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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 예화세상 1147 60년 넘게 묻어둔 비밀
「남산편지」 예화세상빌 2:3-4약 2분 분량
원저자: 「남산편지」 예화세상. 김태정 목사가 쓴 글이 아니라, 목사님의 자료 폴더에 함께 보관돼 있던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채명신(蔡命新: 1926 ~ 2013) 장군은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으로써 외교관·공무원·정치가·체육인·사회기관단체인으로 6·25 전쟁과 월남전쟁의 지휘관으로 참전한 추앙받는 장군이었습니다.
다음 글은 채명신 장군이 60년 넘게 묻어둔 감동적인 미담이며 비밀 이야기입니다.
채 장군이 중령이었던 51년 3월 25세 때 북한군 후방에 침투하는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지휘하다 “인민군 거물 길원팔이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군량밭 마을을 급습했습니다.
채 장군은 그곳을 지키던 북한군들에게 평안도 말씨로 “중앙당에서 나왔다. 조사할 게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 말해 안심시킨 뒤 그들을 전원 사살했습니다. 이어 세포위원장 집에 숨어있던 길원팔을 붙잡았습니다. 그에게선 김일성 직인이 찍힌 작전훈령과 전선 사령관들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 등 특급 정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채 장군은 길원팔과 단둘이 마주보고 심문에 들어갔습니다. 채 장군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던 길원팔은 “네 놈은 누구냐”고 되물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유격대 사령관 채명신”이라고 답하자 “그 썩어빠진 이승만 괴뢰도당 중 이곳까지 침투할 놈은 없다. 반란군 아니냐”고 쏘아붙였습니다. 채 장군은 “당신 같은 사람은 나와 함께 남쪽으로 가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라며 전향을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길원팔은 “썩어빠진 땅에 왜 가느냐”며 일축하면서도 "부탁이 있다. 전쟁 중 부모 잃은 소년을 아들처럼 키워왔다. 저기 밖에 있으니 그 소년을 남조선에 데려가 공부시켜 달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일성 동지에게 선물 받은 내 총으로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채 장군은 길원팔의 총에 실탄을 한 발 넣어 건네주고 몸을 돌려 방을 나왔습니다. 잠시 후 총소리가 났고 길원팔은 책상에 머리를 숙인 채 숨졌습니다. 훗날 “혹시라도 길원팔이 뒤통수를 쏠 것이란 걱정은 안 들었나”는 주변의 질문에 채 장군은 “늘 하나님이 방패가 되는 걸 믿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비록 적의 장수이지만 길원팔의 인간됨에 끌린 채 장군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그 소년을 동생으로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켰습니다. 이름도 새로 지어주고 총각 처지에 그를 손수 돌봤습니다.
소년은 채 장군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에 들어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 유명 대학에서 교수를 지내다 10여 년 전 은퇴했지만 두 사람은 채 장군이 숨질 때까지 우애 깊은 형제로 지내왔습니다. 채 장군에겐 친동생 명세씨가 있었지만 51년 채 장군이 연대장으로 복무하던 5사단의 다른 연대에 소대장으로 배속돼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다 전사했습니다. 이에 따라 채 교수는 형제자매가 없던 채 장군에게 유일한 동생이 됐습니다.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