되며, 전자(前者)는 본문 속에서 언어의 비유 등과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직선적인 산문체의 문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디옥 학파의 해석 체계는 오늘날의 해석적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합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여호와의 눈이 그대 위에 있노라”와 같은 구절을 비유적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했다는 말입니다.
8.2. 주해적 해석
주해적 해석 방법에 대해서는 ‘유대’교의 해석 방법 중의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특히 초대교회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해석적 방법론은 흔히 ‘칼 바호멜’(qal vahomer) 논법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하위 개념이 상위 개념을 지배한다”는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그 기원에 있어서는 ‘유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 거의 모든 문화와 사고의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일종의 “귀납적 유추”에 해당합니다. 즉 비가시적이거나 영적인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가시적이고도 육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4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4-12)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 12:9)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6:10-12)
결론적으로 ‘칼 바호멜’(qal vahomer) 원리는 과학적인 외삽(extrapolation)입니다. 제한된 영역에서 관찰하는 일련의 현상들로부터, “법칙의 동일성”(uniformity)에 입각하여, 관찰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에서의 현상을 예측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예컨대, “여호와의 눈이 그대 위에 있노라”와 같은 구절을 비유적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지혜로운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1-3)
8.3. 우화적 해석
‘유대’인으로서의 사도 ‘바울’은 말할 것도 없이 우화적 해석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신약>의 곳곳에서 교회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명할 때, <구약>으로부터 사건이나 인물들을 통하여 우화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두 가지 대표적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 1. <갈라디아> 4:21-27
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갈 4:21-27)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이 우화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고 미리 밝히고 있습니다. <구약>의 두 곳으로부터 그 예를 취하고 있는데, <창세기>에서 취한 ‘사래’와 ‘하갈’에 대한 우화는 자신의 독창적인 해석이지만, <이사야> 54:1-3에서 취하고 있는 예는 선지자 ‘이사야’가 처음부터 하나의 우화로서 당대의 청중들에게 제시한 것을, ‘바울’이 다시 한 번 우화적 해석을 더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사야’는 원래 이 여인을 “시온교회”로 비유한 것이지 “기독교회”를 비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 2. <에베소서> 5:31-33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1-33)
이곳에서 사도의 우화적 해석은 이중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결혼에 대한 우화적 해석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8.4. 종국적 해석
<신약>의 기자들은 ‘쿰란’ 공동체나 ‘유대’ ‘랍비’들처럼 여러 곳에서 <구약>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언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 시대의 ‘메시아’로 보았던 만큼, 이러한 해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 1: <사도행전> 2:17-20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17-20)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시대를 예언의 성취로 이해하면서, 그의 청중들에게 <요엘서>(욜 2:28-32)의 예언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 예 2: <히브리서> 8:8-11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히 8:8-11)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하고 있는 <구약>은 그 유명한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 관한 부분입니다(렘 31:31-33).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이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 본문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 3: <고린도 전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4) 예 4: <히브리서>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6)
8-5. 그리스도론적 해석
초대교회는 ‘유대’적 <성경> 해석의 전통을 답습하는 것 외에 가장 독특한 해석 체계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앞서 언급한 바처럼, “그리스도론적 해석” 또는 “메시아적 해석”이 그것입니다. 이는 넓게는 “주해적 해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으나, 좁게는 <구약>의 사건이나 인물이 당대의 ‘그리스도’에 이르러 성취되었다는 대전제 하에서 볼 때 “종말론적 해석”과도 일맥상통하고 있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론적 해석”의 백미(白眉)는 역시 <히브리서>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은 <시편>이나 <레위기>에서 그리고 있는 인물이나 제사제도, 희생 제물, 제사장 등에 관한 일체의 해석을 ‘그리스도’와 그에 의한 제사장 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히 1:4-13; 2:6-7, 12-13; 5:5-6; 7:1-3; 8:8-13; 9; 10:5-18; 11:26; 12:24). 이 외에도 <사도행전> 속에서 사도들이나(행 1:20; 2:25-28; 2:34-35; 3:18-25; 4:25-26; 7:48-53; 8:32-36; 13:23, 33, 35) <복음서>에서 예수님 자신도 동일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눅 4:16-21; 마 1:22-23; 2:2, 6, 15, 17-18).
