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
김태정 목사눅 3:7-14약 8분 분량
대림절 둘째 주일
드는 말
교회력의 시작은?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더 긴 안목으로 볼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
역사적 배경. 나라의 주권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로마의 앞잡이 짓을 하고 있는 세리와 군병들로 인해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선포: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8절)
사람들의 질문: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진정한 의도는? 과연 변화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을까? 많이 알려진 예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계속해서 같은 설교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가 모이게 되었고 장로님 중에 한 분이 조심스럽게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같은 설교를 하시더라는 것이지요? 결국 그 목사님은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는데 사임설교의 내용도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매 주 듣는 설교대로도 살지 못하면서 새로운 설교만 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사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몰라서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요.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예배 때마다 우리는 일종의 중언부언에 가까운, 의미 없는, 그리고 입에 발린 기도를 수없이 내뱉습니다. 예컨대, 불우한 이웃에 관하여, 북한 주민들에 관하여, 전도에 관하여, 순종에 관하여...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저의 설교를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능력 있고 가슴을 찔러 쪼개는 설교를 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능력 있는 설교가 과연 무엇일까요?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하는 설교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의 설교는 단 한 번도 능력을 발휘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우리 교회가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침례 요한은 지금 회개를 위한, 또는 능력 있는 삶을 위한 무슨 획기적인 7단계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전부터 오래 동안 들어오던 아주 친숙한 선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새롭게 들리지도 않는 그 선언이었습니다. 본인의 설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동일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움직일 때까지 말입니다. 이제 침례 요한이 들려주고 있는 대강절 준비 사항이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나누어라
인도의 ‘캘커타’ 빈민굴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다 영원한 품에 안긴 ‘테레사’ 수녀를 기억하시지요? 테레사 수녀가 분주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기록한 책자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밤 한 남자가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말했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랜 전부터 아이가 여덟이나 있는 한 가족이 굶고 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그 가족에게 나눌 적은 양식을 가지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집 아이들 얼굴에서 지독한 굶주림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량을 받은 그 어머니는 밥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들어온 여인에게 “어디에 가셨었습니까?” 그랬더니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는 이웃이 또 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이 양식을 나누어주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여인이 이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이 가족은 힌두교 가족이었고, 그 가족은 이슬람교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이웃이 고통 받고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 중에서 자기의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실제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 여인은 자기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기에 앞서 나누어 주는 마음의 넉넉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족 즉 우리의 남편, 우리의 아내, 우리의 아이들보다 우선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사항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자기 자식이 굶주림으로 쓰러져 있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식보다도 이웃을 생각할 줄 알았던 여인, 도저히 여인의 관심이 자기 집 밖으로는 향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도 그 여인은 굶주리는 이웃이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먹을 것이 생겼을 때 비록 그가 자신과는 종교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를 남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에게보다도 먼저 그에게 식사를 전하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2007. 12.10일자 포털 사이트의 기사 [쿠키 사회]자신도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는 70대 할머니가 틈틈이 모은 폐지를 팔아 2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이웃돕기에 써달라며 기탁해 추운 연말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다. 문경시 점촌1동 윤동녀 할머니(77·사진)가 6일 점촌1동사무소에 맡긴 200만원은 할머니가 지난 1년간 매일 헌 유모차에 몸을 기대다시피하며 시내 구석구석에 버려진 폐지를 모아 판매한 돈이다. 지난해에도 100만원을 기탁한 윤 할머니는 수년 전부터 10만원씩이라도 매년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1978년부터 혼자 살아온 윤 할머니는 기초생활지원금과 노령연금 등 월수입 30여만 원의 기초생활수급자로, 단칸방에 살면서 연탄 값이 아까워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있다. 고령의 나이로 몸이 그리 성치도 않으면서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살아가는 윤 할머니는 남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받아야 할 처지. 할머니가 폐지를 수집하는 모습을 딱하게 여겨 과일가게나 반찬가게에서 과일이나 반찬을 주면 어김없이 경로당으로 들고 가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들과 나눠 먹는다. “그냥 좋아서 성금을 내놓는다”는 윤 할머니는 “이런 일이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한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문경=영남일보 남정현기자].
본문에서 ‘옷’을 나타내는 ‘키톤’은 기다란 겉옷 ‘히마티온’안에 입는 일종의 “속 옷”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틴’ 지방은 일교차가 심해 밤에 기온이 떨어질 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벌옷을 가지고 다니거나 껴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이러한 여벌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삶의 결단과 실천으로써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또한 음식물에 대한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을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3.3%인 150만 명이 절대 빈곤층; 굶는 결식아동이 50만명; 뿐만 아니라 사랑의 쌀 나누기. 심장병 재단. 생명의 전화, 장애인단체. 안식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나눔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 마음에 오시기를 바랍니다.
정한 세율만 받으라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죄인들이라 지칭되었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관세나 통과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탁받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의 주머니를 털어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로마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접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세리를 고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세금 관계 등의 일로 그들의 압제자인 로마 사람들과 접촉하였다.
침례 요한은 세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정죄하는 입장에 서는 대신, 세리들이 지위를 남용하거나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서 지나친 과세(課稅)를 하지 말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제도나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삼지 말라는 것(세금 징수, 개발정보를 알게 된 정보로 부동산 투기나 투기 세력에 결탁하는 일 등)입니다.
‘삭개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토색한 것(속여서 빼앗거나 강탈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선언했습니다(눅19:8).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토색한 것이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주님을 만난 후 자기 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격적인 회개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월급을 족한 줄로 여기라
본문에서 군인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트라튜오메노이’는 아마도 로마 군인이 아니라 국내 정세를 담당하는 유대의 군인들을 언급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들은 업무상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세리들의 징세 업무를 도와 수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포’(强暴)를 나타내는 ‘디아세이오’는 “맹렬히 흔들다”, “협박하다”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발”을 뜻하는 ‘쉬코판테오’는 “억압하다”, “착취하다”입니다. 즉 이들은 강압적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강탈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던 것이고 이는 당시의 군인들이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요한’의 외침은 단순히 군인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조직과 힘을 이용한 축재에 경고이기도 합니다.
연말 가족 수련회를 준비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009 가족 수련회 준비
목적: 개인과 교회의 영적 부흥
목표: 2009년도 회고와 반성 및 2010년도 교회 목표 설정
▪예배 시 기도 제목-구체적이고 세부적일 것.
▪계획이 없거나 목표가 없는 사람이 중언부언, 입에 발린 기도, 판에 박은 기도를 하게 된다.
세부 실천 사항
1) 개인 사역
2) 교회 사역
3) 중보 사역
개인적 기도: 1111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라
(1) 나는 매일 하나님을 만난다-말씀을 듣기 위하여
(2) 나는 매주 한 사람을 만난다-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3) 나는 매달 책 한 권을 만난다-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4) 나는 매년 한 계획을 만난다-매년 가족 수련회에서
(가) 수련회 일정표 작성
(나) 침묵 기도 훈련을 위한 시간표 작성
(나) 교재 <이상과 정신> 공부를 위한 시간표 작성
(라) 개인 및 교회의 비전 나누기를 위한 시간표 작성
2)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라
(1) 목장의 성숙과 성장을 위하여 (전도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2) 나는 매주 한 사람을 만난다-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3) 중보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라
(1) 강성규 선교사의 성공적인 사역
(2) 안동 OMC의 성공적인 사역
(3) 이웃-구원 또는 영적 부흥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