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재는 기독교한국침레회 <늘푸른 교회>의 교회학교에서 개설하고 있는 <로마서: 역사와 문학과 신학> (교과목 번호 120)의 보조 자료로 만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훈계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또 의로 교육하기” 위해서 쓰신 그분의 말씀입니다(딤후 3:16). 이것이 바로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읽고 계시며, 우리 또한 그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를 하고자 하는 자는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변화 받기를 원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변화 없는 성경공부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이므로 <성경>을 모르는 자보다 오히려 더 불순종하다고 할 것입니다.
<성경>이 이와 같은 궁극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기는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전달함에 있어서 법조문이나 신문기사처럼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한 방식이 아니라, 시나 노래 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등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계십니다. 즉 문학이라는 그릇을 빌어서 그의 의도를 전달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신학이라는 내용이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의도나 뜻이 얼마다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맛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교훈을 배울 뿐만 아니라, 교훈이 지닌 심미적인 아름다움 또한 감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공부의 이차적인 목적이 있다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공부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성경>이 현재의 본문으로 형성되기까지 전승이나 자료들의 역사와 배경과 관련된 연구가 그것입니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역사비평적(歷史批評的) 연구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을 성경공부의 세 번째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성경공부를 하는 종합적인 목적이 삼중적임을 알게 되는 바, 신학과 문학과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류 최고의 걸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성경>은 자체가 지닌 역사적․ 사실적 신뢰도에 대하여, 미적이고 운율적인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리고 종교적, 윤리적 탁월성에 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예리한 비평을 시도하도록 도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평적 작업을 거치는 동안 <성경>은 더욱 권위 있고, 영감(靈感)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럼없이 보여줄 것입니다. 필자도 비록 신학적 지식에 있어서나 문학적 소양에 있어 그야말로 천학비재하기 짝이 없지만, 나름대로 이러한 기본자세에 입각해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본 교재의 제 1부에서는 <로마서>의 역사와 문학과 신학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다룬 다음에, 이어서 각 과마다 해당되는 본문 내용에 대하여 종합적 성경 해석의 원리에 준하여 공부해 나갈 것입니다. 참고로 <로마서> 전체에 대한 구조를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 론<로마서>: 역사와 문학과 신학
제 1부서론
제 2부본론
2-1하나님의 의(1):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2-2하나님의 의(2):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
2-3하나님의 의(3): 복음과 개인
2-4하나님의 의(4): 복음과 역사
2-5하나님의 의(5): 복음과 교회
제 3부결론
이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서>는 크게 세 부분, 즉 서론, 본론, 및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편의상 본론을 다시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편저자: 김 태 정
참고도서
주해서 및 성경공부
1. Barclay, W. Rome. The Daily Stud Bible. Welch: 1975
2. Dunn, J. D. G. Romans 1-8.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Word Books Publishers, 1985.
3. Dunn, J. D. G. Romans 9-16.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Word Books Publishers, 1985.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
4. Boice, J. M. Romans (Vols 1-4). Baker, 1983.
5. J. Stott, <로마서>. 정옥배 역, 서울: IVP, 1995.
6. Barth, K. <로마서 주석>
7. 이동원, <로마가 들어야 할 복음>. 서울: 요단출판사, 1996.
8. M. R. DeHaan, <율법이냐 은혜냐>. 이용화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1.
9. Swindle, C. <로마서>. 김희수 역, 서울: 디모데, 2010.
참고서
10. J. Stott, <그리스도의 십자가>. 황영철∙정옥배 역, 서울: IVP, 1988.
11. Palmer, R. <계약신학과 그리스도>.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85.
12. Calvin, J. <기독교 강요 요약>. 이형기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7.
13. Martin, L. P. <신약의 초석>. 원광연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14. Carson, D. A. <신약개론>. 노진준 역. 서울: 은성, 1993.
학습목표
<로마서>에 대한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공부를 통해서 기대하고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 적어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각 장별 중요 구절을 암송한다든지,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적어도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겠다는 등의 기대가 그것입니다. 일련번호를 매겨서 본인이 기억하기 쉽도록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역사라 함은 이 책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한 제반 연구들을 일컫습니다. 서신의 시기에서부터, 발신자와 수신자, 로마교회의 기원과 상황, 그리고 자료와 편집 등에 관한 질문들을 이곳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의 역사와 관련한 논의는 주로 Barclay나 Dunn의 저서를 참고하였습니다: 참고도서 1-3.