이처럼 <신약>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리스도론적 해석”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문학비평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해석의 진수(眞髓)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을 위해 무리하게 <성경> 본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과연 온당하고 타당한 것인가? 이처럼 무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이는 <신약> 역시 <구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해석이 기독교 <정경>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이처럼 <구약>을 자의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나 또는 “종말론적”으로 해석했다 해서 오늘의 성도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회의 <구약> 해석은 반드시 <신약>이 허용하는 해석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등장하고 있는 사건이나, 인물이나, 어떤 현상들이 아무리 ‘그리스도’를 드러내 주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신약>에서 이들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본문이 의미하는 문자적 해석의 범위를 결코 넘어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컨대, <창세기>의 ‘요셉’이나 ‘이삭’은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시(豫示)하는 인물로 그리거나, <출애굽>의 “홍해 도하(渡河)”나 <여호수아>의 “요단 도강(渡江)” 등을 침례를 예시하는 사건 등으로 그릴 수는 있겠으나, 이는 모두 해석의 정도(正道)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구약 학자들은 말합니다. “구약이 신약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신약 학자나 기독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오늘날 교회가 <구약>을 해석할 때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약속과 성취”의 틀 속에서 해석하려는 유혹과 강박관넘에서 벗어나야 함을 명시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 서점에서 “구속적 성경해석”의 부제(副題)가 붙은 책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구약>은 어디까지나 <구약> 그 자체의 틀 속에서 우선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약>은 나름대로의 배경과 문학적인 틀과 사회문화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화자들은 <신약>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올바른 <구약> 해석을 위한 예비적 자세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9. 중세 시대
흔히 암흑시대로 불리는 주후 500-1500년 동안의 중세 시대는 <성경> 해석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기간은 “로마 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의 시대였으며, 또한 “맛소라 학파”로 불리는 일단의 유대인 학자들이 그 유명한 <맛소라 사본; the Masoretic Text>을 집대성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들 두 집단은 자연스럽게 두 부류의 해석적 전통을 형성하게 되는데, 우선 전자(前者)가 보여주고 있는 해석적 전통은 기존의 “우화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역사/문법적인 문자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해석적 특징을 개발해 내고 있는데 소위 “예표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후자(後者)로 대표되는 중세 ‘유대’인들의 해석은 전통적인 “주해적 해석” 위에, 보다 발전된 “문자적 해석” 방법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언어학적 연구나 철학적 설명 그리고 교훈적 주제 등이 문자적 해석 방법 속에 포함된 것이 새롭다면 새롭다 할 것입니다.
9-1. 우화적 해석
중세의 유일한 해석 방법이 “우화적 해석”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는 ‘로마 카톨릭’ 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해석적 방법이었음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화적 해석”의 철학적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주의”(Scholaticism)와 ‘플라톤’ 철학의 요소를 지닌 “신비주의”(Mysticism)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플라톤주의”가 “이원론적 세계관”을 보이고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은 다소 완화된 “이원론적 세계관”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이 두 사상이 성찬식 등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추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교회 교부들의 “우화적 해석” 체계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우화적 해석”은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원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희랍’인들의 전통을 모방한 것에서 비롯되어, 이것이 기독교로 전수되고, 이후 ‘안디옥’의 “시리아 학파”(안디옥 학파)와 중세기의 “빅토리아 학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독교회 내에서 종교개혁 시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해석 체계이기도 합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로 이 해석 원리를 전수해 주었던 대표적인 교부들의 해석적 원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그는 <성경> 본문 속에는 아래와 같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 역사적 의미: 구약의 사건은 역사적 기록이다.
(2) 교리적 의미: <성경>에는 명맥한 도덕적, 종교적, 신학적 가르침이 있다.
(3) 예언적 의미: 예언과 모형으로서의 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4) 철학적 의미: 공동체가 직면한 제반 실존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대안을 담고 있다.
(5) 신비적 의미: 사건이나 인물이 상징하는 보다 깊은 영적, 도덕적, 종교적 진리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성경> 해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2) 오리겐(Origen)
‘오리겐’ 역시 ‘클레멘트’의 원리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는 문자주의적 해석의 유치함을 피해, 모든 것을 상징적, 은유적, 또는 시적인 문자로 취급하려는 경지에 이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또한 <신약>의 근원은 <구약>에 있음을 보여주고, 이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 내에서 불합리한 것이나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나 배제하여(마치 계몽시대 이후 이신론자나 자유주의자처럼), <성경>을 철학적 지성인에서 납득이 가도록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대 원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문자적 의미: 이는 예비적 단계에 불과하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사람의 육체에 해당하며, 그 도덕적 의미나 우화적 의미에 해당하는 영혼은 아니다. 문자주의는 우리를 그대로 유대주의에 남게 한다. 문자적 해석은 평신도를 위한 것이다.
