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운명을 바꾸는 습관
김태정 목사살전 5:16-18약 8분 분량
우리 모두는 성공을 갈망합니다. 연초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인파가 동해안 해변 도시들에 몰려드는 이유도 새롭게 뜨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의 소망이나 결심을 다지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올 해 초에는 날씨가 흐린데다 사나운 눈발마저 날려 웅장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하고 모두들 아쉽게 발길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공에 이르는 비결을 무어라고 일러주실까? 사막 같은 내 인생에서 젖과 꿀이 흐르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금언이 말하려고 하는 것도 결국 좋은 습관은 곧 운명이라는 것일 것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라는 책은 일본의 한 호스피스인 작가가 병상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들을 적어 책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왜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왜 이웃에게 좀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왜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을까? 등등의 온갖 회오와 뉘우침으로 가득 차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어른들에게 다시 학생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죽을 때 무엇이라 후회할까? 과연 예수님처럼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이처럼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야 없을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인생을 후회투성이로 마무리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엡 2:10). 따라서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간다면 어느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기뻐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운명, 그리스도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익혀서, 체질로 삼아야 할 좋은 습관은 무엇일까? 본인은 그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뻐하라
그 첫 번째 비결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일노 일로, 일소”(一怒 一老, 一笑 一小)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금언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즉 10초간 웃으면 3분간 운동을 한 효과가 있고, 3분간 웃으면 오장육부가 탄탄해지고 칼로리가 대량 소모되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합니다. 웃음은 또한 혈액에 산소를 공급해 주고, 신체의 주요 기관들을 마사지 해주는 효과가 있으며, 소화를 촉진시키고, 두뇌에 ‘엔돌핀’을 생성합니다.
신나게 웃을 때에는 우리 몸의 650개의 근육 중에서 231개의 근육이 움직입니다. 웃으면 ‘엔켈팔린’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는 ‘모르핀’보다 300배 이상의 진통 억제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웃을 때 부신에서는 염증 억제 화학물질이 분비가 된다고 합니다. 동맥이 이완되어 혈액 순환이 원활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심장마비 같은 도연사도 억제해 줍니다. 웃음은 또한 교감 신경을 억제하여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억제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어 수술 후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웃음 즉 기쁨은 일차적으로 나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입니다.
나의 웃음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으며, “웃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바꾸어서 “웃지 못하는 목사는 목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아내는 제가 말할 때 항상 찡그리고 심각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피부가 아래로 쳐지다 보니 입 주변의 모든 근육들도 아래로 처져서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화가 나 있는 표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입을 위로 올려는 연습을 해보고는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황수근 박사님의 모습은 늘 웃는 얼굴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서 저분이 억지로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직접 말하기를 늘 그렇게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기쁨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만,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이유가 있습니다. 기쁨이 성숙한 인격, 성숙한 영혼에 이르는 명약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영혼의 명약이라는 말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약 1:2-4)
감사하라
두 번째 우리가 익혀야 할 좋은 습관은 “감사”하는 습관입니다. 한 목사님은 감사는 일종의 ‘마일리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행기를 타거나 또는 물건을 살 때 마다 ‘마일리지’가 축적됩니다. 많이 축적 될수록 더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한 기독 정보넷에서 감사가 주는 유익에 대해서 무려 열 가지로 나열해놓고 있습니다. 첫째는 불평과 불만이 치료된다. 둘째, 마음이 평화롭게 된다. 셋째, 세상을 보는 눈이 아름답게 된다. 넷째, 이웃이 사랑스럽게 된다. 다섯째,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긴다. 여섯째, 고독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곱째, 어려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여덟째, 더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홉째, 건강이 좋아진다. 열 번째, 더 큰 감사의 조건이 보인다.
감사가 어떻게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고전적인 한 예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전쟁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전후 고국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는데, 이런 생활의 결과 그의 몸도 이상하게 굳어져가면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정신과 의사 ‘후치다’씨는 그에게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는 처방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굳었던 몸이 풀어지며, 회복되었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누군가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누가 말한 바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적이라 했습니다. 반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은 불신자의 특징입니다. <로마서>의 지적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 한다”(롬1:21).
언제 감사합니까? <구약>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특별히 절기를 정하여, 그때마다 감사를 드렸습니다만, <신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 역시 그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18절). 좋은 일이 있을 때든, 궂은 일이 있을 때든, 일이 제대로 풀릴 때이든, 잘 안 될 때이든, 편안할 때든 고통스러울 때든, 개의치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기도하라
세 번째 우리가 익혀야 할 좋은 습관은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어쩌면 이 습관은 앞선 두 습관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알다시피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그렇다면 기도 없는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 관계가 단절되었으니 생물학적으로 살았다 하나 실은 죽은 것이지요. 범죄 이후 ‘아담’처럼 말입니다.
나는 여기서 “왜 기도해야 하나?” “기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살아있으면 우리는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쉬지 않고 하게 되어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한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하루에 호흡을 한 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더 정확하게는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도, 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에게 바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아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을 사 드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베여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지난 경험을 통해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안, 짜증, 공포, 원망...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거나 얻게 되었을 때, 누가 가장 기뻐할까? 내 자식일까? 내 아내일까? 내 친구일까? 나의 하나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생의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 나의 성공을 위한 담보이자 보장이라면, 내가 그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아무리 나에게 좋은 것이라 해도, 좋은 습관을 가지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악하고 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전인자는 마음으로는 선하고 좋은 것을 사모하고, 바라지만, 실제 드러내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하다가 그만 두거나 포기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세 명령은 “항상”, “범사에”, 그리고 “쉬지 말고” 라는 세 부사를 달고 있습니다. 습관이 하루아침에 습득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훈련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체질을 만들고, 체질은 운명을 만듭니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훈련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겠습니다. 혼자서 하는 신앙생활이란 없습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