1. 저자
서신의 저자는 말할 것도 없이 서신의 벽두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듯이, 사도 ‘바울’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은 본 서신의 기록 일시나 장소 등과 같은 문제보다는 사도의 생애와 활동 등에 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성경> 독자들은 ‘바울’의 생애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유대’인으로 자랐으며, 생애 내내 한 번도 ‘유대’인이 아닌 적이 없었을 정도로 철저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우선 자신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 특히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당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 3:5). 그의 출신과 관련하여 <사도행전>의 기록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을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행 22:3).
그는 동시에 ‘헬라’어와 ‘헬라’적 사고에 익숙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컨대, 그의 문학적 솜씨가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서신의 중간 중간에 ‘스토아’ 철학자의 논리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즉 가상적(假想的) 대화 상대자를 향한 질의와 답변 형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도 그에 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다른 이방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에 대해서 높은 존경심을 보내지는 않지만, 성경에 대한 높은 이해와 지식을 지닌 자들에 대해서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사도 ‘바울’ 이처럼 두 가지 상충되는 요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은 없고, 오히려 이방민족 가운데서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했던 자신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정확하고도 어김없는 해석과 적용, 그리고 열심과 충성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참고. 빌 3:5; 행 23:6; 26:5).
이 같은 ‘유대’적 사고와 이해가 그의 서신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는 ‘헬라’적 사고와 언어, 그리고 ‘유대’적 <성경> 이해의 양면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회심한 유대인.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정통 유대교인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회심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략 삼십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행 9; 22; 26). 그가 기독교인으로 회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부활하신 그리스도)과의 직접적인 만남 때문이었으며, 이 한 번의 만남으로 그는 이방인을 향한 사도로서 자신을 재발견하게 됩니다(참고. 롬 1:1, 5; 갈 1:15-16; 롬 15:17-20; 고전 9:16, 19-27).
그는 회심 이후 자신은 물론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이는 그가 이전의 세계관을 전적으로 수정했다거나 변화했다기보다는 이전의 지평을 확대한 것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참고. 롬 1:1-2).
배척당한 유대인. 이방인 사도로서 그의 선교 사역은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체제(體制) 내의 순응; (2) 독립적 선교 사역.
(1) 첫 번째 단계(갈 1-2): 이 시기는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그 영향력 안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해 갔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 기간은 아마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던 시기에서부터 ‘예루살렘’ 공의회 시기까지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이방인에 대한 할례 등과 같은 이방인들의 ‘유대’화에 관한 것들입니다.
(2) 두 번째 단계(갈 2:6, 16-; 빌 3:2): 이후 그는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를 보다 발전적으로 극복해 가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해석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로 보입니다. 이후 그의 선교 사역은 모 교회의 영향력으로부터 다소 독립적으로 진행되어 갑니다. 이때부터 문제는 더 이상 이방인의 할례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적 언약에 충실해야 하는 가 아닌 가에 관한 문제로까지 확대되어갔다 하겠습니다. 음식에 대한 규례가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이들 문제들에 관한 사도의 관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일시와 장소
일부 특정 구절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것 외에는 일시와 장소에 관한 문제는 <성경> 연구에 있어 가장 덜 중요한 부분입니다(참고. 롬 13:6-7; 14:11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후 55-56년 사이에 본 서신이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와 관련해서 중요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본 서신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려는 그의 계획을 읽을 수 있는데(롬 15:25), 이 구절은 <사도행전>의 기록(20:3)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가 그리스에서 3 개월을 보낸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고린도’에서 자신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있었을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행 18:1-18).
(2) 또한 본 서신에서 서신의 전달자 ‘뵈베’가 현재 ‘겐그리아’(‘고린도’ 항구의 동쪽)에 있다는 언급(16:1-2)이 등장하고 있어 장소에 관한 앞선 추측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3. 수신자
수신자의 정체는 서신으로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1:7). 수신자가 누구냐는 사실은 서신의 저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만, 서신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정도의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첫째, 그는 이방인들을 향해서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11:13-32; 15:7-12; 1:6, 13; 15:15-16).