(2) 그리스도가 <성경>의 내적 원리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3) 참된 주석은 영적 주석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대한 우화로서, 그 세부적인 것들이 모두 상징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엄청난 신비이다.
(4) <구약>은 <신약>을 위한 준비이다: <구약>이 <신약>을 위한 준비라면, <신약>은 <구약>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따라서 감추어진 <신약>을 표면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기독교 주석의 기능이다. 이것이 “모형론적 해석”이다. 또한 <신약>이 <구약>을 성취한 것이라면, 이제 <구약>은 제거된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일관성과 상이성이다. 일관성이라 함은 <구약>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상이성이라 함은 <구약>은 이제 때가 지났다는 의미이다.
3) 제롬(Jerome)
<구약>의 ‘라틴’어 번역본 <Vulgate>를 편찬한 ‘제롬’은 원래는 극단적인 우화주의자로 출발하였으나, 훗날 “안디옥 학파”의 문자주의와 절충을 꾀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가 <Vulgate>를 편찬할 즈음, <칠십인 역>에 기초해서 만든 당시의 라틴어 번역본들을 참고하지 않고,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본문들을 중심으로 했으며, 오리겐의 <헥사플라>를 참고하여, <히브리어 성경>과 <칠십인 역>의 차이를 비교 연구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바람직한 문자주의적 해석이며, 오늘날 소위 “본문 비평”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다.
4) 어거스틴(Augstine)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어거스틴’마저 우화적 해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화적 해석”에 대한 <성경>의 근거를 <고린도후서>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이에 따라 그는 “영적 해석” 또는 “우화적 해석”이 <성경>의 진의를 밝히는 것이며, “문자적 해석”은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 이야기”(눅 10:25-37)에 대한 그의 설교나 <신의 도성>에서 <창세기> 1-2장에 대한 해석, 그리고 “노아 홍수” 이전의 인류의 장수(長壽)에 관한 그의 설명들이 모두 소위 “영적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의 영적 해석의 기본 원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석가의 내적 정신은 그의 주석 기술만큼 중요하다.
(2) 문자적 및 역사적 해석이 그 자체로서 목적은 아니지만, 이런 해석들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부분을 다 우화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 <성경>은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만큼 우화적 해석은 타당하다.
(4) <성경>의 숫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수에 대한 진리는 우화적 해석을 통해서 얻어진다.
(5) <구약>은 기독교적 문서이다.
(6) <성경> 강해자의 임무는 <성경>에서 의미를 취해내는 것이지, <성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7) 어느 구절이든 그 한 구절만을 독립적으로 떼어놓고 연구할 수는 없다.
(8) <성경> 이해를 위한 제반 학문적 연구•노력을 성령님의 조명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즉 유능한 해석자는 히브리어, 희랍어, 지리, 역사, 음악, 연대, 수리, 논리학, 자연과학, 고대 철학 등을 알아야 한다.
(9) 불분명한 구절은 보다 명료한 구절에 따라 해석하라.
(10) 어느 구절이든 다른 구절과 갈등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시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일부다처제는 일부일처제 이전에 있던 제도로서 둘 사이의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처럼 복잡한 원리들을 결국 한 두 가지로 요약해 보자면 이러합니다. 즉 일차적으로 “문자적인 해석”을 취하되, 다음 단계로 반드시 보다 깊은 “영적 해석”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9-2. 예표론적 해석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장 독특한 해석 방법 중의 하나가 “예표론적 해석” 방법이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방법은 따지고 보면 우화적 해석의 단순한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약>의 사건들이나 인물들이 <신약>의 그것들을 예표(豫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 방법의 배경에는 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합리화시키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하겠습니다. 예컨대, <출애굽>의 “유월절”, 광야에서의 ‘만나’, ‘멜기세댁’의 빵과 포도주(창 14:18), 그리고 ‘엘리야’의 기름과 빵 조각 등이 모두 “로마 카톨릭 교회”가 실시하는 성례전의 예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9-3. 중세 유대인들의 해석
흔히 “마소라 학파”로 대표되는 중세 ‘유대’인 학자들의 <구약> 해석 방법은 특별히 <성경> 본문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마소라 사본>의 출현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전통적인 유대의 “주해적 해석”이 당대를 위한 교훈과 철학적 사상을 추가시킨 채 발전되어 갔습니다. 요약하자면 중세 ‘유대’인들의 <구약> 해석에는 (1) 언어학적 연구, (2) 철학적 설명, 그리고 (3) 교훈적 주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이형원 교수는 중세 유대인들의 대표적 해석 방법들을 지역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형원, 34-37쪽.
이중에서 첫 번째 방법은 객관성을 지닌 해석이며, 나머지 둘은 비교적 주관성이 강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는 해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언어학적 연구 결과가 <성경>의 “본문비평”(本文批評)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해야 할 것이며, 오늘날까지 모든 “성경비평” 방법에 앞서는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다음 장은 본문비평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0. 종교개혁 시대
천년을 이어오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세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성경> 해석 상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릇 모든 역사적 사건이 다 그러하듯이 종교개혁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요인들 중에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교회적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는데, <성경> 해석과 관련해서 가장 관심을 끄는 요인은 지적이고 사상적인 배경을 들 수 있는 바,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신비주의(Mysticism)
(2) 명목주의(Nominalism)
(3) 인문주의(Humanism)
첫째, 중세의 “스콜라주의”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 이성, 그리고 합리를 바탕으로 신앙과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려 한 것에 반해서, “신비주의”는 정 반대의 극단에서 그 출발점을 삼고 있습니다. 즉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 즉 개인의 신비적 체험에 의해서 드러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체험을 촉진하기 위해서 읽는 수단이 됩니다. “신비주의자”에게 중요한 책 중의 하나는 <아가서>로서,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육체적 기쁨은 하나님과 성도 간의 신비한 영적 사랑에 대한 은유이자, 상징입니다.
“신비주의”에서 강조하는 개인적인 체험이 중요시 되면 될수록, 기존의 교회 조직과 체계 내에서 행하고 있는 일련의 종교 행습들이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례전”이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인데, 교회는 이 의식을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유일한 통로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평신도 설교나, 성만찬, 그리고 성상(聖像) 배격 등과 같은 문제는 교회의 권위에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 단순한 어떤 영적인 황홀경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유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세의 “신비주의”가 강조했던바 영적 체험은 는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관계, 청빈(淸貧), 겸손, 순종, 그리고 경건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수도원 중심의 경건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당시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데, 14-15세기 동안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두 집단으로 독일의 “하나님의 친구들”과 ‘네델란드’의 “공동생활 형제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집단은 ‘마틴 루터’(M. Luther)나 ‘에라스무스’(Erasmus) 등의 학자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 고전으로 꼽히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켐피스’도 이 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둘째, 종교개혁을 이끈 두 번째 지적•사상적 배경으로 “실재론”(Realism)과 “명목론”(Nominalism) 간의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논쟁의 철학적 기원은 멀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질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존재에 관한 ‘플라톤’의 입장은 극단적 이원론으로서, 모든 존재는 “개체”(형상)와 그 존재를 존재되게 하는 어떤 본질적인 “보편자”(“실재” 또는 “이데아”)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존재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보다 완화된 이원론으로서, “실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실재”(substance) 또는 “부동의 동자”(the unmoving mover)는 “개체”(accident) 속에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을 받아들여, 모든 존재를 존재되게 하는 어떤 보편적인 개념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들을 통칭 “실재론자”로 부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안셀름’(Anselm)이나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등이 있습니다. “실재론”의 철학이 신학에 도입되면, “삼위일체론”이나 “주의 만찬”에 대한 소위 “화체설”(Transsubstantiation)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화체설”은 1215년 제 4차 라테란 회의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로 채택되기에 이릅니다.
이에 반해 “명목론”은 보편자란 단지 명목적인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 뿐이지, 배후의 어떤 실체의 어떤 일치 같은 것이라고는 없다는 것입니다. “명목론”을 “삼위일체론”에 적용하면, 성부와 성령과 성자는 각기 세 가지 개별적인 인격이지 세 위의 어떤 본질적인 일체 같은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화체설”에 대한 “명목론”의 반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목론”의 대표주자로서 ‘윌리엄 오컴’(W. Ocaam)을 들 수 있습니다.