(2) 둘째, 서신의 주요 논쟁점 중의 하나가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서, 서신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누가 ‘유대’인인가?(2:25-29)”;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가?(1:7; 8:33; 9:6-13; 11:5-7, 28-32)”; “‘유대’인의 역사(9-11)”; 등.
결국 서신의 수신자인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부류의 민족적 집단으로 이루어진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자 Dunn의 견해에 따르면, ‘로마’에 있는 ‘유대’ 공동체의 기원은 주전 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처음 노예의 신분으로 폼페이 장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가 나중에 자유인으로 신분이 바꾸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은 그 후 주전 40년 중반까지 상당한 정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데, 집회의 자유나 종교 및 민족적 전통이나 관습을 인정받는 위치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주전 4년경에 약 팔천 명이 넘는 로마 ‘유대’인들이 로마 주재 ‘유대’ 공사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주후 19년 ‘티베리우스’ 황제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추방시킵니다만, 이후 다시 로마에 정착하는 것을 허용해줍니다. 이후 이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주후 41년 ‘글라디우스’ 황제가 ‘유대’인들의 집회의 자유를 취소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일세기 중반까지 사만 내지 오만 정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자유인 또는 노예로 살고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로마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처음에는 바로 이들 ‘유대’ 공동체들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유대’인 선교사들이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와 ‘예루살렘’ 사이에는 잦은 왕래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특히 두 지역 ‘유대’인들 간에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오순절 당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사도들의 메시지를 들었던 사람들이 로마로부터 온 ‘유대’인들이었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참고. 행 2:10),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 내의 ‘헬라’파 기독교인들은 “자유 시민”을 뜻하는 소위 ‘리버디노’(libertini)(행 6:9)의 회당에 속한 무리들이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복음 전도의 양상은 자연스럽게 ‘유대’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회당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흥미와 관심을 가진 이방인(흔히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들이 많이 포함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역사 및 고고학적 사료들을 통해서도 당시 많은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유대’ 회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는 당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끌기도 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들이 ‘유대’인들처럼 전적으로 그들과 한 패를 이루어 개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들 ‘유대’인의 삶은 당시 사회에서 윤리․도덕적 모범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유대’교적 컨텍스트 안에서 ‘유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 역사가 Suetonius에 따르면,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 사이에 ‘그리스도’라는 자로 말미암아 소요가 끊이지 않자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쫓아내 버렸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일말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행 18:2), ‘브리스가’와 ‘아굴라’도 로마에 살던 ‘유대’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은 ‘바울’이 회심하기 전부터 이미 기독교 개종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면서도 ‘유대’ 공동체 안에서 나름대로 동일한 정체성을 지니고 무리 없이 살아가고 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비록 로마에서 이들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적인 지위에 대해서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나름대로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자유인 또는 노예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사회적인 적대감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서신의 목적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데, 대략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바울’이 서신서 안에서 두 가지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8-15; 15:14-33).
둘째,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상이한 두 가지 이유를 서신의 본체(1:16-15:13)와 어떻게 연결시키는가에 관한 문제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긴 서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신앙 공동체에 보내는 이유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학자들 사이에 서신의 목적에 관해서 많은 논쟁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현대 독자들은 ‘바울’이 단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가지고 서신을 보냈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한 가지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이며, 아래 세 가지로 그 목적들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선교적 목적. 이는 서신 내 두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15:18-24, 28). 그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바울’은 이방인을 향한 선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복음을 알기를 원했습니다(11:13-15, 25-26). 이제 그는 지중해의 북동부에서 자신의 선교 사역의 한 장(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15:19, 23). 그의 다음 목표는 지중해 북서부 ‘스페인’으로 가는 것입니다(15:24, 28). 이 목적을 위해서 이제 그는 지원과 베이스캠프가 필요한 듯합니다. 이를 위해서 ‘로마’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15:24를 봅시다).