논쟁의 초기에는 “실재론”이 우세하여 “명목론”은 이단으로 정죄받기도 했으나, 14세기 ‘오컴’ 등의 노력으로 “실재론”에 바탕을 둔 “스콜라 신학”은 그 권위를 잃게 됩니다. ‘오컴’에 의하면 신앙과 이성은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서, 하나님의 존재 등과 같은 문제는 오로지 믿음과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루터’가 받은 교육이 ‘오컴’의 철학 사상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셋째, 종교개혁을 이끈 세 번째 사상운동은 “인문주의”입니다. “인문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이태리의 방종적이고도, 회의적(懷疑的)인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만, 독일에서 이 운동은 점차 신앙적이고도, 고전에 대한 연구로 발전해 갔습니다. “인문주의”에서의 강조점은 현세적이며,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 희랍 고전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통한 “스콜라 신학”의 비판, 새로운 <성경> 번역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성경> 번역 작업이 전개됨에 따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전승들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빈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해석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자들은 ‘루터’와 ‘칼빈’(J. Calvin)으로서, 이 두 사람의 해석적 원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0-1. 루터의 해석 원리
1) 심리적 원리(the psychological principle)
“믿음과 조명은 해석자에게 인격적, 영적 전제 조건이다. 믿는 자는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하며, 그 인도하심에 의존해야 한다. 이성(理性)에 따라 <성경>을 비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부지런히 기도로 묵상하고 그 의미를 구해야 한다. <성경>이 영감 받았다는 점에서 해석자의 영적 접근을 요구한다. 우리는 <성경>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2) 권위적 원리(the authority principle)
“<성경>은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최상이며, 최종적인 권위를 지닌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권위 위에 <성경>이 있다. <성경>의 교훈은 취소하거나 변질시킬 수 없으며, 사람이나 문헌이나 간에 어떠한 교회의 권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3) 문자적 원리(the literal principle)
“중세 해석자들의 소위 사중적(四重的) 체계(문화적, 우화적, 유추적, 도덕적) 대신에 문자적 원리를 고수한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만이 신앙과 기독교 신학의 총체적인 요소이다. 우화적 해석은 추잡하고, 찌꺼기이며, 낡아 빠진 넝마조각이며, <성경>을 우화화 하는 행위는 음녀나 원숭이 장난과 같다.”
그는 또한 원어(原語)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시 계시는 희랍어나 히브리어 <성경>에서 되찾기 전까지는 진실로 되찾을 수 없다. 어떤 설교자가 원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없어, 자기가 쌓은 덕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그는 불가결의 요소인 원어의 지식이 없는 만큼, 이단에 대항해서 <성경>을 주석하거나 <성경>의 교훈을 주장할 수 없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해석자는 문법과 <성경> 각 책의 저자의 시대와 환경과 상황 그리고 구절의 문맥에 유의해야 한다.”
4) 성경해석의 충분(유자격) 원리(the sufficiency principle)
“경건하고 유능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로마 카톨릭’이 제안하는 해석에 대한 공식적인 지시가 필요 없이 <성경>의 참 뜻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명료한 책이다(<성경>의 명료성). <성경>은 그 자체의 부족함이 없는 하나의 세계로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 즉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은 너무 어려워서 교회의 교리적 사역만이 <성경>의 진의를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터’의 “유자격 원리”의 또 다른 근거는 “만인 제사장 원리”입니다: “즉 모든 신자는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조명에 따라, 명료한 <성경>의 참 뜻을 밝혀낼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석은 대부분 교부들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교부들의 연구에 대한 ‘루터’의 반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경을 구하건만 에크(Eck)는 나에게 교부들을 소개한다. 나는 태양을 구하건만 그는 나에게 자기의 등불을 보여주고 있다. “그대의 성경적인 증거가 어디 있는가?”하고 물으니 엉뚱하게도 <암브로스>와 <씨릴>의 말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교부들을 깍듯이 존경하지만 성경의 권위를 더 좋아한다.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결론은 소위 신앙의 유추이다. 즉 <성경>은 그 자체로서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어떤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양상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5) 기독론적 원리(the Christological principle)
이와 관련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목표는 아니다. 모든 해석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다. 모든 <성경> 책이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있느냐의 여부를 알아본다면 그것이 <성경>의 책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당신이 훌륭하고도 정확한 해석을 하려면 그리스도를 모셔라. 그리스도야말로 만물이 관심을 두는 대상이다.”
하지만 ‘루터’는 바로 이 점에서 일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교리 수호를 위하여 채택한 “우화적 해석”에는 반대했지만, <구약>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해석”은 철저하게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부들의 “우화적 해석”과 자신의 “그리스도론적 해석”은 그 방법론에 있어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이처럼 ‘루터’가 처한 모순은 당시 신학적 입장의 당연한 결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는 원리상으로는 “우화적 해석”과는 절교를 선언했으며, 실천적으로도 이를 거절했으나, 솔직히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6) 율법 대 복음의 원리(the law-gospel principle)
‘루터’는 “갈라디아 교회”의 이단이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도 상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갈라디아’ 인들의 구원관은 (1) 옛 언약인 할례를 받아야 하며, 동시에 (2) 세 언약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신득의(以信得義) 만이 “갈라디아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단을 유일한 체계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해석자는 <성경> 속에서 율법과 복음을 신중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여하한 타협이나 연합도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을 하나의 새로운 율법으로 가르친다든지, 또는 복음이 율법을 폐기시켰다든지 하는 식의 가르침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와 불완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 짐 아래 무릎을 꿇도록 하나,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결국 ‘루터’의 <성경> 해석의 원리를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오직 믿음으로”(sola fidei)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입니다.
10-2. 칼빈의 해석 원리
‘루터’가 <성경> 해석의 원리를 제공하고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면, ‘칼빈’은 이를 실천에 옮겨 구체화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볼 때, ‘루터’보다는 ‘칼빈’이 훨씬 뛰어나다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교회 역사상 ‘칼빈’만큼 <성경>을 과학적으로 유능하게 주석한 이도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만큼 신학에 큰 영향력을 끼친 책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성경> 해석은 ‘루터’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칼빈’의 해석 원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성령님의 조명에 대한 강조
(2) 우화적 해석의 배격
(3) 문법적, 언어학적, 문맥적 해석에 대한 강조
10-3. 평가
‘루터’나 ‘칼빈’이 <성경> 해석사에 끼친 영향력은 대략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두 사람 모두 <성경> 해석에 있어 진일보 하는 개혁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통적 방법들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2) 해석의 기본 목적이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높이는 것이었다. 즉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가미한 다음 전통적인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해석과 비교를 시도하였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시도한 역사적, 문법적 해석 방법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교회를 위한 본문의 적용은 현대 <성경 해석학>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11. 종교개혁 이후
종교개혁 이후라 함은 종교개혁 시기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를 이릅니다. 이 기간 동안의 <성경>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해석
(2) 개신교 정통주의의 성서 영감설에 입각한 해석
(3) 비 신학자들의 비평적 해석
11-1.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해석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해석에 대항하여 기존의 해석 체계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즉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중심적, 문자적, 그리스도론적 해석”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존의 교리적 해석 즉 “예표론적 해석” 체계를 강화함과 동시에, “트렌트 종교회의”(1546년)에서 교회의 규범을 법적인 도덕적인 면에서 <벌게이트>의 본문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경> 해석에 대한 입장은 변함없이 발전되어, “제 1차 바티칸 종교회의”(1870년)에서는 “교황무오설”을 선포하는 극단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로써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는 오래 동안 교회 안에서 금기시 되고 억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11-2. 개신교의 정통주의적 해석
종교개혁 이후 여러 교단들이 형성되면서 교단들의 <성경> 해석 방법들은 개혁적 <성경> 해석을 강조하기 보다는 교리적 색채를 더 많이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중심적, 성례전 중심적 교리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영감설”을 내놓은 것입니다. “영감설”이 교조적이고 극단적인 양상을 드러내게 되면, <성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기록까지도 영감 받았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소위 <성경>의 “축자영감설”이나 “기계적 영감설” 들이 모두 이에 속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기록자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술하시는 그대로 한 자 한 자를 정확무오하게 받아 적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 <성경> 해석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경>의 원어나 문법,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자유스럽게,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던 <성경> 해석이 급기야 교리적인 차원에서 금기시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정통주의적 <성경> 영감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역설적으로 학문적인 <성경> 연구를 오랫동안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1-3. 비평적 해석