변론적 목적. 사도가 발견한 복음의 의미(1:16-17)나 그 자신에 대한 변론을 통해서 세계의 수도 ‘로마’에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인정과 후원을 받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일진대 일차적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입니다. 나는 멀리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등록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나 전화를 할 때 무슨 말을 먼저 합니까?
목회적 목적. ‘바울’ 사도는 선교사요 변론가입니다. 그러나 그를 특징짓는 또 다른 중요한 타이틀은 그가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뵈베’(16:1-2)나 일단의 친지들(16:3-16)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편지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 수신자들의 종교적 성향의 차이, 즉 보다 자유스러운 이방인들과 ‘유대’주의적인 ‘유대’ 기독교인 사이에 있을 수도 있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11:17-25; 12:3, 16; 14:3).
<로마서>의 문학
1. 양식
여러 학자들이 <로마서>의 문학 양식과 관련해서 고대 문학 범주에 맞추려고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정관(memorandom); (2) 예증문(epideictic); (3) 사절문(ambassadorial); (4) 격려문(protreptic); (5) 수필 형식의 서신(書信).
물론 <로마서>가 이들과 유사한 문학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사도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당시에 알려져 있던 일련의 문학적 기법들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로마서>의 문학 양식을 파악하려 할 때 크게 두 가지 양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기독교 교리의 총체” 내지는 시간을 초월한 논문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특수한 독자들을 향해 기록한 문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로마서>에는 두 가지 양식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서신”(書信, epistle)과 “편지”(便紙, letter)를 구분한다는 것은 힘들고 별 의미도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둘을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前者)는 보다 교훈적이고 의례적이며 문학적인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후자(後者)는 그야말로 개인적이며, 사적인 서신으로서 비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서신의 본체(本體)는 위 구분에서 보듯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서신 부분의 서막과 결말 사이에 삽입된 형국입니다. 그 내용은 ‘바울’ 특유의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가 로마에 있는 일단의 성도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요청을 하기 전에, 그의 복음에 관한 충분한 설명과 해석을 통하여 독자들의 신임과 호의를 얻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점에 있어 1:16-17의 선언은 그보다 앞선 프롤로그의 절정(결론)이자 뒤따르는 본체를 여는 문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2. 구조
서신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본 교재의 소개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크게 세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서론-인사말 및 주제 도입
(2) 본론-교리 및 적용
(3) 결론: 송영 및 축도.
‘어빙 젠센’(I. Jensen)은 일련의 상호 연관된 단어들을 통해서 이 같은 구조를 도표로 잘 정리해 주고 있어, 본 서신을 처음 대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도표). 효과적인 연구와 기억을 돕기 위하여 원문 그대로 실었습니다.
3. 수사(修辭)와 구조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본 서신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사도가 채택하고 있는 주요 수사적 형식이나 양식에 입각해서 서신을 분석해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도는 이곳에서 자신의 논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당시 ‘헬라’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수사적 형식이나 설득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고대 수사학자들이 발전시킨 기본 수사적 요소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Exordium(머리말, 서문): 발신자의 특징과 핵심 논제들을 드러냄
(2) Narratio(해설, 해명): 핵심 논제들에 대한 사실 설명 또는 해설
(3) Propositio(명제, 주제): 일치와 불일치 및 검증이 필요한 핵심 논제들에 대한 요점 정리
(4) Probatio(확증, 검증): 중심 논제의 발전 및 확대
(5) Refutatio(반박, 반론): 반대자들의 논점에 대한 반박
(6) Peroration(결말, 결론): 결론 및 동정적 반응 유발
<로마서>의 신학
1. 신학적 통일성
위에서 개괄한 바처럼, <로마서> 안에는 다양한 양식(樣式)과 수사법(修辭法)들이 혼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 주제들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복음과 율법; 이스라엘. 따라서 <로마서>의 단일 서신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주장은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Dunn).
오히려 서신은 신학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이는 서신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모티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유명한 주제 선언 중에 나타나는 구절-“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은 헬라인에게로다”-이 그것입니다. 사도는 이와 같은 ‘모티브’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일련의 신학적 주제들을 가상적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새로운 조망
사도는 서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로 “복음”(福音)과 “율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의 연구를 통해서 이 두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조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참고도서 14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