종교개혁 이후 <구약> 해석 방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단의 학자들은 전통적인 신학자들이 아니라 비 신학자들로서 이들은 보다 자유스럽게, 합리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인 접근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들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새로운 해석적 원리를 제공했다기보다는, 이미 당대에 서서히 일기 시작했던 과학적 합리론의 영향으로 <성경> 자체를 기능적이고도 교훈적인 측면, 즉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성경> 자체의 역사적인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utius: 1583-1645)
그는 <아가서>가 ‘솔로몬’의 저작이며, 그를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이 책을 우화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 대한 ‘유대’인들의 “우화적 해석”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사랑으로, 그리고 기독교회의 “우화적 해석”은 교회와 그리스도 간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단순한 남녀 간의 연애 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도서>에 관해서는 전도자를 저자가 아닌 편집자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을 행복에 관한 여러 현인들의 견해를 모아놓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욥>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도, 포로기 이전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으며, <에스더>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2)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3-1679)
‘홉스’ 역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성경>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경 비평적인 관점에서 주목할 만 한 결과를 남겼습니다. 그는 <오경>의 저자와 저작 시기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했는데, 예로써, ‘모세’가 <신명기>의 마지막 여섯 절(신 34:7-12)과 <창세기> 12:6을 기록했을 리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신명기> 34:7-12에서는 ‘모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며, <창세기> 12:6의 경우 등장하고 있는 지명들이 ‘모세’ 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이름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오경>은 전체적으로 ‘모세’ 사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나 <사사기> 등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견해를 부인하고, 모두 포로기 이후의 작품으로 평가했습니다.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수 4:9)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삿 18:30)
마찬가지로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및 <에스라> 등도 모두 포로기 이후의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한편 <에스겔>이나 <야고보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욥’은 역사적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겔 14:14; 약 5:11), <욥기> 자체는 역사라기보다는 악인과 의인의 역설적인 삶에 관한 도덕적 지침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바룩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범신론”의 시조로 잘 알려져 있는 ‘스피노자’ 역시 <성경>의 역사적 연구에 치중하였습니다. 즉 그의 관심사는 <성경> 각 책의 인물 소개, 저자, 성품, 기록 목적, 경위, 기록 시기, 수신자, 언어 연구에 치중하고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 <성경개론>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그는 <구약>의 여러 책들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답을 제공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따르면, <오경>은 ‘모세’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 역시 ‘여호수아’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창세기>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12권의 책은 ‘에스라’ 한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저작 시기에 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4) 쟝 아스트럭(Jean Astruc: 1684-1766)
프랑스의 의과대학 교수였던 그는 <창세기> 연구를 통해서 <오경>에 대한 현대적 “자료비평” 시대를 연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오경>의 구성과 관련해서 세 가지 현상의 논리적인 설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1) <창세기>의 많은 부분이 동일한 사건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신의 이름이 엘로힘과 야훼로 구분되어 있다.
(3) 연대기적으로 이야기의 전후가 혼란스럽다.
그는 이들 세 가지 의혹을 논리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창세기>를 네 개의 상이한 자료들로 구분하였습니다: <야훼 자료>; <엘로힘 자료> 등.
5) 리차드 시몬(Richard Simon: 1638-1712)
카톨릭 신부인 그는 현대 <성서개론>의 선구자로서, 그가 발견한 중요한 내용은 <구약>이 어느 특정 시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점진적인 확대와 후대의 최종적인 편집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따라서 <오경>의 저작설은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2. 계몽주의 시대
흔히 이성(理性)의 시대로 불리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인간 이성의 해방을 선포한 시기였고, <성경> 해석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소위 “자유주의적 해석”의 발효(醱酵)가 이루어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흐름은 보다 깊은 배경, 즉 과학과 정치 및 사회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유주의적 <성경> 해석도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관계 속에서 태동한 당연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과학•철학적인 배경과 관련해서 ‘노만 가이슬러’(N. Geisler)의 저서 <기원과학>이 유익한 참고 도서가 될 것입니다: N. L. Geisler. <Origin Science>. Grand Rapids: Baker, 1987, chap. 3.
현대 과학정신과 과학적 학문 시작은 15-17세기 사이의 ‘베이컨’(Bacon: 1561-1626), ‘케플러’(Keppler: 1571-1630), ‘갈릴레이’(Galilei: 1564-1642), ‘파스칼’(Pascal: 1623-1662), ‘보일’(Boyle: 1627-1691), ‘뉴턴’(Newton: 1642-1727), ‘패러디’(Faraday: 1791-1867) 등과 같은 유신론적 창조론자들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인 견해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이 설계한 것이며, 그 속에 하나님의 지적 설계가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마땅히 행할 바는 그 질서와 지혜를 찾아 구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가능합니다. 이들 과학자들의 관찰과 연구 결과 많은 과학 법칙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었고, 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그리고 화학 등의 영역에서 그동안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던 여러 현상들이 그러한 법칙들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그처럼 거대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던 우주의 현상도 단 한 개의 만유인력의 공식(F = m1*m2/r2)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모든 자연 생명 현상들을 수식 화 된 과학법칙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소위 “기계론적 우주관”의 태동을 가져오게 되었고, 급기야는 모든 현상을 이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주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빈틈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것으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현상도, 초자연적인 기적도 개입할 여지도 필요도 없어졌으면, 만물의 운행 경로 역시 미리부터 정해져 있어 누구도 그것을 수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우주는 완전히 닫힌 체계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처럼 닫힌 우주관 즉 “기계론적 우주관”이 신학과 만나게 되면 어떤 자녀가 탄생할지 논의해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두 세기 동안 나타난 또 다른 하나의 현상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기원의 영역에서 과정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불규칙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난 우주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관심에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실험과학적 현상에 점차 몰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우주 천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과학의 전 영역으로 확대해 갔습니다.
이러한 방향 전환에 큰 기여를 한 대표적인 철학자나 과학자들로,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 ‘버폰’(G. L. de Buffon), ‘칸트’(I. Kant: 1724-1804), ‘라플라스’(P. S. de Laplace: 1749-1827)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우주의 궁극적인 기원에 관한 설명조차도 과학적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들을 이어 지질학에서도 자연주의적 시도가 태동하게 되는데, ‘허튼’(J. Hutton: 1726-1797)과 ‘라이엘’(C. Lyell: 1797-1875) 등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전까지 일반적인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지질과 지층 형성에 관한 “격변설”(Catastrophism) 대신에 유구한 세월을 필요로 하는 자연주의적 “동일과정설”(Uniformitasianism)을 제창했고, 이 신념은 오늘날 지질학계가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정설(定說)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783년 완간(完刊)을 본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는 오늘날까지 이 분야의 경전으로 널리 채택되어 읽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들 두 학자는 전문적인 지질학자가 아니라 각각 의사와 변호사였습니다.
지질학에서 자연주의의 성공은 곧이어 과학계에 혁명적 대지진을 알리는 전(前) 단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지진이란 다름 아닌 “진화론”의 등장을 말합니다. ‘다윈’의 불후의 명저 <種의 기원>(1859년 출간)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를 ‘라이엘’이 제공해 준 셈입니다. 즉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는 ‘다윈’이 진화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로 했던 “오랜 시간”을 마치 증명된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種)과 종 사이에 일어나는 소위 “대진화”(Macroevolution)의 가설은 실은 ‘다윈’이 ‘라이엘’로부터 차용해 온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N. L. Geisler, chap. 4.
<種의 기원>출현은 그토록 오래 기다려오던 자연주의 신앙인들에게는 일종의 메시아의 도래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자연주의의 일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화론이 특별히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사실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진화의 증거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다른 정치•사회적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계몽주의 운동은 인간이 자신의 미성숙함이나, 그 결과 <성경>이나 교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사고와 행동을 지시받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을 말합니다. 이 목표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가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이며 자연주의적인 해석 체계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국가나 교회의 오랜 전횡(專橫)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항하고 거부하기보다는 교회나 교리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정당화 하려합니다. ‘도킨스’(R. Dawkins)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기적인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등에서 이점 충분히 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부터 자연주의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신(神)으로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당대의 지적 경향이 <성경>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일단 기존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 방법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인 해석” 체계는 말 할 것도 없고, 개신교 진영의 “정통주의적 해석” 체계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나 영감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과학적 합리주의”나 “이신론”(理神論)적 “자연신학”(自然神學)이 대체하기에 이릅니다. 연구의 대상도 그동안의 기능적이고 교훈적인 해석에서 탈피하여, <성경> 자체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연구의 방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낳게 되었는데, 하나는 완전히 “자유주의적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소위 “역사적”(또는 “통시적”(通視的)) 해석입니다. <성경> 비평과 관련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후자(後者)로서, 이어지는 몇 장에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룰 것이다.
원고에 실린 그림
원고 속 자리를 확인하지 못한 그림을 모았습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